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게임 ‘천사의 제국’으로 1990년대 유명세를 떨친 대만 개발사

[소프트스타 홈페이지]
이미지 - http://www.softstar.com.tw/

가끔 ‘지금은 뭘 하고 사나?’ 하고 예전에 몰입해서 빠져들게 만든 제품을 만들었던 회사들의 행방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소프트스타라는 회사의 홈페이지 도메인 주소가 ‘.tw’로 알 수 있듯이, 대만(Taiwan)의 게임 개발업체이다. 대만 타이페이에 있는 소프트스타라는 회사는 우리나라가 88 서울 올림픽 준비에 한참이던 1988년 4월 27일 창업한 회사이다(참고로 88 서울 올림픽은 1988년 9월 17일 ~ 10월 2일).

한 때 대만에는 한국보다 많은 게임회사가 있었다. 소프트스타, 소프트월드, Sachen, C&E, Front Fareast Industrial Corporation, 감마니아, IGS, Gamtec, UserJoy, XPEC, BIT 등 다양한 회사가 있었지만, 1980~1990년대 설립된 회사들의 특성상 지금처럼 게임 라이선스 부분에는 다소 문제가 될 법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콘솔 게임기인 닌텐도의 NES(패미컴), 세가의 게임기용 게임을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똑같은 카피 제품을 만들기도 했고, 심지어 하드웨어 게임기 자체를 복제하여 판매한 회사도 있었다(우리나라 또한 별반 다를 것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소프트스타라는 회사는 이름이 다소 낯설지 몰라도 고전게임 마니아들이라면 한 두 번쯤은 해봤을 게임으로 유명한 곳이다. ‘천사의 제국’이라는 게임을 통해 1990년대 PC통신이 한참이던 시절 유명세를 떨치던 회사가 바로 소프트스타다.

[천사제국 1]
유투브(watch?v=20TItiVc9F0&list=PL9YU8JSu2dC6asDcRGxkGS9Bfd5Vk_Y8a)

1993년 한국에서는 93 대전 엑스포가 열리던 그 해에 천사의 제국이라는 게임이 발매됐다. 원래 게임이름은 ‘천사제국(天使帝國)’인데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의’자가 더 붙어 ‘천사의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게임의 내용은 여자들만 살고 있는 ‘에스가’라는 신비의 대륙에서 정치권에 문제가 생겨 서로 싸움이 발생하였다는 내용이다. 게임의 스토리 내용보다는 당시 PC게임에서는 흔치 않게 SD캐릭터가 등장하는 턴제 SRPG라서 신선한 느낌을 줬다. 게다가 한글판으로 등장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불법복제판으로 즐긴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게임이기도 하다. 후에 PC게임 잡지 등에서 번들로 제공하기도 하는 등 실제 국내에서의 판매 수익은 별로 없었다.

당시에는 PC 게임의 경우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게임들이 간간이 정식발매되었고, 콘솔 게임의 경우 주로 일본 게임들 위주로 정식발매 되거나 일판 그대로 수입되던 때였다. 대부분의 게임은 PC통신 자료실이나 동네 컴퓨터 대리점에서 불법 복제를 해주는 곳이 많았는데 천사의 제국도 정품으로 구매한 사람보다는 불법복제로 즐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게임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 수익의 대부분을 잃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고전명작게임이다.

이 게임은 처음 게임을 접해 본 사람들이 두 가지 사실에 당황해 하는데, 첫번째는 대만 게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이다. 아직 한국에서도 PC 게임 타이틀로 성공한 케이스가 많지 않았고, 주로 미국 아니면 일본 게임 위주로 게임 시장이 돌아갔던 때다. 갑자기 튀어나온 대만산 게임에 한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던 대만이라는 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천사제국 1]
유투브(watch?v=20TItiVc9F0&list=PL9YU8JSu2dC6asDcRGxkGS9Bfd5Vk_Y8a)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니 게임도 잘 만들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중국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만 알고 있던 대만이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당시 기준으로도 그래픽 수준은 높은 수준에 속한다기보다는 어설펐으며, 국산 게임에 비해서도 탁월하다고 보여지지 않았다.

