잘나가던 ‘삼국지’, ‘스타크래프트’에 발목 잡히다

[삼국지 VI]
유투브(/watch?v=0DNp4Th-KHI)

삼국지 시리즈는 ‘삼국지 V’ 발매 이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삼국지 V는 한국에서 역대 시리즈 중에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은 유저들이 플레이를 한 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그 말은 뒤집어 말하면 그 이후 후속편들은 삼국지 V 이전 시리즈들에 비해서 판매량이라던가 시장 점유율에서 다소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삼국지 VI가 출시된 1990년대 후반은 느긋하게 서로 한 턴씩 주고 받는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의 시대가 아니라 서로가 쉴새 없이 초 단위를 다투며 매 순간마다 상황에 맞는 결정을 해야 하는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시대였다. 1990년대 후반은 한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가 RTS에 시대에 빠져들고 있었다. 장기나 바둑처럼 자기 차례에 한 번씩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던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1980년대 인기를 얻었던 어드벤처 게임이나 RPG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게임들 중에 하나였다. RPG에서조차 전투 방식은 턴 방식으로 서로 한 턴씩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 가며 하는 방식의 게임들이 많았다.

하지만 듄2를 기점으로 RTS라는 새로운 방식의 게임에 사람들은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삼국지와 같이 한 번 명령을 입력하고 한 턴을 쉬고 다음 턴에 다시 명령을 입력하면서 느긋하게 화면을 지켜보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동시에 아군과 적군이 쉴새 없이 움직이고 공격하고 방어를 하는 현실과도 같은 실제 시간 흐름의 적용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C&C(커맨드 앤 컨커)에 가서는 그 열기가 폭발했다. 시대적인 흐름에 토탈어나힐레이션이나 홈월드와 같은 게임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고 그렇게 서로가 RTS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던 중에 일이 터졌다.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불멸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게임별곡 블리자드편 참조)

[스타크래프트]
https://kr.shop.battle.net/ko-kr/product/starcraft-remastered?p=47270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은 이 땅의 모든 게임의 운명을 뒤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보통 짧으면 3~6개월, 길어야 1~2년이 고작이었던 게임 라이프 사이클의 법칙도 바꿔놓았다. 출시 된 이후로도 20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대단한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 다른 게임 회사들에게는 정말 지옥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불법복제가 만연하던 당시에도 5만장 팔기도 힘든 세상에 삼국지는 5만장 이상 판매하며 그 위력을 보여줬지만 스타크래프트는 무려 300만장 이상 팔렸다. 물론 판매량의 대다수는 PC방의 게임 구비 때문에 구매한 것이라고는 해도 그 몇 배에 달하는 불법복제까지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이 때는 모든 게임이 스타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이 열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의 열기는 쉽게 식을 줄을 몰랐다. 한국에 PC방 사업을 일으키고 인터넷 망 설치와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의 등장 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며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판매를 하고 있다.

[삼국지 VI]
유투브(/watch?v=0DNp4Th-KHI&list=PLPvX09ZiuEKsalUnxImwXVcdDsuCE_DC_)

삼국지 VI는 삼국지라는 역사를 소재로 게임으로 만들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게임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런 삼국지조차도 스타크래프트의 높은 장벽을 넘어 설 순 없었다. 이 때를 계기로 삼국지와 대항해시대, 신장의 야망 등 굵직한 시리즈 들로 잘 나가던 KOEI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감돌았고 지금까지의 클래식한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는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통감하였을 것이다.

이 때 새롭게 구상한 시리즈 중에 하나가 훗날 ‘진삼국무쌍’의 효시가 되는 ‘삼국무쌍’ 게임이었는데 RTS 붐이 일기 시작한 때쯤인 1997년 출시했다. 이때만 해도 삼국무쌍은 지금의 진삼국무쌍과 같은 액션 게임이 아니라 단순한 3D 대전 액션 게임이었다. 하지만 3D 대전 액션 게임의 경우 경쟁자가 워낙 쟁쟁해서 이미 철권과 버처파이터 시리즈가 피 터지게 경쟁하고 있는 시장에서 삼국무쌍이 설 자리는 없었다. KOEI 나름대로는 가장 자신있고 인기 있는 삼국지를 소재로 하는 대전 액션 게임을 출시했지만 워낙 대전 액션 게임 경쟁자들이 막강해서 결국 대차게 말아먹고 KOEI 내부 개발팀이었던 오메가 포스(φ-Force)팀은 해체의 수순을 밟을 뻔 했다.

