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묶인 게임 요금, 정액제 고집하다 손실 불가피

또 하나의 장수 온라인 MMORPG가 요금제를 정액제(월구독료)에서 부분유료화로 전환했다.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이다. 이미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일찌감치 부분유료화로 체제를 바꾼 바 있는 ‘아이온’은 올해 1월 본고장인 한국에서도 부분유료화를 선언하며 정액제에 완전히 작별을 고했다.

‘아이온’이 빠지면서 이제 한국에서 정액제로 운영되는 게임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이 숫자는 앞으로 더 줄면 줄었지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출시를 예고한 신작 게임들 대부분이 부분유료화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남은 게임들이 서비스를 종료하면 한국에서 정액제는 완전히 멸종할 것으로 보인다.

정액제가 도태되어 사라지는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꽁꽁 묶여버린 요금을 빼놓을 수 없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게임 구독료는 십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1998년 상용화를 시작한 ‘리니지’의 경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독료는 여전히 2만9700원이다. 같은 기간 영화 관람료는 6000원에서 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다른 게임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심지어 줄어든 경우도 있다. 2005년 출시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구독료는 처음에 2만4750원이었으나, 이후 1만9800원으로 인하한 후 다시 올리지 못하고 수년째 내린 가격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액제의 수익성은 계속 악화된다. 그러다보니 게임사는 부가 상품을 팔아서 감소분을 메꾸게 된다. 처음에는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큰 지장이 없는 치장용 아이템으로 시작했지만, 판매량이 신통치 않자 나중에는 게임 진행에 꼭 필요한 아이템들까지 팔기 시작했다. 구독료를 훨씬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구독료보다 부가 상품에 지불하는 비용이 더 커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게임사들의 이러한 꼼수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해외라고 다르지 않다. 패키지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북미와 유럽에서도 패키지게임의 가격이 20년째 59.99달러(약 6만4000원)로 동결된 상황이다. 매년 게임 제작비는 폭등하는데 소매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북미 게임업계에서도 각종 편법이 난무한다.

그 중에서도 완성된 게임을 파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 파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먼저 기본 틀이 되는 게임을 59.99달러에 판다. 이후 6개월 단위로 DLC(추가다운로드콘텐츠)를 내놓고 각각 20~30달러(약 2만1000원~3만2000원)에 판다. 또 미완성된 게임을 ‘얼리억세스’로 팔기도 하고, 나중에 나올 DLC를 ‘시즌패스’로 미리 판다. 마지막으로 DLC와 본 게임을 묶은 ‘디럭스에디션’도 내놓는다.

최근에는 일부 북미 게임사들이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전리품상자(랜덤박스)까지 팔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게임을 구매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추가 결제를 요구하는 게임사들에게 유저들의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59.99달러에 20년째 묶인 게임사들의 입장은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게임의 가격을 물가에 맞게 올리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첫번째로 게임사들이 유저를 믿을 수 없다. “랜덤박스만 팔지 않는다면 한달 구독료가 5만원이라도 기꺼이 내겠다”는 말을 하는 유저들은 많지만, 실제로 그 말을 믿고 게임사들이 구독료를 5만원까지 올렸을 때 남을 사람은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두번째는 유저들이 게임사들을 믿을 수 없다. 추가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을 기대하며 5만원을 냈는데, 게임사들이 5만원을 받고도 각종 부가상품과 랜덤박스를 팔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 정액제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아쉽지만, 수백명의 식솔을 챙겨야 하는 게임사의 입장에서 부분유료화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부분유료화에 염증을 느끼는 유저의 입장도 이해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게임사의 입장도 이해되기에 조금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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