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주 생일 있는데…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 잔했습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의 포스팅을 보다가 멍했다. 그랬구나. 고 김정주 의장의 생일이었구나. 그렇다면 벌써 1주기…
지난해 2월 27일이 떠오른다. 한국 게임업계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믿을 수 없었고 멍했다.
김 의장의 타계 소식 이후 주위에서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해왔다.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은 “엄청난 부자가 왜 그렇게 일찍?”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넥슨을 시가총액 24조, 매출 3조 게임사로 키워낸 그가 세상을 떠난 이유를 말이다.
당시 지주회사 NXC 측은 “유가족 모두 황망한 상황이라 자세히 설명 드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최근 들어 악화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고 전했다.
2015년 출간된 ‘플레이’는 넥슨 창업 시절이 담겨 있다. 오랜만에 이 책을 펼쳐봤다. 서울 강남구 성지하이츠2 오피스텔 2009호. 이곳에서 1994년 당시 스물일곱살 고인은 부인인 유정현 감사, 송재경 대표와 함께 넥슨을 창업했다.
대학생 알바 서민(전 넥슨대표)을 비롯 정상원, 이재교, 데이비드 리, 강신철, 이승찬, 김동건, 최승우, 오웬 마호니, 박지원 등 내가 알고 있는 넥슨의 영광을 일궈온 이름들이 줄지어 나왔다.
그 중 ‘김정주에게 묻다’라는 인터뷰를 읽어봤다. 그 중에서 디즈니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어있는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기운, 참, 디즈니 본사 건물에 일곱난쟁이가 사는 건 아세요? 디즈니는 일곱난쟁이를 그만큼 소중히 여기는 거죠. 디즈니는 이것이란 거죠. 넥슨은 아직 그런 게 없어요. 거의 없다피시 하죠”
그는 디즈니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로 봤다.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보고 싶어했다. 넥슨의 게임이 대중에게 불량식품처럼 취급되는 것에 반해 디즈니의 콘텐츠는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으며 부모도 같이 줄서서 즐기는 모습이 부럽다는 것이다.
똘똘한 게임 IP를 가진 닌텐도와 EA, 애니메이션 IP를 가진 디즈니, 그들을 쫓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하우와 경험을 위해 LA에 갈 때마다 디즈니 본사를 찾아갔다.
한국 게임업계의 1세대이면서 선구자였지만 생태계보다 생존이 문제였던 시기도 언급했다.
“이승찬한테 ‘메이플스토리’를 살 때도, 허민한테 ‘던전앤파이터’를 살 때도 결국 생존이 문제였다”며 “그런 딜을 성공시켜야 넥슨도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다음 세대한테도 다음 세대의 넥슨이 가능할까요?”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봐요. 그런 꿈을 꾸는 친구들을 제가 돕고 있어요”
벤처 넥슨은 이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장했다. 생존 시 그가 웃으면서 내게 건넸던 말이 생각난다.
“제가 인수한 넥슨모바일에 갔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문 앞에서 출입을 막아 확인을 마치고 들어갈 수 있었어요.”
고 김정주, 그가 있을 때 넥슨엔 회장이 없었다. 비서도 없었다. 그래도 넥슨은 한국 최대 회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개인적으로 ‘꿈을 꾸는 친구들’을 많이 도왔다.
프랑스 작가 푸르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빵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머니와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문득 서울 이문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학생식당에서 배식구 앞에서 그와 같이 줄을 섰던 기억이 난다. 그는 찢어진 청바지에다 니트웨어의 자유로운 옷차림이었다. 학생식당 카운터 직원은 그에게 “교수님이시죠?”라고 물었다.
내가 식탁에 식판을 내려놓을 때였다. 숟가락이 뚝 떨어졌다. 그는 날쌔게 달려가 새 숟가락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야외서 커피를 마시며 ‘디즈니’와 ‘EA’인수 시도 실패 등을 물었던 것 같다. 특유의 선문답… 그래서 되레 내가 질문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떠난 지 1년, 다행인 것은 스티브 잡스 이후에도 애플이 세계 최고 회사인 것처럼 넥슨도 ‘포스트 김정주’ 시대로 연착륙하고 있다. 그리워도 이제 김정주라는 이름을 잊어야겠다. 그래도 안심이다. 그 정도로 그가 남긴 성과는 한국 게임 역사에 오롯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