[삼국무쌍 – 또 다른 전설의 시작]

삼국무쌍은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게임으로 위상을 드높이던 KOEI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실제로 1대1 격투를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흔히들 여포와 관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유치한 질문에 결국 소설이나 역사상 둘이 끝까지 결전을 벌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흔히 알고 있듯이 여포 혼자 유비, 관우, 장비 3형제와 합을 겨룬 적이 있었는데 3대1로 싸움에도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1대1 싸움이면 여포가 압승이다.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촉나라 유비, 관우, 장비 3형제의 팬들은 어떻게든 삼국 최강 무력을 자랑하는 여포를 이기고 돌아오는 위풍당당한 관우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실제로 승부를 내보기 전에는 어찌 알 수 있을까 하는 속 막히는 답답함이 늘 가슴 한 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동맹관계이거나 전선이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어 싸울 기회가 없었던 장수들도 많았는데 도대체 최고의 무장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을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게임에서는 단순히 무력을 수치로만 나타냈을 뿐이고 게임 중에 일기토 역시 그러한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주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답답함과 궁금증은 사업적인 관점에서 분명한 시장 ‘니즈(Needs)’로 받아들여졌고 그것을 실체화 하기에 이른다.

[진삼국무쌍 8] 이미지(https://store.steampowered.com/app/730310/_/?l=koreana)

하지만, KOEI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 대전격투 게임 시장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던 3D 대전액션 게임과 2D 게임 시장이 있었다. 3D 대전액션 시장에서는 세가의 버처파이터와 남코의 철권이 자리잡고 있었고 2D 대전액션 시장에는 명불허전 캡콤의 스트리트파이터와 SNK의 킹 오브 파이터즈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미 진작부터 자리를 잡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치열한 전쟁터에 이제 막 만들어진 신참이 덜렁 전장 한 복판에 홀로 서 있는 형국이었다.

결과는 굳이 재 볼 필요도 없이 폭망이었다. 하지만, 오메가 포스(φ-Force)팀은 그 이후 출시 된 삼국무쌍의 후속편 격인 ‘진삼국무쌍’으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진삼국무쌍은 기존의 KOEI게임들이 대부분 역사를 소재로 하는 턴 방식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위주에서 탈피해 삼국지라는 역사를 소재로 했지만 세계관만을 차용한 새로운 액션 게임에 가까웠다. 현재는 오히려 터줏대감이었던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보다 더 많은 판매량과 인기를 얻고 있는 KOEI의 주력상품이 되었다.

진삼국무쌍은 2000년 8월 3일 첫 출시를 시작으로 진삼국무쌍 2(2001년), 진삼국무쌍 2 맹장전(2002년)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 2018년 진삼국무쌍 8까지 출시되어 있다. 진삼국무쌍은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와 비교하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장르적 차이로 내정이나 정치, 외교와 민생, 전략과 같은 머리 아프고 복잡한 것은 다 빼버리고 오로지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삼국무쌍 시리즈에 열광했다.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시장에서 새롭게 등장한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시스템을 시류에 맞춰 턴 방식에서 실시간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실시간 전투 액션 게임을 내놓았던 것이다. ‘전통은 지키고 고수하지만 새로운 것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쉬워 보여도 실제 행하기는 어려운 일을 KOEI에서 직접 새로운 게임으로 보여준 것이다. 실시간 전투방식과 같은 전투방식의 변화는 여러 실험을 거듭한 뒤에 후속작에서 도입되었을 만큼 무조건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신념으로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삼국지 VII]
유투브(/watch?v=w8mWCFVe4SM)

그렇게 자신들의 간판과도 같았던 턴 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기본 시스템은 지키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후속작을 선보였지만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언제까지나 그런 전통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나간 것이 진삼국무쌍의 시작이다.

