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꿰뚫지 못하는 정책 대신 야외활동 양성 힘 기울여야

게임별곡 시즌2 [특별기고]

올해가 저물면 필자도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지나게 되니 불현듯 40년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명정 40년 - 명정사십년 무류실태기(酩酊四十年無類失態記)’라는 책이 있다. 수주 변영로 선생(1897~1961)이 자신의 40년 술 인생을 무덤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수필집이다. 필자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수주 선생이 5세에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40년이 흘렀다는 대목에서 5세때 처음으로 디지털 게임을 접한 필자와 비슷해 무심결에 끝까지 읽었던 적이 있다.

[수주 변영로(1897~ 1961)]

명정(酩酊)이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몹시 취한 상태’를 말한다. 필자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마치 술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게임에 미쳐 살았던 나날이 떠오른다. 필자의 경우라면 ‘명정 삼십오년’이라 해야 할까?

40년전쯤 전에 이 땅에는 불온도서라는 낙인이 찍힌 만화책들을 화형시키는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유흥이라는 것이 몇 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그 중에 만화방은 제일 가는 놀이 장소였지만, 어른들의 눈에는 그것이 그렇게 고깝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만화나 보다니’라며 혀를 차는 어른들의 모습이 40년이 지난 지금의 게임 시장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이다.

[1970년대 만화 화형식]
(이미지 https://www.youtube.com/watch?v=pXQH8Nw7j1A)

만화책 중에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들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모든 만화책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제한과 규제를 들어 만화방을 폐쇄하고, 만화책들을 모아 화형식을 거행하는 퍼포먼스를 90년대까지 줄곧 이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망가진 한국의 만화산업은 지금의 한국 만화 시장 그대로의 모습이다.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몇몇 작가 선배님들만 살아남아 근근이 한국만화를 이어가는 중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술의 발달과 시대의 흐름에 맞춰 웹툰이라는 것이 세상에 등장하고 현재 웹툰 시장은 다시 한 번 부흥의 날개를 펴고 있다.

그렇게 만화 산업이 위축되고 제한되고 규제에 시달릴 무렵 이 땅에는 옆 나라 일본의 만화들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별다른 규제나 제한도 없이 전 방위적으로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한동안 한국 만화 시장을 잠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드래곤볼’도 초기에는 해적판이 범람했고 주인공의 이름도 해적판 출판사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시티헌터’ 역시 해적판들이 떠돌았는데, 그때 필자가 본 ‘시티헌터’ 중에는 주인공 이름이 ‘사에바 료’인 것도 있고 ‘우수한’인 것도 있고 ‘방의표’라고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근 21세기에 가깝던 그 시절에도 ‘표현의 자유’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40년 한국 만화시장을 되돌아보니 최근 10년 안에 이 땅에 게임시장이 위치하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생각하게 된다. 게임을 따라 하다가 사람을 다치게 했다느니 게임 속 주인공에 빠져 현실과 상상을 구분 하지 못했다느니 등 뉴스에는 연일 단골 소재로 ‘폭력 게임’이 등장한다. 또 친구의 금품갈취가 게임과 관련 되었다는 뉴스라든가 본업도 없이 세상과 담을 쌓고 게임만 하는 병폐적인 모습의 사람들을 화면에 비추면서 이것이 모두 게임 때문이라는 뉴스도 나온다. 게임이라는 것은 권장하고 추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철 모르는 어릴 때나 잠깐 하는 것이고 나이 들고서도 게임을 하면 뭔가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뉘앙스다.

