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 게임 판매용 사이트가 된 오리진 시스템즈의 스토리

게임별곡 시즌2 [오리진 시스템즈와 EA]

현재 오리진 시스템즈는 ‘오리진(Origin)’이라는 게임 판매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아니, 정확히는 EA(Electronic Arts)의 플랫폼으로 사용 중이다. 오리진은 세계 최대의 게임회사 중 하나인 EA에 의해 인수된 뒤 자체 개발팀과 프로젝트는 모두 사라지고, 현재는 껍데기만 남아서 EA의 게임 판매용 사이트가 됐다.

[오리진 사이트]

전편에 얘기한 것처럼 오리진은 ‘울티마7’의 무리한 확장과 발매 연기로 인해 자금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때마침 이 시기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EA에서 인수를 제의한다. 원래대로라면 오리진은 절대 EA와 손잡을 마음이 없었다. 정확히는 리차드 게리엇은 EA와 손잡을 마음이 없었다.

왜냐하면 리차드 게리엇은 뼛속까지 EA를 저주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오래 전 일인데, 1980년대 오리진과 EA는 전략적 업무 제휴를 맺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제휴의 결과는 양자간의 원한만을 남기고 결렬되었다.

업무 제휴 기간 동안 EA가 오리진 측으로부터 어떠한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업무를 지원받거나 교류를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EA가 1987년 ‘데스로드(Detahlord)’라는 게임을 출시하자 리차드 게리엇은 “명백한 울티마의 복제”라며 굉장히 분노했다. EA는 당연히 그런 일이 없다 해명했지만 서로간의 감정은 풀어질 수 없었고, 결국 오리진과 EA는 악감정을 남기고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그 이후로 리차드 게리엇은 EA만 보면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는데, 그 원한의 중심에는 EA의 창업자이자 당시 사장이었던 트립 호킨스(Trip Hawkins)가 있었다.
 

[데스로드(Deathlord)오리진]
(이미지 https://www.uvlist.net/game-198362-Deathlord)

 

그리고 그 원한은 단순히 개인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리차드 게리엇은 일을 내고야 말았다. 당시 ‘울티마6’를 개발 중이던 리차드 게리엇은 게임 안에 ‘캡틴 호킨스(Captain Hawkins)’라는 해적 캐릭터를 넣었는데, 이 이름만 봐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당장에 알 수 있다(EA의 창업자이자 당시 사장이었던 트립 호킨스). 게다가 이 해적 ‘캡틴 호킨스’는 부하들에게 비극적으로 살해당하는 악운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캡틴 호킨스의 등장 - 울티마]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Trip_Hawkins)

1985년 ‘울티마4’ 출시와 관련해 오리진은 EA와 유통 계약을 맺었지만, EA가 1987년 CRPG ‘데스로드’를 출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호킨스가 리차드 게리엇의 비난을 일축하자, 오리진은 EA와의 모든 계약을 파기했고, EA는 법원 합의를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최악으로 떨어졌고, 이 사건 뒤에 ‘울티마6’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캡틴 호킨스라는 해적이 등장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서 리차드 게리엇은 자신의 저택인 브리타니아 매너(Britannia Manor)에도 트립 호킨스의 흔적을 남겼다. 이 저택은 많은 비밀 통로와 전망대 및 커튼(The Curtain)이라는 자체 극장이 있는 거대한 저택인데, 미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령의 집’이다. 리차드 게리엇은 자신의 집에서 ‘유령의 집’ 할로윈 파티를 벌이곤 했다. 이 집에는 묘비가 하나 있는데, 이 묘비에는 죽음의 사신 그림과 함께 그 아래 ‘Prit Snikwah’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Prit Snikwah’라는 이름은 트립 호킨스(Trip Hawkins)의 철자를 거꾸로 쓴 것이다. 당시 리차드 게리엇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제의 적도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도 내일의 적이 되는 어른들의 비즈니스 세상에서는 온갖 다양하고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오리진과 EA의 관계도 그렇다. 그렇게 이를 갈고 게임 내에서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저주하고 미워했던 사람의 회사와 다시 인수 합병을 진행하게 될 줄은 리차드 게리엇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울티마7’ 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계속되는 출시 지연 등으로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결국 리차드 게리엇은 어떤 회사라도 자금을 대 줄 회사가 필요했고 이 때 접근했던 회사가 EA였다. 원래대로라면 오리진이 당장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아도 리차드 게리엇은 절대 EA와 협상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시기에 트립 호킨스는 EA에 없었다.