두 번째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해보면 너무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수준 높은 그래픽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그래픽이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재미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천사의 제국 게임은 일본의 유명한 게임 중에 하나인 ‘랑그릿사’를 철저히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진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검증된 게임을 따라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의 재미는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한 것은 아니고 많은 부분을 참고했다가 정확할 것이다. 턴제 SRPG의 장르 설정과 전투 장면의 구성 등에 참고를 많이 했다.

소프트스타의 게임들은 초기에 일본 게임들을 많이 따라 만들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천사의 제국이다. 하지만, 단순 아류작에 그치지 않기 위해 소프트스타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철학을 게임에 담았는데, 천사의 제국 같은 경우 단순한 필드형 SRPG에 그치지 않고 지형에 따른 전술적 구성에 신경을 썼다. 캐릭터 구성 역시 단순히 SD에 따르는 비율적 구성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려낸 아기자기한 콘셉트로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던 게임이다. 전투 장면에 역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임으로 슈퍼로봇대전이나 배틀체스 게임과 같이 서로 치고 박는 전투장면을 코믹하게 잘 살려냈다.

[천사제국 2]
유투브(watch?v=Zz-tZ26tuVw)

이렇게 인기를 얻고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천사의 제국을 즐겼지만 시리즈 1편과 2편 이후 3편부터는 아예 한국시장에 관심을 두지 않아 한글화 진행이 되지 않았고 3편은 한문으로만 구성 된 게임을 즐겨야 했다(이게 다 자업자득이지만..). 천사의 제국은 1993년 1편을 발매하고 바로 2년 뒤엔 1995년에 2편을 발매했는데 이미 1편을 해본 사람들은 당연히 2편이 나오자마자 다시 천사의 제국에 빠져들었고 처음부터 2편부터 시작해 본 사람들도 많았다. 파워돌 게임처럼 남성은 단 1명도 등장하지 않는 여성 100% 주연의 게임이지만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다.

[천사제국 2]
유투브(watch?v=Zz-tZ26tuVw)

천사의 제국은 1993년 1편 이후로 시리즈 2편이 1995년 발매되었고 2000년에 신 천사의 제국과 2002년 천사의 제국 3편이 발매되었다. 그렇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있던 해에 천사의 제국 3를 마지막으로 그 명맥이 끊기는가 했지만, 14년이나 지나서 2016년 돌연 천사의 제국 4가 등장했다. 천사의 제국은 1, 2까지와 3편 이후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천사의 제국은 1편과 2편까지이다. 그 이후 발매된 신 천사의 제국은 한글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영문판 조차도 없어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지 못하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에게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천사의 제국 4편 역시 한문(중국어 간체, 번체)과 영문판만 발매되어 예전만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즐기지는 못하는 게임이 되었다.

천사의 제국이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다양한 병과의 선택 시스템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특기도 없는 단순한 병사로 시작하지만 레벨업을 하면서 기병이나 전사, 궁병, 수녀 등 전문직을 수행하고 전직 또한 2차에 그치지 않고 최대 3차 전직까지 가능했다. 사병에서 기병으로 전직해도 다시 육전기사와 비마기사로 나뉘고 3차 전직까지 가면 순룡기가, 수기사, 수골기사, 거룡기사, 비룡기사, 요용기사 등 다양한 스킬의 직업으로 전직이 가능했다.

전사 계통도 신검전사와 장갑전사로 나뉘고 거도전사, 마검전사, 사검전사, 총림전사, 마갑전사 등 3차 전직까지 가는 중에 다양한 갈래가 있는 직업 선택으로 전직 때마다 고민을 하게 하기도 했다. 한 번 전직하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이 게임을 한 번 엔딩을 보고 끝내지 않고 여러 번 한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이다.