각종 부정적인 뉴스에 이어 게임을 술과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유발물질로 간주하고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법안이 발의될 정도로 이 땅에 게임이라는 놀이문화는 40년전 만화 화형식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다. 게다가 셧다운제라는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심야 게임 규제(청소년보호법 제26조)를 시행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마이크 모하임]
(이미지 https://www.youtube.com/)

실제로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 게임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미성년자 게이머가 시차 때문에 셧다운제로 인한 강제 접속 종료로 패배한 일도 있었다. 그 사건을 두고 블리자드의 대표 마이크 모하임도 참으로 의아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가정용 콘솔 게임에서 PC패키지 게임을 지나 온라인 게임 시대로 접어든 이래로 한국의 게임실력은 세계를 평정했다. 지금도 한국의 프로게이머는 각종 대회의 최고 순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의 게이머들로부터 칭송을 듣고 있지만, 정작 본고장 한국에서는 각종 규제와 제한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 중에 근절시켜야 하는 사행성 게임도 분명 존재하고 지나친 폭력과 선정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임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표현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라는 틀에서 보았을 때 지나친 규제의 개입은 오히려 산업을 퇴행시키고 변질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지금의 한국 게임 관련 법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여타의 많은 선진국 중에 게임을 이렇게까지 제한하고 규제하는 나라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 나라들은 왜 게임을 규제하지 않았는데도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가? 필자는 문제의 본질이 게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어린 시절부터 접할 수 있는 야외활동(레저)이 월등하게 부족한 것이 이유라고 본다. 학교 아니면 학원 밖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학교 이후에도 각종 스포츠나 모임 등으로 청소년기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생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사회 전반에 걸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나라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고 본다. 

[미국의 고등학교]
(이미지 https://sports.vice.com/en_us)

미국의 경우 주 정부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오후 3시를 전후해서 학교 수업이 끝이 난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10대 문화는 한국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방과후에 야간자율학습을 하거나 학원을 가는 한국의 학생들과 달리 대다수의 미국 중/고등학생은 학교의 운동부나 밴드 활동 또는 그 밖의 여가 생활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방과후에 친구들과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는 경우도 많은데, 미국에선 14세가 넘으면 면허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러모로 한국의 ‘아직은 애들이니까’라는 명목으로 제한하고 규제하는 문화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선진국 대부분의 경우가 학교생활로 하루를 종일 저당잡히고 규제 속에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게임에 중독되지 않을까? 자유시간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 동안 게임을 접할 수 있다. 중독현상도 심해야 하지만, 어느 나라도 게임에 중독 문제가 심각하니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규제를 하겠다는 곳은 없다. 다양한 여가활동이 가능하다면 굳이 게임 하나에만 빠져 살 이유가 없다. 사람이라는 것은 본디 재미있는 것은 돈을 내서라도 하고 재미없는 것은 돈을 받아도 하기 싫은 것이 기본 속성이다.

문제 해결의 본질은 게임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뿐만 아니라 중장년 층의 성인들 포함하여 국민 대다수가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레저문화 육성 및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된다. 그래도 게임 할 사람들은 여전히 게임을 하겠지만, 밖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지내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선택의 자유이고 그 선택의 폭은 가능하면 다양하고 폭넓은 것이 최선이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 외에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가?

■ 필자의 잡소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필자 역시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일인으로 너무 편파적인 생각을 글로 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반은 반성의 의미로 반은 각성의 의미로 쓴 글이다. 모르는 것은 두렵고 걱정만 가득하기 때문에 애초에 접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알고자 하는 노력 부족은 아닌지 필자와 같은 연배의 부모님 세대들은 고민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참고로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을 숱하게 많은 게임을 하며 살아왔지만, 아직 현실과 게임 속 상상의 세계 정도는 구분 할 줄 알고 게임 속 캐릭터를 따라 한다고 길가는 행인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마약처럼 중독되어 끊지 못하고 금단현상을 일으키며 살아가지는 않는다(이것은 지극히 한정적이고 특화된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 20세기의 사람들이 19세기의 공간에서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 - 학교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기성세대가 한번쯤은 읽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글귀다. 21세기는 지난 20세기와는 사뭇 다르고 19세기와는 전혀 다르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변해가는데 제한과 규제는 대상만 달리 할 뿐 여전히 제 자리에 맴돌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답답하고 꽉 막힌 퇴로에 놓인 이 땅에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대신해 줄 수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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