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게임 양대산맥, 라이선스를 놓고 치열한 ‘쩐의 전쟁’

[2K Games]
이미지 – 유투브(/user/2KGames)

지난편까지 ‘고난의 시드마이어’편을 연재했는데 이번 편에는 시드마이어의 고난의 끝을 안겨 준 2K 게임즈에 대해 소개해볼까 한다. 최근에는 문명 6 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2K 게임즈가 그동안 출시한 게임들을 보면 다소 의아스럽다는 느낌을 갖을 것이다.

2K 게임즈는 스포츠 게임의 명가로 이름을 날리던 회사였다. 원래 이름은 ‘비주얼 컨셉츠(Visual Concepts)’라는 이름의 세가의 자회사 중에 하나였다. 비주얼 컨셉츠는 NBA 2K나 NFL 2K, MLB 2K 시리즈 등 주로 미국에서 유명한 스포츠 게임들을 개발했다. 세가의 힘이 아직 천하에 남아있을 때인 21세기 초 드림캐스트라는 사운을 건 특명 프로젝트에 비주얼 컨셉츠는 막강한 지원군으로 등장할 스포츠 게임들을 개발하여 북미 시장 안착을 주도했다. 

비주얼 컨셉츠는 세가의 자회사이긴 했지만 일본에 소재한 회사가 아니라 미국의 세가 아메리카 산하 소속이었다. 그래서 일본이나 아시아 시장보다는 자국(미국)의 스포츠 게임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다만 야구 게임은 원래 일본의 세가 본사에 소속된 와우 엔터테인먼트 라는 팀에서 개발했었는데 세가에서는 비주얼 컨셉츠가 만들어 낸 스포츠 게임들을 보고 야구 게임도 세가 아메리카에 넘겨버렸다. 2K 게임즈는 그 뒤로 계속해서 스포츠 게임 개발에 집중하여 본디 EA 스포츠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던 텃밭에 들어가 조금씩 조금씩 개량 재배를 하더니 어느새 텃밭 주인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신흥강자가 되었다. 

세가 산하에서 NFL시리즈와 NBA 시리즈의 개발을 담당했던 비주얼 컨셉츠는 본사이자 모회사인 세가에서 유통과 배급을 담당하는 구조였는데, 세가의 드림캐스트 패망 사건으로인해 재정난이 심각해지자 결국 사미 그룹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쓸모없는 패로 버려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아마도 이를 갈았을 듯 하다. 자세한 내용은 게임별곡 세가편 참조). 

[SEGA SAMMY Group]
이미지 – https://www.segasammy.co.jp/english/pr/corp/ol/

당시 세가는 3년도 못 버티고 망한 드림캐스트 사업 때문에 세가의 재정은 기울었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라이벌이었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가 전 세계 1억 5,400만대가 팔려나갈 동안 1,060만대 밖에 팔지 못했다. 이 비율은 거의 15대 1에 해당하는 비율로, 역사에 유례없는 극단적인 참패를 당했고 세간의 평가에 수치스러움을 느끼기보다 당장 내부에 경제적인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드림캐스트 출시 년도만 해도 430억 3,200만엔(4,300억원 정도)의 영업적자를 냈고 다음 해인 2001년은 520억 1,900만엔(5,200억원 정도)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내는 등 조 단위를 넘어가는 적자를 내면서 회장의 사재까지 털어가며 회사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328억 9,300만의 적자를 끝으로 세가는 파산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결국 적자를 청산하지 못하고 유명한 파친코 회사였던 ‘사미’그룹에서 세가의 주식 22.4%를 인수하면서 인수합병을 시작했고 한화로 1조원이 넘는 총 11억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세가를 사들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들이는 것만 성공했다. 샀으면 살려내기도 해야 하는데 세가는 소생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고 인수합병 이후에도 계속해서 적자행진을 이어나갔다. 