진삼국무쌍이 첫 출시되던 2000년에는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의 새로운 후속작인 삼국지 VII이 같이 출시되었다. 진삼국무쌍 출시를 시작으로 KOEI는 삼국지라는 콘텐츠를 전략 시뮬레이션과 액션 게임으로 양분하여 출시하였는데 이 때부터 삼국지는 확실히 KOEI의 주력 콘텐츠로 자리잡고 삼국지라는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려는 모든 업체는 KOEI를 의식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삼국지 VII은 시리즈 최초로 군주제가 아닌 장수제를 도입했는데 시리즈 처음으로 도입하는 장수제 시스템이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일단 일반장수를 선택하면 군주가 아니다 보니 군주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일개 장수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첫 도입이다 보니 다소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 되어 이런 문제로 유저들의 평가는 엇갈리는 편이다. 장수 개개인이 할 수 있는 내정이나 징병, 훈련 출진, 방문, 서신 등 많은 커맨드가 있었지만 군주나 태수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삼국지를 즐겨 했던 분들은 이런 부분에서 불만을 표했다.

[삼국지 VIII]
유투브(/watch?v=ZyLH8mqBayk)

KOEI는 삼국지 VII을 출시한 이후 기존의 군주제에서 장수제로 전환한 것에 대해 여기저기서 찬사와 동시에 비난을 (더 많이)받았는지 서둘러 8편을 출시했다. 불과 1년 뒤인 2001년 시리즈 8번째 작품인 삼국지 VIII이 출시되었는데 전편에서 1명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점(파워업키트에서는 해결)에 대해 최대 8명 선택이라는 극단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전편에서 군주, 장수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에서 더해 군단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이 추가되었다. 7편에서는 장수제를 도입해서 기존 시리즈와 차별점을 두었다면 8편에서는 결혼 시스템이 추가되었는데 결혼을 하게 되면 자녀를 양성하여 장수로 기용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삼국지의 핵심이자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전쟁’ 시스템은 상당히 지루하게 진행되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게임의 결말 또한 7편에서는 주로 비관적인 결말이 많았던 것에 비해 이 부분도 개선이 이루어져 비교적 무난하거나 평온한 결말이 많아졌다.

다만 삼국지 게임을 하면서 전쟁 보다는 결혼이나 육아, 내정에 비중이 높아진 덕분에 이게 진짜 삼국지 게임인가 하는 불만을 표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부족한 점을 다음 편에서 보완해 나가는 식의 발전으로 삼국지 시리즈는 계속해서 출시되었고 2003년 출시한 삼국지 IX 은 7, 8의 장수제가 별로라는 의견이 많았는지 다시 군주제로 복귀했다.

[삼국지 IX]
유투브(/watch?v=QhnFDj6DJeY)

삼국지 9번째 작품인 삼국지 IX은 일본 먼저 출시하고 한국과 다른 국가는 후에 출시하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한국, 일본, 대만에서 동시 발매되었다. 등장하는 장수도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나날이 늘어나 9편에서는 650명에 이른다. 삼국지는 보통 5편 삼국지 V를 기준으로 클래식 삼국지와 신규 또는 모던 삼국지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데 V 이전까지가 기존의 2, 3편을 했던 유저들에게 익숙한 시스템들이었고 6편부터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하여 7편, 8편에서는 기존의 시스템을 뒤집어 엎을 만큼의 대대적인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고전 삼국지 게임을 즐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새롭게 변화된 장수제나 결혼 시스템 등이 불만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9편인 삼국지 IX는 기존의 삼국지 게임을 즐긴 유저들의 세대간 갈등이 직접적으로 표출 된 게임이 되었다. 6, 7, 8편부터 삼국지 게임을 시작했던 신규 유저들과 1, 2, 3, 4, 5편을 했던 기존의 유저들의 입장에서 삼국지 9편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게임이 되었는데 기껏 익숙해진 장수제에서 다시 군주제로 돌아간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향상된 적군의 인공지능과 골치 아픈 변방의 이민족 시스템 등의 도입으로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국경관리에 현실적인 정치, 외교, 국방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군주로서의 막중한 의무가 또 다른 재미가 되었고 무엇보다 전투와 내정이 따로 따로 존재했던 기존의 시스템에서 탈피하여 전투와 내정을 하나의 맵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단일 커맨드 맵을 도입하면서 맵의 스케일도 매우 커졌다는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 삼국지의 무대였던 광활한 중원의 느낌을 잘 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한 맵에서 이루어지는 전투의 경우에도 별도의 전투 화면이 아닌 내정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한 화면에서 병력의 출병 규모도 함께 확장되면서 대규모 전투의 스펙타클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리즈 10번째 작품인 삼국지 X에서 다시 장수제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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