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카탄의 개척자', 캡콤의 오카모토 요시키가 만든 보드게임 문화

지난해 말에 어떤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받은 질문이 하나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쯤이면 좀 나아질 것이라 보느냐”라는 이 질문에 나는 미안하게도 특별히 해줄 말이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인데,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건너뛰더라도 가끔 한국의 게임 흐름이나 넓게는 국외의 게임 개발 방향에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이 인디 게임 개발자에게 한 답변은 그냥 신경쓰지 말고 달리라고 밖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법적인 분위기나 사회적인 분위기를 내가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그 이상 답변을 하면 희망고문이자 거짓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카탄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카탄이라면 보드게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카탄이 맞다. 정식 이름은 ‘카탄의 개척자(Settler of Catan)’이며, 한국에는 흔히 ‘카탄’으로 많이들 불렸다.

95년에 독일에서 나와서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인기를 끈 이 게임은 보드게임쪽에서 이야기 하는 독일식 보드 게임이라는 장르에서도 유별난 성공작이었다.

우리가 보드게임방에서 접하는 '카탄'이나 '카르카손' 등의 보드게임들은 대부분 독일 식 보드 게임이라는 형태의 보드 게임이다. ‘장르 이름에 국가 이름이 들어가다니. 독일의 보드게임 역사가 굉장히 깊나 보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히 지금 독일을 보드게임의 최강국이자 종주국으로 부를수 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처음은 미국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상업적인 보드게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노폴리'나 '인생게임' 등 익히 유명한 보드게임들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독일이나 유럽은 보드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미국산의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대가 있었다.

독일에서 그런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1983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에센 게임 박람회였다. 보드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꿈의 제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보드게임만을 위한 이 박람회는 지금도 열리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보드게임 박람회로, 올해의 게임 (Spiel des Jahres)이라 불리는 상을 만들었다.

그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일은 그 기후 특성상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박람회와 상들 덕분에 보드게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추천작을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마니아들은 마니아들대로 서로 만나고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났다.

또한 보드게임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넓히기 위해 가능한 시상식에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을 했고, 그 덕분에 올해의 게임상을 받은 보드게임은 큰 판매량을 보이면서 시장을 늘려나가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중간에 비디오게임에 위협을 받아 잠시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12년을 버텨 유럽에 조금씩 독일 중심의 보드게임 문화가 퍼져나갔다. 미국에 있는 보드게임 마니아 그룹에서 독일 보드 게임을 수입하기 시작하고, '카탄' 같은 히트작이 나오면서 독일 식 보드 게임이란 것이 자리잡았다. 이렇게 되는데 많은 사람의 노력과 기다림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 카탄과 독일식 보드게임 중심의 보드게임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보드게임방이란 문화가 형성된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 지금이야 2000년대 초만큼 보드게임방을 찾아보기가 힘들긴 하지만, 현재까지 살아남은 보드게임방은 여전히 수명을 유지하며 고정적인 손님들을 모으고 있다.

▲ 월간 플레이스테이션 2002년 10월호

2002년 이전에는 일본 보드게임의 카피인 '졸리게임' 씨리즈나, '부루마블', '인생게임' 등의 시장이 없지는 않았지만, (혹은 정말정말 일부가 워게임을 하거나 트레이딩 카드 게임 붐이 약간 올듯도 했지만) 아무래도 보드게임이란 것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문화로 인식된 것은 2002년일 것이다.

이런 흐름은 흥미롭게도 한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이전에는 독일식 보드게임은 대학생들 중에서도 일부가 즐기는 문화였다(사실 많은 게임들이 그래왔다. 머드게임도, 테이블 RPG 도 거의 이런식으로 초기에 유입되었다). 그런 흐름을 바꾼 것이 캡콤이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그 캡콤이 맞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캡콤에서도 오카모토 요시키씨였다. 지금이야 캡콤 소속이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캡콤의 개발 총 책임자였다. KGCA에서 오카모토 요시키씨를 초청해서 공개강연회를 열었다. 아마 2002년 무렵의 게임개발자 혹은 개발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이 행사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와서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요즘 카탄에 꽂혔다. 이건 정말 재밌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공개 강연이 끝난 후 '가위바위보' 등으로 자사 게임 물품들을 나눠주면서 '카탄'들도 함께 나누어주었던 것이었다. '카탄'의 일본 수입원 역시 캡콤이었고, 그 탓인지 캡콤의 한국법인이었던 코코캡콤에서도 카탄을 수입해서 팔기 시작했다. 심지어 국내 비디오 게임 잡지에 광고까지 싣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편 독일의 보드게임들을 수입해서 즐길수 있는 보드게임방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첫 번째 수요는 독일식 보드게임에 익숙해있던 동아리 학생들이었지만, '카탄'과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보드게임방은 학생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보드게임 전개 역시 독일에 비해 빠르긴 하지만 어떤 흐름이 생겼을 때, 그 때까지 그것들을 사랑해오고 지탱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붐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KGCA의 공개강연회가 없었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에서 게임의 흐름은 아직까지 문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까지는 산업논리에 따라 흘러왔다. 아무래도 돈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자라난 문화의 씨앗은 그 싹을 틔울 기회를 받지 못하던가, 받았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저 지속가능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패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속 흐름을 만드려는 노력은 있었으니, 이런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물어뜯지 않고 서로 발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면 한국에서도 저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때까지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오영욱 기자 krucef@gmail.com

■ 오영욱은?

재믹스와 IBM-PC로 게임인생을 시작해서 지금은 게임프로그래머가 된 게임개발자다.

연세대 화학공학과 01학번인 오영욱씨는 2006년 네오플에서 '던전 앤 파이터' 개발에 참여한 후 플래시게임에 매력을 느껴 웹게임 '아포칼립스'(플로우게임즈)를 개발하고, 소셜게임 '아크로폴리스'(플로우게임즈), 모바일 소셜게임 '포니타운'(바닐라브리즈)에서 개발에 참여했다.

8년간 게임개발 외에 게임 기회서 '소셜 게임 디자인의 법칙'(비제이퍼블릭)을 공역했고, '한국 게임의 역사'(북코리아) 공저로 집필에 참여했다. '이후'라는 필명으로 Gamemook.com 에서 게임 개발자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