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엔진의 대명사 언리얼 엔진, 개발 편의주의에 기여하다

게임별곡 시즌2 [에픽게임즈 4편]

■ 게임 엔진을 만들다

지난 편까지 에픽 메가 게임즈의 창업 이후 초기 게임들을 살펴봤다. 잘 나가는 지금의 에픽게임즈의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998년 역사적인 게임 ‘언리얼’을 출시한 이후 갑자기 극적인 반전을 하게 된다. 1세대 ‘언리얼 엔진’은 1994년부터 개발을 시작해서 1996년에 출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시에 회사 내부에 3D 관련 기술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큰 빛을 보지 못했다. 1998년에서야 게임 ‘언리얼’을 출시하고 회사는 극적인 반전에 성공해 지금의 에픽 게임즈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게임 개발자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게임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게임엔진’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게임엔진은 쉽게 말해서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각종 재료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게임엔진을 간혹 게임의 그래픽에 관련 된 프로그램 정도로 알고 있는 분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게임엔진이라는 것은 90년대 초반에 게임의 그래픽 작업을 위한 ‘렌더러’에서 출발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게임엔진의 시초를 꼽는다면 ‘둠’ 시리즈로 유명한 존 카멕이 자신이 개발한 게임들인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의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하면서부터다. ‘퀘이크 엔진’을 판매하는 것이 게임엔진의 현재 위치를 확립하게 된 시작으로 본다.
 

사실 언리얼 엔진이 나오게 된 배경도 존 카멕과 연관돼 있다. 그 당시 ‘질 오브 더 정글’ 시리즈나 ‘Xargon’ 같은 아케이드 게임들을 개발하던 에픽 메가 게임즈는 존 카멕이 개발한 ‘둠’을 보고 ‘자신들의 2D 횡 스크롤 아케이드 게임은 이미 레드오션이 된지 오래고 향후 미래의 게임은 3D가 대세가 될 것’이라 예견했기 때문이다.

언리얼 엔진
(이미지 – https://forums.unrealengine.com/unreal-engine/)

문제는 에픽 메가 게임즈에서 제대로 된 3D 게임을 개발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에 2D 위주의 게임들만 개발하던 회사 입장에서 갑자기 3D 게임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았다. 실제로도 1994년 개발을 시작한 언리얼 엔진은 3D 게임 엔진을 표방했음에도 불구, 개발 도중에 여러 번 뒤집어 엎기를 반복하다 결국 ‘언리얼’이라는 FPS게임을 개발하면서 FPS 게임 엔진으로 새출발했다. 애초에 범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게임엔진이지만, 시작은 전용 엔진일뿐이었고 초기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게임의 장르는 한정돼 있었다.

‘언리얼’ (1998)
(이미지 – https://www.oldpcgaming.net/unreal-review/)

필자도 예전 회사에서 ‘쥬피터 EX’ 엔진으로 게임을 개발하던 때가 있었는데, 게임엔진의 한계상 지원되지 않거나 구현하기 힘든 기획요소들은 1차적으로 게임엔진의 기술지원에 따라 추가되거나 변경되는 일이 잦았다.

물론 엔진에 의존하지 않고 새롭게 추가하면서 개발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되지 못했다. 회사 차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체개발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일이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게임엔진을 구매해서 더 적은 개발비용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만드느니, 어느 정도는 구현되어 있어서 그냥 가져다 쓰거나 조금만 수정하면 되는 게임엔진을 사다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여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경영진에 의해 일정관리가 이루어지는 작금의 (일부) 한국 게임 개발 업체들은 자체 개발에 소요되는 일정 추가를 곱게 봐주지도 않는 법이다. 게다가 남의 속 사정도 모르고 ‘아니 쟤네 회사는 다 됐는데 우리는 왜 안돼?’라는 ‘목불식정(目不識丁)’의 경영자가 있는 회사일수록 그 현상은 더하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자동차의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인 엔진을 사왔으니 개발자 너희들은 이제 문짝 달고 시트 넣고 불만 들어오게 하면 차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복장 터지는 소리를 비단 필자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언리얼 엔진
(이미지 – https://forums.unrealengine.com/unreal-engine/)