그 와중에 당장 크게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대상 중에 하나가 바로 2K 게임즈의 전신이었던 ‘비주얼 컨셉츠’라는 회사였다. 세가라는 이름 밑에서 충성을 다해 조직을 위한 마음으로 불철주야 EA 스포츠가 장악하고 있던 텃밭에 깃발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비주얼 컨셉츠 직원들은 당시 세가-사미의 처사에 극도로 분노했고 굳이 감탄고토(甘呑苦吐)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이 아니어도 조직을 위해 헌신한 자들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면 안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세가-사미 입장에서는 당장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임개발 사업부 같은 것은 전부 던져버리고 매장이나 오락시설 사업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복합 리조트 사업에 주로 관심이 많았기에 황금알을 낳을 오리가 될 오리들을 전부 강에 내다버렸던 것이다. 이를 위해 세가-사미는 그룹 구조 조정 본부를 설치해서 중장기적 전략 사업인 복합 리조트 사업 등에 경영 자원을 투입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일단 실적 부진 사업의 재검토와 경영 자원 배분의 최적화, 개발 체제의 재검토, 그리고 고정 비용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명목으로 게임 사업부 쪽을 거의 다 정리해버렸던 것이다.

[2K Games – NBA 2K19]
이미지 – https://www.nba2k.com/gamestatus

스포츠 게임계의 절대강자 EA를 꺾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자리에까지 왔는데 순식간에 팔려 나가는 참담한 심정을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이었고 결국 그들은 회사의 이름까지 내다 버리면서 ‘비주얼 컨셉츠’라는 주인에게 버림 받은 이름을 거부하고 ‘2K 게임즈’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던 것이다(비주얼 컨셉츠는 현재 2K게임즈 소속 팀으로 남아있음). 

비주얼 컨셉츠는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견 게임사 중에 하나였는데 회사 이름은 잘 몰라도 그들이 만든 게임 이름을 보면 유명한 게임들이 많이 있다. 처음 시작도 스포츠 게임 위주였는데 1988년 창업한 이후에 ‘레슬매니아 1988’ 이나 ‘레슬매니아 1991’ 등 그 이후로도 ‘레슬매니아’ 시리즈를 개발했고 ‘WWF 스맥다운’ 시리즈도 역시 비주얼 컨셉츠의 개발작품이다. 그 이후 본격적인 EA와의 전쟁선포를 통해 2K 시리즈를 내놓았고 EA가 40달러가 넘는 게임 가격정책을 고수할 때 19.99달러라는 반값 정도에 게임을 출시하여 게이머들의 환대를 받자 EA를 극도로 분노하게 만들었다(그럼 EA도 싸게 만들던가..).

[EA SPORTS]
이미지 – https://www.easports.com/

이 가격정책으로 EA의 아성을 흔들고 스포츠 게임 시장에 EA와 함께 선두 경쟁하는 업체로 우뚝 서게 된 비주얼 컨셉츠는 미국의 4대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하키’, ‘축구’, ‘야구’, ‘농구’ 게임을 만들면서 계속해서 시장을 확대해나갔다. 2K게임즈는 비주얼 컨셉츠 시절부터 EA가 쥐고 있던 스포츠 게임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를 피해가기 보다는 정면승부를 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EA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애송이에게 안방을 내어주게 생겼으니 심기가 굉장히 불편했다. (사실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고 1988년부터 있긴 했었다). 자신들의 독점 시장이라 여겨졌던 스포츠 게임판에 웬 놈이 나타나서 훼방질을 하고 있으니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가격까지 반 값에 풀어버리는 아주 상도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천하의 양아치 불한당 같은 놈들이었다(EA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비화가 있다. 비주얼 컨셉츠라는 회사 자체가 과거 EA에서 근무하던 개발팀들이 EA의 독불장군 같은 행태가 맘에 들지 않아 새로 나와 만든 회사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기를 쓰고 EA에 대항하고자 하는 전투력은 상당히 높았을 수 밖에 없었고, 세가에 편입된 이후 비주얼 컨셉츠는 목숨을 걸고 죽어라 EA를 겨냥한 게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의 절대강자, 스포츠 게임계의 제왕이자 군왕으로 군림하고 있던 EA는 결국 칼을 빼 들었다. 본보기가 필요했다. 그냥 놔두면 제3의 제4의 경쟁자들이 너도나도 달려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당시 비주얼 컨셉츠의 NFL 2K 시리즈는 EA 대비 아주 저렴한 가격과 온라인 멀티플레이 지원으로 북미 판매율 1위에 등극하게 되는데 별 것 아닐 줄 알았던 2K 게임즈가 시장을 장악하자 EA도 강경대처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EA SPORTS – NHL20]
이미지 – https://www.ea.com/games/nhl/nhl-20/features-overview?isLocalized=true

