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桑田碧海). 지난 10년간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다. 수많은 게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트렌드에도 쉼없는 변화가 몰아쳤다. 게임톡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간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에서 나타난 주요 변화들을 살펴봤다.
주류 플랫폼의 변화, PC에서 모바일로
한국 온라인게임 역사의 태동기부터 2010년경까지는 PC 플랫폼이 주도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과 무선 통신의 발달로 모바일게임 시장이 급성장했다. 특히 2012년 카카오톡의 ‘게임하기’와 연계된 모바일게임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큰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 플랫폼의 주도권은 PC에서 모바일로 완전히 넘어가게 됐다.
모바일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캐주얼 장르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었다. MMORPG나 배틀로얄 등 하드코어 장르에서도 이른바 ‘오토(자동사냥 기능)’를 도입하면서 빠르게 대중성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모바일게임 트렌드는 하는 게임에서 보는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초기에는 자동사냥 기능에 대한 유저들과 개발자들의 저항감이 강했으나, 지금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정받고 있다.
‘M’의 등장, 더욱 중요해진 게임 IP
지난 10년간 게임 트렌드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특징 중 하나는 PC 온라인게임에서 인기있었던 IP(지적재산권)를 모바일게임에 그대로 가져온 게임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 게임들은 원작 온라인게임의 이름에 모바일을 뜻하는 ‘M’을 붙여 출시됐기에 ‘M 게임’으로도 불렸다. 비슷한 게임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원작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 있어 초반 마케팅 효과가 뛰어났고, 실제로 많은 게임들이 매출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웬만큼 인기 있었던 PC 온라인게임 상당수가 모바일게임으로 다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온라인게임 IP의 흥행 파워가 입증되면서 IP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일부 게임사들은 하나의 IP를 이용해 수십개에 달하는 모바일게임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신규 IP 기반의 게임들이 성공할 확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쓸만한 IP를 확보할 수 없었던 중소게임사들은 어려움을 겪었고, 모바일게임 시장은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게임사 위주로 재편됐다.
PC 게임들의 글로벌 대성공, 스팀 출시는 필수
하지만 PC 게임들도 가만히 앉아 도태되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일부 게임들은 한국이 아닌 세계로 눈을 돌렸다.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수천만명의 MAU(월 이용자 수)를 보유한 글로벌 게임 플랫폼 스팀(Steam)이다. 사용자가 많은 만큼 경쟁해야 할 게임들도 많았지만, 일단 주목받기 시작하면 판매량은 눈에 띄게 늘었다. 크래프톤의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는 스팀 출시 몇 년이 지나지 않아 70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최근 스팀에 진출한 ‘로스트아크’도 동시접속자 100만명 이상을 기록하며 글로벌 히트작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PC 게임 또는 콘솔/PC 멀티플랫폼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은 대부분 스팀 출시를 반드시 고려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2018년 밸브가 국내 PC방 사업주들을 상대로 라이선스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이제 PC방에서도 스팀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장르 지각변동, MOBA-배틀로얄 급부상
2000년대의 대전게임에서 RTS(실시간전략)게임과 FPS(1인칭슈팅)게임이 전성기를 누렸다면, 2010년 이후부터는 MOBA(멀티플레이어 온라인 배틀 아레나)게임과 배틀로얄게임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초창기 AOS게임으로도 불렸던 MOBA는 여러 명의 유저가 2개의 팀으로 나뉘어 필드에서 맞붙는 팀 대전 게임이다.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RPG적 요소와 상대의 기지를 파괴해야 승리하는 공성전 요소가 결합됐다. 2011년 한국에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PC방 순위 최상위권을 지킬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가 대표적이다.
배틀로얄게임은 수많은 유저가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각개전투를 벌이는 게임이다. 2017년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가 전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순식간에 주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쏟아질 정도로 한국 및 전세계 게임 트렌드에 큰 영향을 줬다.
