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재수 시절 처음 만난 게임은 초콜릿맛, 변태같은 결벽증 빛을 발하는 곳

기자 명함을 손에 든 지 6개월, 기자에게 사람들이 만나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일은 어때요? 재밌어요? 할 만해요?” 콤보 질문세트다. 기자도 역시 “네. 원래부터 게임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라며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런데 최근까지 175번 정도(?) 이 말을 하고 나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왜 게임을 좋아할까? 단순히 ‘재미있어서’라는 이유로는 부족하다. 쌍꺼풀이 있는 여자는 화려한 매력이 있고, 쌍꺼풀이 없는 여자는 동양적 매력이 있듯 ‘재미없는 게임’도 그만의 매력이 있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를 초월해 게임이 좋은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 KBS2 ‘대국민토크쇼 안녕하세요', 게임폐인녀 방송 캡처
기자가 온라인 게임을 각 잡고 시작한 것은 20살 때부터다. 고3 수능 시험을 마치고 친구들과 다같이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처음 접한 게임에서 단순한 재미를 넘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수능에 실패하고 재수를 준비하던 중 어려운 인던을 하나씩 클리어하고,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며 ‘하나씩 이루어가는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힘들 때 도와주는 사람이 끝까지 기억에 남는 법이다. 힘든 시절 재수 시절 처음 접한 게임은 처음 맛본 초콜릿처럼 강렬하게 남았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대학만 붙으면 맨날 술도 마시고, 데이트도 하고, 친구랑 놀 거야’라며 힘든 시기를 이겨냈던 것과는 살짝 다르게 ‘대학만 붙으면 집에서 눈치 안보고 원 없이 게임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또한 게임은 변태 같은 집착이 빛을 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자의 경우 한번 모으기로 마음먹은 것은 빠짐없이 모아야 하는 수집욕과 크기별 혹은 색깔별로 줄맞춰 서있지 않은 물건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영화표와 팸플릿을 모으던 시기에는 책장 하나가 파일로 가득 차있기도 했고, 우연히 들른 중고 서점에서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책을 보고 정리하려는 기자를 친구가 뜯어말리기도 했을 정도다.

▲ KBS 2TV '스타 인생극장' 방송 캡처
현실에서는 피곤하고 변태 같은 일종의 결벽증이지만, 게임에서는 빛을 발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일 년이 걸린 게임 내 업적을 한 달 만에 끝내는 것은 물론, 애완동물 수집을 위해 몇 시간씩 화면을 보고 클릭을 해야 하는 단순 노동도 불평 없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길드 은행의 창고 정리 담당 역시 자발적으로 지원해 기쁜 마음으로 했다. 어찌나 행복해하며 정리했는지 길드원들이 일부러 창고를 어질러 일거리를 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노래를 못하는 기자가 친구들이 노래방을 가자고 할 때 슬쩍 PC방으로 빠져서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휴일에 밖에 나가고 않고 게임만 했더니 돈 쓸 일이 없어서 강제 제태크를 할 수 있다는 점, 생판 처음 보는 남자와도 ’와우? 롤? 서든?‘ 마법의 세 단어로 금방 친해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 등 게임이 좋은 이유를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버스커버스커의 1집 노래 중 ‘이상형’에서 “좋아요 너의 통통한 손목/ 좋아요 너의 꼬불꼬불 곱슬머리/ 좋아요 너의 하나하나들이/ 좋아요 너의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라는 부분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통한 손목’과 ‘곱슬머리’, ‘하이톤의 목소리’는 매력을 느끼기에는 특이한 요소다. 노래 속에 나오는 ‘새끼 발톱’, ‘아홉 번째 척추’, ‘쪼글쪼글 팔꿈치’ 역시 ‘이상형’의 요소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너’가 좋기 때문에 ‘너의 하나하나’들이 좋을 수 있는 것이다.

한번은 정말 궁금해서 오글거림을 꾹 참고 남자친구에게 “내가 왜 좋아?”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담백하게 “그냥. 좋은데 이유 있나?”라고 대답했다. 정답이자 명답이다. 위에 나열한 이유도 ‘게임’ 자체가 좋기 때문에 그 모든 하나하나가 좋은 것이다. 따라서 ‘게임이 왜 좋은지?’에 대한 결론도 ‘그냥 좋다’가 정답이지 싶다.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