이렇게 게임엔진에는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안 쓰자니 처음부터 개발할 엄두가 안 나고, 쓰자니 또 이 게임이나 저 게임이나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함을 주자니 다시 개발해야 하고 참으로 난감함의 연속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적게 잡아도 몇 억원 이상 주고 산 게임엔진을 닳도록 써먹어야 하는 입장이고 그 값어치를 개발자들이 해주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게임엔진은 늘 회사와 개발자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요물이기도 했다(그나마 최근에는 구독이라는 개념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하지만, 누가 뭐래도 최근의 대세는 게임엔진이다. 모바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유니티3D 엔진’이 가장 많이 보편화되고 널리 쓰이고 있는데, 지금의 이런 개발자 편의주의 세상을 만들어 주기까지 언리얼 엔진이 기여한 공로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많은 게임엔진들이 있었지만, 언리얼 엔진이야말로 게임엔진의 역사를 새로 썼다. 1994년 개발된 1세대 언리얼 엔진이 2세대, 3세대를 거쳐 현재 4세대인 언리얼 엔진 4까지 왔다. 조금 과장해서 시장에 출시되는 게임의 절반 가량은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예전에는 ‘돈 많은 회사는 언리얼, 돈 없는 회사는 유니티’라는 다소 기이하지만 실제로도 그런 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자 가격정책부터 지원 기능까지 영역을 나눠가지며 어느 하나만으로 절대 우위를 점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하지만 언리얼 엔진은 한 때 시장의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고, 자금력의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언리얼 엔진을 쓰고 싶어했을 정로도 게임엔진의 전부이자 대명사였다. 현재도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자는 전 세계 5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에서도 한국은 최고 우수고객 중에 하나이고 매년 그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500만이라는 숫자는 언리얼에 무료 가입한 계정 숫자만 집계한 것이고, 커스텀 라이선스라고 해서 맞춤형 계약을 한 곳(대형 게임 개발 업체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회사들이 개발팀의 전체 사용 숫자를 에픽게임즈에 보고할 의무는 없기 때문에,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회사 단위까지 모두 포함해 500만명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가히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의 필수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세대 언리얼 엔진으로는 PC용 게임과 소니의 PS2, 세가의 드림캐스트로 발매된 모든 프로젝트까지 도합 50여 개 정도의 타이틀이 만들어졌지만, 2세대 언리얼 엔진 이후부터는 대작 게임의 대부분은 언리얼 엔진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게임 개발에 쓰였다.

현재도 언리얼 엔진은 계속해서 발전해가며 초기 비용 압박에 시달리던 개발자들을 위해 합리적인 비용 정책으로 더욱 더 여세를 몰아가며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의 필수 개발도구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를 보면서 국내의 대형 게임 개발사들이 게임엔진 투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미온적으로 대하는 분위기에 다소 아쉬운 마음도 든다.

■ 필자의 잡소리

2017년 기준으로 언리얼 엔진의 최대 사용시간을 집계해보면 서울이 1위라고 한다. 전 세계 집계임을 감안할 때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응할만한 국산 게임엔진의 부재가 안타깝기도 한 순위다. 이어서 중국의 베이징이 2위, 일본 도쿄가 5위였다. 재미있는 점은 성남이 8위에 올랐다는 것인데, 전 세계에서 경기도 성남이 언리얼 엔진 사용이 8위라는 것은 아마도 판교에 중/대형 게임 개발사들이 많이 몰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위에 랭크된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미국의 경우 대부분 10위 밖으로 밀려나 있는데 아마도 자체 개발을 하는 회사가 많거나 다양한 게임엔진을 활용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도 이제는 획일적이고 기술 제약에 의존적인 개발환경이 아니라 다양한 개발환경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는 때가 되었으면 한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