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에 e스포츠 등장했지만, 아직도 좁은 게임의 입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예선전. 출처: KBS스포츠]

2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한국 e스포츠 국가대표팀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리그오브레전드’ 예선전을 치렀다. 비록 정식종목이 아닌 시범종목이지만,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e스포츠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날이다. 자랑스럽게도 한국 국가대표팀은 베트남과 중국을 모두 꺾으며 조별 1위에 한발짝 다가섰다. 게다가 공중파 방송에서 최초로 e스포츠 중계까지 해줬다. 그늘에서 설움만 받다가 갑자기 ‘인싸’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방송을 통해 비춰진 예선경기 현장 모습은 실망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10대의 PC가 5대씩 마주보는 형태의 배치는 한국 동네 PC방 대회보다도 열악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정면을 응시하면 상대 팀의 얼굴과 입모양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방음 시설이라고는 헤드셋이 전부였다. 물론 선수들이 입모양만 보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고 전략을 간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가운데에 차단벽 정도는 세워줄 수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차단벽을 구매할 예산이 없었다기보다는 e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번 아시안게임이 e스포츠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고르게 열악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 e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처음 선정된 대회라는 점, 본선은 부스가 있는 스테이지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그래도 인도네시아에서 e스포츠의 인식이 어떤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롤드컵’이 최고 시청자수 8000만명을 기록한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동네 PC방 대회 수준의 취급을 받는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사례다.

인도네시아에 비하면 그나마 한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게임과 범죄를 연관짓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이를 다수가 반박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광안리 10만 관객 신화’가 생길 정도로 e스포츠 관객층도 두텁다. 게임에 대한 젊은이들의 인식도 (다른 나라에 비해) 긍정적이다.

[캐나다에서 게이머는 무시당한다고 말하는 기욤패트리. 출처: JTBC 비정상회담]

한국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던 방송인 기욤 패트리는 2014년 한 방송에 나와 한국의 게임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캐나다에서는 게임을 많이 하면 무시당하지만, 한국에서는 인정받는다”며 “한국에서 존경도 받고 팬도 생겼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한국에서도 게임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고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자기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권에서 게이머에 대한 고정관념을 살펴보면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뚱뚱하고 여드름많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너드(nerd)로 묘사된다.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의 한 에피소드에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형상화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방영된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게이머를 비하하는 밈(meme)으로 자주 쓰인다.

[서구권이 바라보는 게이머의 전형적 모습. 출처: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

PC방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다. 미국인 유튜버 ‘박개대’는 “미국에도 PC방이 있지만, 루저들을 위한 장소라는 관념이 있다”며 “어둡고, 냄새나고, 사교적이지 않고, 머무르기에는 역겨운 곳이라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한국의 PC방은 엄청 깨끗하고, 불빛도 밝고, 의자도 좋고, 게임을 즐기기 좋은 곳”이라며 “영화관람보다 싼 가격에 좋은 경험을 제공해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외국인들은 PC방 경험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자부심이 많다. 그들은 (게임을 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신을 더 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튜버 박개대. 출처:유튜브]

외국에서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게임의 입지를 보고 있자면 그래도 한국이 낫다는 점을 다행이라고 느껴야 할지,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지 복잡한 기분이다. 그래도 이번 아시안게임으로 인해 게임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바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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