[캡틴 호킨스.. 아니 트립 호킨스]
(이미지 https://en.wikipedia.org/wiki/Trip_Hawkins)

트립 호킨스는 당시 3DO 게임기 사업을 위해 EA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정말로 그 때까지 트립 호킨스가 EA에 남아있었더라면 EA의 오리진 인수는 절대 협의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1992년 9월 EA는 35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오리진 시스템즈라는 회사를 포함하여 회사에서 개발한 게임들의 저작권을 사들이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EA는 인수 초기에는 오리진 구성원들에 대한 별다른 간섭이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오리진은 회사를 망할뻔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자금이 소모된 ‘울티마7’이 너무 방대한 분량이라는 이유로 EA와 합병 이후 그 뒷이야기인 ‘울티마7 파트2’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 때부터 EA와 오리진의 사이에서 잡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유와 로망을 게임으로 구현하려는 리차드와 흥행 여부를 중요시 여기는 EA는 사사건건 입장 차이를 보였고, EA의 무조건적인 발매일 통보는 결국 애초에 기획한 것보다 못한 결과물을 낳았다. 

[울티마7 파트2]
(이미지 http://www.abandonwaredos.com/)

그 이후에 나온 ‘울티마8’ 역시 통제된 EA의 시스템하에서 최악의 결과물이 됐고, 이러한 갈등은 ‘울티마9’ 때 절정에 달했다. EA의 각종 압박을 받던 리차드 게리엇은 ‘울티마8’을 개발하면서 ‘울티마’ 시리즈에 가해지는 외부적인 압력이 자신의 자유로운 창조 작업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울티마’ 시리즈는 9편에서 종결짓겠다는 발언을 한다. 그 뒤로 회사를 퇴사한 리차드 게리엇과 오리진, 그리고 EA는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다.

리차드 게리엇이 그토록 EA에 분노를 표출한 이유는 오리진에 대한 큰 애착과 관련이 있다. 리처드 개리엇은 ‘아칼라베스’와 ‘울티마’ 1, 2를 출시할 때 다른 회사들과 유통, 배급 계약을 해서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들이 제대로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았고, 결국 자기가 직접 회사를 차려 게임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경영학을 전공한 형 로버트 개리엇을 영입하여 1983년 오리진시스템즈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게임을 개발할 때도 늘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즐기는 사람도 즐겁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출시 일정 연기 따위는 게임의 재미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열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던 리차드 게리엇에게 강압적이고 지나치게 사무적인 EA의 태도는 좋게 보일리가 없었고, 결국 둘의 사이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마무리 되면서 끝이 나게 된다. 그에 대한 앙갚음은 아니겠지만 EA 역시 기존의 오리진 팀원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행하던 프로젝트도 모두 취소시켜서 더 이상 ‘울티마’와 ‘윙커맨더’ 시리즈는 개발되지 않는다. 그리고 후속작을 리차드 게리엇이 개발할 수 없도록 모든 저작권 역시 EA가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EA의 회사 오리진은 현재 EA의 게임을 판매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만 남아있는 치욕을 당하며 사는 중이다.

[오리진]
(이미지 https://www.origin.com/kor/ko-kr/)

오리진의 사이트를 방문하면 화면 아래에 ‘© 2018 Electronic Arts Inc.’ 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여기는 오리진이 아니라 EA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설마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이것은 캡틴 호킨스에 대한 트립 호킨스의 뒤늦은 답례가 아닐까?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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