[천사제국 4]
이미지 - https://store.steampowered.com/app/562470/Empire_of_Angels_IV

그 당시 PC게임 중에서 RPG 장르에서는 직업의 전환이 있던 게임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RPG 조차도 정통 RPG를 표방하는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D&D니 AD&D니 하는 어려운 룰부터 시작해서 항상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의 RPG가 많았지만 국내에서는 SRPG라 불리는 다소 특이한 변종 장르의 게임들이 인기를 많이 얻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시리즈가 천사의 제국 시리즈이다. 이외에도 파랜드 택틱스 시리즈도 같은 맥락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소프트스타와 이름이 비슷한 소프트월드는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만 내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인지도 있는 게임회사 중에 하나로 성장했다. 자체 제작하는 개발사에서 퍼블리셔로 성장하여 국내 업체들과 MOU를 체결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현재 국내에서의 성과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천사제국 4]
이미지 - https://store.steampowered.com/app/562470/Empire_of_Angels_IV

그에 반해 소프트스타는 주로 일본 게임업체들과 관련이 깊다. 국내에서도 한 때 라그나로크를 서비스하는 등 국내 게임 업체와의 업무협력도 추진했던 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보다 오히려 1980~1990년대에 더 유명한 게임들이 많았는데 슈팅 게임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서는 ‘다운레이더’라는 게임이나 ‘폭소출격’과 같은 게임들을 기억할 것이다. 두 게임 모두 일본 게임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게임이긴 하지만 역시 소프트스타만의 철학으로 재해석됐다. 폭소출격의 경우 코나미의 파로디우스를 모방한 아류작이라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회화화 하는 내용의 동일성 빼고는 거의 전부 새롭게 만들어 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평가도 함께 받았었다.

폭소출격

천사의 제국보다 1년 빠른 1992년 제작한 폭소출격 이라는 슈팅 게임은 파로디우스를 바로 연상시킬 정도로 색채나 구성이 많이 닮아있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파로디우스 뿐만 아니라 보다 더 많은 게임들이 떠오르는 게임이다. 국내에는 정품으로 발매한 적도 있는데 등장하는 캐릭터의 선정성 문제로 청소년이용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었다.

다만, 게임을 해보면 알겠지만 그림체가 실사에 가까운 것도 아니고 만화풍의 캐릭터가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정성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지나친 심의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다른 일본 게임의 경우 더 심한 장면들이 등장하는데도 버젓이 이용가능 판정을 받은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소프트스타의 게임들의 공통점은 유쾌하고 가벼운 코믹성의 게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소프트스타가 이런 게임들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천사의 제국보다 앞서 발매한 ‘지카의 전설(Legend of the Zyca)’와 같은 RPG도 있었다. 거의 5분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오프닝은 당시 기준으로 혁명적인 수준이었고 게임의 진행 방식 또한 기존의 많은 RPG에서 채택하고 있었던 탑뷰에서 벗어나 쿼터뷰 방식의 신선한 방식이었다.

[지카의 전설]
이미지 - https://www.old-games.ru/game/6941.html

지카의 전설은 대만에서의 인기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무엇보다도 언어의 장벽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렵게 영문판을 구해서 한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문 버전을 입수해서 제대로 된 플레이도 해보지 못하고 접었던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끝까지 엔딩을 본 분들도 있었는데 소프트스타만의 철학이라고 해야 할지 엔딩장면에서도 보여지는 코믹스러운 연출은 이 때부터 시작이었던 듯 하다.

소프트스타는 지난 시절 숱한 명작 게임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한글화를 배제하고 한국을 주요 시장에서 제외하면서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점점 낮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건재하며, 현재는 게임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스핀 오프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처음 시작은 게임개발업체로 시작했지만 2005년을 기점으로 단순한 게임개발 업체에서 IP기반의 엔터테인먼트 제공 업체로 발돋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사의 제국 4]
이미지 - https://store.steampowered.com/app/562470/Empire_of_Angels_IV/?snr=1_430_4__431

참고로 천사의 제국 최신 시리즈 4편은 최근 추세에 맞춰 3D에 고사양 그래픽으로 새롭게 만들어졌으니 예전 1, 2편의 추억을 간직한 분들이라면 한번쯤 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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