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아키히토 천황 퇴위 속, 일본 천황 수천 년 미스터리 시선집중

[김정기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지난해 8월 일본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기자회견을 통해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1989년 1월 7일 즉위한 그는 실제로 올해 4월 30일 퇴위한다.

그의 퇴위와 함께 헤이세이 시대도 막을 내린다. 아키히토 천황은 히로히토 천황이 2차대전 항복문서에 서명한 1945년, 당시 만 11세 황세자였다. 

그의 전격적인 퇴위는 건강이 주된 이유였지만, 아베 정권의 개헌 및 천황의 ‘일본국 원수’ 구절 삽입 안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분석한 예가 적지 않았다.

아키히토 천황 퇴위 소식과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김정기 외국어대 명예 교수의 ‘일본 천황, 그는 누구인가’다. 일본 근대정치사를 전공한 그가 6년간 연구한 저서로 일본의 천황이라는 존재와 현재의 모습을 꼼꼼히 해부한 책이다.

■ 천황, 인간이면서도 신성을 가진 ‘현인신’...일본 근대정치사 전공 6년간 연구

현재 입헌군주제 국가인 일본에서 역사적으로 왕은 독특한 존재였다. 인간이면서도 신성을 가진 ‘현인신’(現人神·사람의 모습을 한 신, 아라비토가미)으로 여겨졌다.

이 같은 일본 천황을 둘러싼 수천 년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연구서가 ‘일본 천황, 그는 누구인가:그 우상의 신화’(푸른사상)다.

갈수록 우경화로 치닫는 오늘날의 일본을 생각할 때, 일본 근대정치사를 전공한 저자가 다년간의 문헌 조사와 현장 답사를 통해 분석한 천황론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일본 우경화의 중심축에는 현인신 천황상이 어김없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일본 근대정치사를 전공한 김정기 교수는 6년간의 문헌 조사와 현장 답사를 통해 일왕에게 제기되는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

그는 메이지(明治) 유신을 거쳐 만들어진 일왕의 '현인신'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하고, 고대 일왕은 한반도에서 건너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 메이지-쇼와 현인신 천황 상, 현대 정치신화 기법 창조물

일본 천황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천황을 현인신(現人神, 아라비토가미)으로 보는 관념이 생긴 배경, 천황의 본관이 한반도가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 천황가의 조상신 천조대신(天照大御神,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은 누구인가, ‘삼한정벌’의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신공황후(神功皇后)는 누구인가 등 의문을 가져야 할 것들이 많다.

책은 천황의 조상신 천조대신의 원상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농경신임을 밝히고, ‘기기’가 전하는 신공황후 전설이 가진 의미를 되새긴다. 또한 ‘일본 천황의 한적설’서는 천조대신-신공황후를 한반도에서 바다를 건너간 무녀왕으로서 특징지을 수 있는 데서 보듯이 천황의 고향이 한반도라는 설을 다룬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역점을 두어 밝히고자 한 것은 메이지(明治)-쇼와(昭和)로 상징되는 근대 일본 천황이다. 일본의 현인신 천황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특성이 무엇이며, 한반도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책은 그 의문을 풀어가는 긴 여정 끝에 나온 성과물이다.

저자는 6년간 수많은 문헌을 참조했고 쓰시마(対馬), 이즈모(出雲), 무사시(武蔵) 등의 현장을 답사했다. 또한 이 책의 중요한 화두가 된 일본 신도의 현장으로서 고마(高麗)신사, 이즈모(出雲) 대사, 히카와(永川) 신사, 하코네(箱根) 신사, 쓰시마의 와다쓰미(海神) 신사 등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 결과 그가 찾아낸 해답을 간단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메이지-쇼와 현인신 천황 상은 현대 정치신화 기법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라는 것, 적어도 5세기 전후의 오진(応神)·게이타이(継体) 천황은 한반도에서 온 정복왕이라는 것, 그리고 천조대신과 신공황후는 한반도 남부에서 건너간 무녀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은이가 한일 고대사 학자들의 증언, 일본 고문헌의 고증, 고고학적인 성과를 근거로 내린 해석에 의한 것이다.

■ 메이지 근대 천황제가 군국천황제로 둔갑 ‘숨겨진 신정’

이 책의 ‘천황교를 창작한 국학자들’에서는 에도 중기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를 중심으로 국학자들이 펼친 천황교의 절대신관을 파헤치고 있다. 이어 ‘일본 신국론, 그리고 국체사상’은 기타바타케 지카후사의 ‘신황정통기’가 담은 신국론과 메이지 시대 이래 국체사상의 정체를 다룬다.

그리고 메이지 근대 천황제가 군국천황제로 둔갑한 배경과 군국천황제의 특질을 살핀다. 

‘창작된 정치신화’에서는 메이지-쇼와 천황으로 대표되는 군국천황상을 파악하는 기본모델로 에른스트 카시러가 제시한 ‘현대 정치신화’ 모델을 가져온다. 메이지 왕정이 ‘숨겨진 신정(神政)체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고증한다. 군국 일본의 패망 뒤 들어선 상징 천황으로서 쇼와 천황의 실상은 무엇인가를 살핀다.

또한 천황 연구는 천황이라는 일본 정치의 중요한 한 축이 갖는 의미를 밝혀준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천황’으로 상징되는 ‘신국(神國)’의 찬탈성을 드러내는 소재가 된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천황이라는 상징어는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의식 형성에 직결되는데, 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두 이웃나라 간 상호 이해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지금 아베 정권은 우경화한 일본을 메이지 헌법 체제로 복귀시키려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안에서 천황을 ‘국가원수’로 승격시키는가 하면 저 악명 높은 ‘교육칙어’로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때 일본 천황제가 지닌 반문명적인 야만성을 천황 연구가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일본 우경화에 발맞추는 듯 지금 일본에서는 국체(国体)사상을 고취하는 분위기를 간취할 수 있다.

아키히토 천황은 11세에 부친 히로히토 천황이 2차대전 항복문서에 서명한 모습을 보고 난 후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자고 촉구해왔다.

중국 등 2차대전 피해국을 방문할 때면 그는 그 어떤 일본 정치인보다 더 진솔하게 과거의 그릇됨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기념일 기자회견이나 이런저런 행사의 기념사를 하는 자리에 설 때마다 기억과 반성을 주문하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자고 촉구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현행 일본 헌법 즉 평화헌법에 따르면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특히 아키히토 천황는 중심인물이었다. 아히토키 천황의 퇴위 이후 아베정권의 우경화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김정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정치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부 명예교수. 저서로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I·II), 『전후 일본정치와 매스미디어』, 『전환기의 방송정책』, 『미의 나라 조선: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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