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 논란 속 대안, 게임사 스스로 찾아 나서야할 때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비판이 전세계적으로 거세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상자에 담겨 있어 개봉 전에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는 무작위 아이템으로, 한국 게임사들의 주요 비즈니스모델(BM)이다. 캡슐형 유료 아이템, 랜덤박스, 가챠, 전리품상자(loot box) 등으로도 불린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어김 없이 확률형 아이템이 도마에 올랐다. 3년째 반복된 일이다. 여론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모바일게임이 아니라 빠칭코라 불러야 한다”는 날선 반응이 쏟아진다. 게임업계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의 개별 확률을 공개하는 자율규제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영 마뜩잖다는 반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7년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게임 이용자 60.8%와 모바일게임 이용자 58.5%가 자율규제에 불만이 있다고 답했다.

■ 북미, 일본에서도 뜨거운 감자

바다 건너 서양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 ‘미들어스: 섀도우오브워’,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 등 신작 패키지게임들이 잇따라 전리품상자를 판매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바라보는 북미와 유럽 유저들의 시선이 냉랭하다. “사실상 도박 아니냐”는 의견이 줄을 잇는다. 영국에서는 청소년 이용가 게임의 전리품상자를 도박법으로 규제하라는 청원에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결국 여론의 극심한 비난에 직면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는 백기를 들었다. 최고 등급의 ‘스타 카드’를 전리품상자 목록에서 제거하고, 제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진다. 일본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난해 사이게임즈의 모바일게임 ‘그랑블루 판타지’의 확률 조작 논란은 유독 거셌다. 한 유저가 70만엔(약 684만원)을 투자해 확률형 아이템 2522개를 구매했지만, 신규 캐릭터 ‘안치라’를 획득하지 못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당시 사이게임즈가 밝힌 최고 등급 캐릭터 획득 확률은 6%였으며, 최고 등급 캐릭터는 ‘안치라’를 포함해 총 4개였다. 사이게임즈가 각 캐릭터의 개별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탓에 유저들은 ‘안치라’ 획득 확률이 6%의 4분의1인 1.5%라고 믿었던 것이다. 

■ 확률형 아이템, 정말 도박인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이를 도박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뽑기와 도박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해 일본 내각부 산하 기관인 내각부 소비자위원회는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확률형 아이템을 현금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게임사가 아이템을 환금할 수 있는 방법을 직접 제공하지 않는 이상, 풍영법(풍속영업 등의 규제 및 업무의 적정화 등에 관한 일본의 법률)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북미와 유럽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북미 게임 심의 기관 ESRB는 “전리품상자에는 꽝이 없기 때문에 도박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 심의 기관 PEGI도 “(전리품상자가 도박인지 아닌지는) 도박산업감독위원회가 결정할 일”이라면서도 “우리의 의견은 ESRB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에 해당하는지 논의된 적이 없지만, 이변이 없는 한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만약 정말로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이라면 유희왕 카드부터 현재 서비스되는 대부분의 게임은 금지되며, 이는 또 다른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 정도 넘어선 상술에 소비자 불만 폭주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상술이 지나치면 소비자를 현혹하고, 과소비를 조장한다. 게임 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의 영업 활동에서 그렇다.

북미의 경우, 패키지게임에서 전리품상자가 등장한 사례는 꽤 오래 전부터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팀포트리스2’가 그랬고,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오펜시브’가 그랬다. ‘오버워치’나 ‘배틀그라운드’도 마찬가지다. 이 게임들이 확률형 아이템 논란을 비껴간 이유는 간단하다. 전리품상자에서 게임에 영향이 없는 치장용 아이템(스킨, 코스튬 등)만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면 집중포화를 맞은 ‘스타워즈: 배틀프론트2’는 무기와 ‘스타 카드’ 등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포함한 전리품상자를 판매했다. 서양 유저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페이투윈(pay-to-win, 결제를 하면 강해진다)’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페이투윈’에 거부감이 비교적 낮은 한국과 일본은 왜 확률형 아이템에 염증을 느끼는 것일까. 서양의 확률형 아이템이 ‘페이투윈’의 선을 지키지 못했다면, 한국과 일본의 확률형 아이템은 터무니없이 낮은 확률로 선을 지키지 못한 경우다. 최고 등급 아이템의 확률은 소수점 세자리까지 내려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수천만원을 써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수천만원을 쓴 사람과 한푼도 쓰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없다면 거액을 지불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화날 수 밖에 없다. ‘페이투윈’을 내세운 게임에서 ‘페이투윈’이 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다보니 ‘헤비과금러’와 ‘무과금러’ 모두가 불만을 터트린다.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사들은 많은데, 그 중 유독 낮은 확률의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일부 게임사들이 집중적으로 욕을 먹는 이유다.

■ 과금 스트레스 줄일 대안 마련해야

신작 게임이 나오거나 대규모 업데이트를 진행할 때마다 기자들이 게임사에 으레 묻는 질문이 있다. 유저들이 엄청난 과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해소할 생각인가. 게임사들은 “상황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손대겠다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게임을 진행하면서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하겠다”나 “이벤트로 아이템을 뿌리겠다”가 통상적인 답변이다.

간혹 용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최근 캐나다 게임사 피닉스 랩은 개발중인 부분유료화게임 ‘돈트리스(Dauntless)’의 BM에서 확률형 아이템을 삭제하고 확정형 아이템으로 교체했다. 피닉스 랩 공동창립자는 “돈만 밝히는 회사가 되고 싶지 않다”며 “우리의 정책은 사용자 우선”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다.

확률형 아이템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게임사들의 주수입원 중 하나이고, 이를 대체할 BM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규제의 칼을 댈 수는 없다. 다만 확률형 아이템이 주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완화할 방안이나 이를 대체할 BM을 연구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냥 확률형 아이템을 감싸고 지키기만 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한국 게임사들의 개발력 또한 하락할 것이다. 화난 고객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결국 게임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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