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에 인수된 이후 오리진 시스템즈 몰락...'울티마8' 역사에 남는 망작 오명

게임별곡 시즌2 [오리진 시스템즈의 흥망성쇠]

지난 시절, 오리진 시스템즈라는 회사는 지상의 ‘울티마’, 우주의 ‘윙커맨더’라는 단 두 개의 게임만으로 세상을 제패했다. 많은 게이머들이 새로운 시리즈가 출시되기도 전에 기대에 부풀어 술렁거리고,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소개팅 자리에 나가 사진 한 장만 보고 상대방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으로 출시일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물론 출시일은 항상 지켜지지 않았다).

[퍼시픽 스트라이크]
(이미지 http://www.ibiblio.org/GameBytes/issue20/greviews/pstrike.html)

물론 지상과 우주 사이 하늘을 소재로 하는 게임도 있었다.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퍼시픽 스트라이크’나 현대전을 소재로 한 ‘스트라이크 커맨더’ 등이다. 오리진은 자신들이 ‘울티마’라는 세계적인 성공작 하나 때문에 너무 RPG 색채가 강하게 보이는 것을 우려했는지 계속해서 다양한 장르와 세계관을 다루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 중에 하나가 비행 시뮬레이션 분야였다. 물론 회사의 기둥인 ‘울티마’ 시리즈를 넘어서는 대작은 없었다. 그 외에도 ‘시스템쇼크’라든가 ‘크루세이더’ 등의 명작 게임들이 있었지만, 어느 하나도 ‘울티마’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개발했지만, 1990년대 들어서 결국 오리진의 게임은 두 가지 게임 시리즈로 압축이 된다. ‘울티마’ 시리즈와 ‘윙 커맨더’ 시리즈다. 그리고 언제나 당대 최고의 사양을 요구하는 그들답게 그래픽 수준은 당대 최고 사양으로 나왔고, 이것은 ‘울티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울티마9’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1983년 리처드 게리엇과 그의 형 로버트 게리엇, 그리고 이 둘의 아버지인 오웬 게리엇(Owen Garriott)과 게리엇 형제의 친구 찰스 뷰크(Charles Bueche) 이렇게 네 명으로 시작한 오리진 시스템즈라는 회사는 로드 브리티시라 불리던(불리기를 좋아하던) 리차드 게리엇 수석 부사장이 주도해서 이끌어 가는 회사였다. 항상 시대를 앞서가며 당대 최고의 사양을 요구하는 악질적인 그들의 행보는 지탄을 받기보다는 언제나 환호를 받았다. 

[울티마 7]
(이미지 http://www.listal.com/viewimage/433936)

승승장구하던 그들의 행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울티마6’때부터 시작됐다. 언제나 당대 최고의 사양을 요구하는 고집을 꺾지 않은 대가로 오리진은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항상 부족함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울티마7’에 가서는 하나의 패키지로 구성을 맞추지 못할 만큼 볼륨이 방대해졌다. 결국 오리진은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오리진이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요청한 회사가 EA였다.

그러나 1992년에 EA가 오리진을 인수하면서 회사에 암운이 더욱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인수 초기에는 개발인력도 배치해주고 자금문제도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EA와 오리진은 태생부터가 다른 회사였다.

오리진의 리차드 게리엇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완벽을 추구하고 개발기간의 연장이나 출시일의 지연쯤은 개의치 않았던 것에 비해, EA는 무조건 정해진 출시일에는 어찌됐던 출시를 해야만 하는 구조의 회사였다. 

보통 이런 구조의 회사는 사업부의 입김이 꽤나 강한 회사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사업부에서 ‘올 크리스마스에 출시!’라는 목표를 세우고 광고를 해버리면 개발팀들은 어찌됐든 크리스마스에는 출시를 해야 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인만큼 단순하게 어느 한쪽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주제는 아니지만, 문제는 리처드 게리엇의 완벽지향주의와 EA의 무조건 출시일 준수라는 완벽하게 대치되는 문제로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울티마 9]
(이미지 http://www.abandonwaredos.com/abandonware-game.php?gid=2349)

결국 시리즈 다음편인 ‘울티마8’은 EA의 정해진 발매일에 맞춰 무조건 완성된 게임을 출시하라는 강압적인 정책으로 역사에 길이 남는 망작이라는 오명을 얻어야만 했다. 그 뒤로도 EA측과 오리진은 사사건건 부딪혔고, ‘울티마9’ 역시 시리즈를 마무리 짓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을 실망시켰다(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울티마 온라인’은 성공했다).

초기 양사는 화합의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2004년 2월에 EA는 말 안 듣는(?) 오리진을 해체해버리기에 이른다. 물론 이렇게 해체된 회사는 오리진뿐만이 아니다.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로 유명한 웨스트우드나 ‘심시티’ 시리즈로 유명한 맥시스도 EA에 인수합병되었다가 결국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리진]
(이미지 https://www.origin.com/kor/ko-kr/store)

아직 오리진이라는 이름은 남아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오리진은 예전의 그 게임개발을 하던 오리진이라는 회사가 아니라 EA에서 해체하고 껍데기만 남은 오리진이다. 현재는 EA의 게임 판매 플랫폼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리진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울티마’ 시리즈의 판권은 오리진의 소유였지만, 1992년에 EA가 오리진을 합병하고 오리진을 해체한 2004년 이후 현재까지 EA의 소유로 되어 있다. 리처드 개리엇은 2000년 EA를 퇴사하여 현재는 시리즈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보니 ‘울티마’ 시리즈의 차기작은 론 길버트 없는 ‘원숭이 섬의 비밀’ 마냥 기약 없는 기다림만 남아있을 뿐이다.

■ 필자의 잡소리

[스트라이크 커맨더]
(이미지 http://www.wcnews.com/news/update/12875)

필자는 ‘스트라이크 커맨더’라는 게임을 3년 가까이 출시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정작 게임이 출시됐을 때에는 낮은 사양의 PC를 소유했다는 죄로 한동안 이 게임을 고이 모셔두어야만 했다. 출시 전만 해도 386 이상의 기종이면 가능하다고 장담했지만, 정작 출시하고 보니 486 이상은 되어야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고사양을 요구했다. 메모리 관리도 꽤나 중요해서 당시에 config.sys 파일을 제대로 다룰 수 없으면 게임을 하기 힘들었다.

최근 게임들은 최적화와 범용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하고 출시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오리진의 그 무모할 정도로 최고에 대한 집착을 가진 개발사들이 좀 더 많아져도 좋을 것 같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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