비즈니스모델의 변화, 확률형 아이템 논란
게임의 비즈니스모델(BM)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한 때는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제한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월구독료 모델이 대세일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 외산 게임을 제외하고 월구독료 모델을 찾기 힘들어졌다. 대신 게임 자체는 무료로 즐기되, 시즌권을 구매하면 진척도에 따라 추가 보상을 받는 ‘시즌패스’가 새로운 BM으로 떠올랐다.
상자 안에 무작위 상품이 들어 있고, 구매한 후에야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은 지난 10년간 대부분의 게임들이 채택하고 있는 핵심 BM 중 하나다. 하지만 지나친 과금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큰 반발을 낳았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현재진행형인 논란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트럭 시위, 유저들의 적극적인 집단 행동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저들이 게임에 불만족했을 경우 개별적인 행동을 취했다. 게임사들이 자체 운영하는 상담센터에 항의하거나, 소비자고발센터에 신고하거나, 직접 게임사를 방문해 항의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유저들이 힘을 합쳐 소비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유저들의 집단 행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이콧 운동을 펼치거나 게임 속에서 단체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같은 집단 행동은 현실로도 이어졌다. 유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활동비를 모금하고, 게임사와 국회 등으로 항의 메시지를 담은 트럭을 보냈다. 이른바 ‘트럭 시위’다. 이에 깜짝 놀란 게임사들은 그동안 유지해왔던 ‘불통’에서 벗어나 긴급 유저간담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게임의 급부상,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한 때 중국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주요 소비국이었다. ‘미르의전설2’, ‘뮤’, ‘크로스파이어’로 대표되는 한국 게임들은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중국에서도 게임을 만들어 해외 진출을 시도했으나, 낮은 품질로 인해 한국과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게임의 위상은 1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제 중국은 게임 생산국으로서도 명성을 높이고 있다. 중국 게임들의 품질은 10년간 꾸준히 상승했고, 중국 당국이 게임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면서 내수가 아닌 해외를 겨냥한 게임들도 크게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미호요의 ‘원신’이 있다. 높은 완성도를 앞세운 ‘원신’은 전세계 모바일게임 월매출 1위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게임으로 입지를 굳혔다.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중국 게임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모습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됐다.
e스포츠의 위상 격상,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화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시작된 e스포츠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2021년 기준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의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7000만명을 넘어섰다. 이제 e스포츠는 소수의 너드 문화가 아닌 전세계가 즐기는 주류 문화로 거듭났다.
e스포츠의 위상은 전통적인 스포츠의 범주로 인정받으면서 더욱 높아지는 중이다. e스포츠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시범 종목에 선정됐으며,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e스포츠가 아시안게임을 발판으로 삼아 올림픽에도 입성할 수 있을지가 다음 관심사다.
야근 금지, 워라밸에 주목하는 게임사들
그동안 게임 산업에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은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휴일에도 24시간 라이브 서비스를 해야 하고, 게임 출시 직전에 강도 높은 마무리 작업에 돌입하는 ‘크런치’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8년 주 52시간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게임업계에 만연하던 장기간 근로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이제는 많은 게임사들이 야근을 권장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서구권 등 전세계 게임산업이 근래에 함께 맞은 변화 중 하나다.
근로 시간 뿐만 아니라 포괄임금제 폐지와 고용불안 해결 등 여타의 노동 환경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2018년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에서는 게임업계 최초로 노조가 설립됐다.
게임업계 새 패러다임, 블록체인과 P2E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게임업계는 NFT(대체불가능토큰)와 P2E(Play to Earn)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고유한 인식값을 부여한 디지털 자산이다. 희소성과 유일성으로 인해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갖게 된다. P2E는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뜻으로, 블록체인 기반 게임에서 NFT 등의 아이템을 거래해 수익을 얻는 모델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신 성장동력으로 NFT와 P2E에 주목하고 있다. 위메이드가 NFT와 P2E을 적용한 ‘미르4’를 출시해 좋은 성과를 거뒀으며, 다른 게임사들도 올해 안에 잇따라 비슷한 형식의 게임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NFT의 환경 파괴 문제, 국내 규제 문제, P2E으로 실제 벌어들이는 돈이 적다는 점 등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