이에 EA는 NFL 협회와 결탁하여 NFL 라이선스를 독점해버리는 횡포를 보이게 된다. 세간에는 EA의 치졸한 복수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권한의 선점과 시장 독점에 따른 수익성 재고 차원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비즈니스적인 접근법으로 대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 이후 EA의 행보에는 많은 게이머들이 화를 낼 수 밖에 업었는데, NFL에 이어 NBA 라이선스까지 독점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참고 있었던 비주얼 컨셉츠를 인수한 ‘테이크투’는 MLB 라이선스를 취득해버린다. 그리고 EA는 곧바로 ESPN 라이선스를 사버리는 대응으로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고 한 쪽이 패망할 때까지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되었다. EA와 2K의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당시 EA는 타사의 경쟁 게임들을 견제하고 스포츠 게임 시장을 독점하고자 모든 스포츠의 라이선스를 돈으로 사 버리고 막아버리려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EA는 북미의 인기 스포츠들의 라이선스를 확보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로 아이스하키(NHL)와 미식축구(NFL)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EA의 라이선스의 독점 때문에 다른 회사들이 스포츠 게임을 만들고 싶어도 출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가상의 선수들을 등장시키는 게임들을 만드는 것에는 제한이 없었지만 스포츠 게임의 특성상 실명의 실제 선수가 경기장에서 뛰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되었다. 특히 EA가 노렸던 회사는 자신들에게 대놓고 도전해 오는 2K 게임즈였다.

[2K Games - MLB 2k13]
이미지 – 유투브(/watch?v=clKN9B-JDWA)

가장 직격탄을 맞은 2K 게임즈는 곧바로 메이저리그(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신청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EA 역시 서둘러 같은 내용의 계약을 신청하면서 양측의 격렬한 라이선스 계약 싸움이 시작됐다. 최종적으로 MLB 사무국은 2K 게임즈의 손을 들어줬고 이로 인해 2K 게임즈는 수년간 MLB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게 됐다. 

하지만, 2K 게임즈는 MLB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EA의 라이선스 독점 행위와 달리 다른 회사들이 MLB 라이선스를 사용하는 것을 인정해 주었는데 오직 한 회사, EA만은 MLB 라이선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이 여파로 EA의 인기 야구 게임이었던 ‘MVP 베이스볼’ 시리즈는 더 이상 MLB 라이선스를 사용할 수 없는 조건에 따라 2005년 시리즈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고, EA는 2K 게임즈의 MLB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된 2013년까지 야구 게임을 출시하지 못했다(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리라).

[EA SPORTS - NBA LIVE 19]
이미지 – https://www.ea.com/games/nba-live/nba-live-19/news/feature-gameplay-innovations

이렇게 첨예한 EA와 2K 게임즈의 라이선스 분쟁은 야구(MLB) 게임 하나로 끝나지 않고 농구 게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초창기 농구 게임을 독점하고 있던 회사는 EA였다. 1989년 MS-DOS 게임으로 출시한 ‘NBA 레이커스 대 셀틱스’부터 그 시리즈를 계승한 ‘NBA 라이브’ 게임 시리즈는 농구를 주제로 하는 게임 중에 선택의 여지없이 독점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 누구도 NBA 시리즈의 아성을 넘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당시 2K 게임즈의 ‘NBA 2K’ 시리즈는 그저 수 많은 농구 게임 중에 하나였을 뿐이지 EA의 농구 게임에 대항하는 것은 고사하고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도 못했는데 실제로도 EA는 초기 2K 게임즈의 ‘NBA 2K’ 정도의 게임은 단지 지나가는 게임 중 하나로 여기며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2K가 2010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따내며 게임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된다. 농구 역사상 ‘마이클 조던’을 빼고 NBA시리즈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조던이 농구라는 스포츠에 기여하고 있는 브랜드 파워는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점 계약을 따낸 마이클 조던을 전면에 내세운 ‘NBA 2K 11’은 당연히 불티나게 팔렸고, 이를 방치했던 EA의 ‘NBA 라이브’ 시리즈는 이때부터 급격한 판매량 감소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게 EA는 야구와 농구 모두 2K 게임즈에게 완패하며 시장에서 독점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영광과 권좌를 내주고 말았다. EA는 야구와 농구 게임 시리즈로 이미 진작에 시장을 선점했고 독점하다시피 하며 따라 올 자가 없었는데 하던 대로만 잘 해서 전작을 계승해 계속해서 성공의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상대에 대한 분노와 시기, 그리고 탐욕으로 인해 패배의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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