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부분유료화 수익 모델, 이제는 바꿔 나가야 할 시기

용산 전자상가와 재래어시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어수룩한 뜨내기를 보면 제값을 훌쩍 뛰어넘는 덤터기를 씌운다는 의심 말이다. 물론 모든 상인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는 말로 시작해 ‘호갱’ 레이더를 가동하는 컴퓨터 매장 직원이나, 매운탕을 서비스로 주는 척 하더니 슬쩍 계산서에 포함시키는 식당 이모를 꽤 높은 확률로 만나곤 했다. 차라리 가격이 정해져 있으면 속 편히 지갑을 열텐데, 적정가를 모르니 괜히 호갱이 될까봐 이집 저집 기웃거리게 된다.

언제부턴가 게임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부분유료화(free to play) 모델이 대세가 되면서 게임업계에는 정찰가가 사라졌다. 일단 게임을 공짜로 맛보고, 재미있으면 가챠를 조금씩 지르는 식이다. 그런데 업데이트가 될 때마다 게임은 상전벽해가 되기 일쑤고, 대체 이 게임에 얼마를 쏟아부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할 지경이다. 물론 모든 게임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가격을 모른 채로 시가(市價)로 파는 고급 생선회를 먹을 때의 불안감을 꽤 자주 겪는다.

나만 그런 경험을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게임이 지나치게 결제를 유도한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믿고 거르는 한국 게임’ ‘개돼지 BM’이라는 싸늘한 반응도 많다. 특히 가챠에 대한 반응은 집단 분노에 가깝다. 셧다운제와 중독법 등 게임에 대한 규제는 절대 반대하지만,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안만큼은 쌍수를 들고 찬성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게임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수익모델이 악독하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최근 ‘젤다의전설: 브레스오브더와일드’가 한국 현지화되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한 유머글을 보고 실소를 터트린 적이 있다. 해외 매체 상당수가 평점 만점을 줄 정도로 역대급 극찬을 받는 게임이지만, ‘한국식 수익모델’을 적용한 순간 매력은 대폭 반감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에 공감을 누르면서, 부분유료화 모델로 ‘진화’해온 게임의 역사가 과연 옳은 방향을 택한 것일까 다시 생각하게 됐다.

최근 블루홀의 배틀로얄게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가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출시 16일만에 100만장, 39일만에 200만장을 돌파했다. 출시 두달이 넘은 지금도 스팀 게임 전체를 통틀어 Top셀러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한국 게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기록이다.

한국 유저들의 평가도 좋다. ‘배틀그라운드’는 ‘갓게임’으로 등극했고, 블루홀은 졸지에 한국 게임업계의 미래를 책임질 ‘갓회사’가 됐다. 이렇게 호평 일색이었던 한국 게임이 최근에 있었는지 곰곰이 되짚어봤다. 흥행에 성공한 게임은 많았어도, 유저의 민심까지 잡은 게임은 ‘배틀그라운드’가 유일하다.

‘배틀그라운드’가 갓게임이 된 이유는 일차적으로 게임을 잘 만든 탓이겠지만, 한국식 부분유료화 모델을 철저하게 배제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배틀그라운드’는 29.99달러, 한국 돈으로 3만2000원에 판매되는 패키지 게임이다. 캐릭터 스킨을 별도 판매하긴 하지만, 패키지 정찰가만 지불하면 게임 전체를 제한 없이 모두 즐길 수 있다. 매우 정직한 판매 방식이다. 부분유료화 모델로 출시됐다면 매출은 더 높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극찬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이면에는 부분유료화에 대한 유저들의 염증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유저들에게 뿌리 깊게 새겨진 한국 게임에 대한 반감은 한국 게임 자체가 아니라 한국식 부분유료화 모델을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게임업계는 더 늦기 전에 ‘배틀그라운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당장 부분 유료화를 버리고 패키지 게임을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유저들이 모두 등을 돌리기 전에, 가챠를 필두로 한 무한 결제를 유도하는 수익 모델을 조금씩 변화시켜야 한다.

한때 매출 10조원에 달했던 용산 전자상가는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대체제가 득세하면서 급격하게 몰락했다. 상인들은 눈물로 호소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최근 화재가 일어난 재래어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피해 상인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음에도, 인터넷 공간에는 바가지 상술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게임업계도 비슷한 처지가 될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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