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레인저’, 한국 최초의 IBM-PC 호환 상업용 게임

게임별곡 시즌2 [소프트액션 - ‘폭스 레인저’]

■ 사막에 피어난 한 포기 꽃 같던 게임 

지금까지 게임별곡 시즌1과 시즌2에서 수많은 게임회사와 게임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아마 국산 게임에 대해 다룬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유난히 사대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세계 반열에까지 오른 국산 게임이 많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에는 국산 게임들이 세계 무대를 주름잡고 국가의 해외 수출 문화 콘텐츠 중에 큰 수익을 내는 효자 상품이 됐다. 하지만 1980~1990년대는 국산 게임들은 대부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보다는 이제 막 발돋움하는 시기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Fox Ranger 이미지]

‘폭스 레인저’는 국산 게임의 태동기인 1992년 출시됐다. 이 게임은 최초의 상업용 게임이라는 타이틀도 함께 장식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국산 최초의 상업용 게임이라는 타이틀은 따로 있다. 바로 ‘신검의 전설’이라는 정말 전설적인 게임이다. 고등학생의 신분이었던 개발자 남인환씨가 무려 1987년에 Apple-II 용으로 개발한 게임이 최초의 한국 상업용 게임으로 기록돼 있다. 다만 ‘신검의 전설’은 Apple-II 용 게임이며, IBM-PC 게임으로 치면 ‘폭스 레인저’가 최초의 IBM-PC 호환 상업용 게임인 것은 맞다.

[신검의 전설 이미지]

최초의 국산 상업용 게임으로 기록된 ‘신검의 전설’ 타이틀 화면에는 21세기인 지금도 근절되지 않는 무단 불법 복제에 대한 경고가 써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제대로 돈을 내고 이 게임을 산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개발자의 수익은 거의 0원에 수렴한다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해진다.  

‘신검의 전설’ 이후와 ‘폭스 레인저’ 출시 사이에 주목 받은 국산 게임도 있었다. 바로 ‘폭스 레인저’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그날이 오면’이라는 슈팅 게임이다. 이 게임은 미리내 소프트웨어가 개발한 게임으로, 1989년에 시리즈 1편이 출시될 뻔 했지만 당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식 출시는 되지 못했다. 시리즈 2편은 1990년에 MSX 기종으로 출시됐고, IBM-PC용은 1993년에 출시한 ‘그날이 오면3’로 기록되어 있다. 불과 1년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폭스 레이저’에게 IBM-PC 최초의 국산 상업용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뺏겼지만 그 이후 시리즈 5편까지 롱런 히트하고 2014년에는 모바일 버전으로도 출시됐다.

여러 가지 기준으로 ‘최초’라는 타이틀의 기준을 매길 수 있지만, ‘폭스 레인저’는 IBM-PC 호환기종으로 출시한 최초의 국산 상업용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IBM-PC 기종이 중요하다). MSX를 기준으로 하느냐 정말 최초의 최초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지기는 하지만, 필자가 최초라고 보는 시점은 기종에 따른 분류라기보다는 보다 더 폭넓게 광범위한 시장에 배포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여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폭스 레인저’야말로 국산 게임의 시작을 알린 게임이라고 보여진다.

‘그 당시 정품 게임들’
(이미지 – http://thefloppydisk.com/old/games/indiana_jones_and_the_last_crusade_ibm_ega_525/)

지금도 불법복제가 기승을 부리지만, 그 당시(1980~1990년) 불법복제는 훨씬 심각했다. 지하상가나 컴퓨터 상가에서 IBM-PC용 게임을 디스켓 1장당 얼마에 복사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 게임의 정식 유통 구조가 없었던 것이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이나 해외 통신망을 통해서 입수한 해외 게임들을 PC통신이나 디스켓 복사 등으로 국내에 전파되던 것이 IBM-PC 게임들의 유통 구조였다(불법복제가 당연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던 중 1987년에 드디어 저작권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한국에도 정품게임의 유통이 이뤄지고 1989년 동서게임채널과 SKC가 국내에서 정품 게임을 유통하는 일을 시작했다. 동서게임채널은 주로 외국의 게임을 유통했고 SKC는 국산게임을 유통하는 구조였다. ‘폭스 레인저’ 역시 SKC에서 유통을 맡았다.

‘지구를 노리는 역할’
(이미지 – https://www.myabandonware.com/game/fox-ranger-1eq)

우여곡절 끝에 SKC를 통해 정식 유통된 ‘폭스 레인저’는 발매 할 때 ‘최초’라는 타이틀이 꽤나 신경 쓰였는지 정품 패키지 박스에도 최초라는 수식어를 많이 사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256색의 화려한 그래픽 지원’ 이라든가 ‘우리나라 최초의 미디지원’ 이라든가 우리나라를 떠나 ‘세계 최초로 차세대 멀티미디어 음원인 롤랜드 사운드 캔바스 완벽지원’ 등의 수식어를 대충 읽어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게임인 것처럼 광고를 많이 했다. 

사실 다른 건 몰라도 미디 사운드 지원은 획기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잘해야 애드립 사운드 카드를 썼고, 돈 많으면 사운드 블래스터를 썼기 때문에 게임들은 PC 스피커의 삑삑거리는 비프음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미디(MT-32, SC55)까지 지원했다. 당시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 MT-32 장비만 해도 거의 6만엔에 달하는 고가 물건이었으니 필자 같은 학생 신분에는 살아 생전에 수중에 넣어 볼 수나 있을까 하는 꿈의 물건이었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서 드디어 미디(SC-55) 사운드를 접해 볼 수 있었는데, 애드립 수준으로만 듣던 스테이지 배경음은 미디로 들었을 때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리고 ‘폭스 레인저’가 배경음악에도 꽤 많이 신경 쓴 게임임을 알게 됐다. 당시 ‘폭스 레인저’의 BGM 담당은 남상규씨였다. 일본에서 프리랜서 음악활동을 하던 그가 귀국해서 소프트액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하면서 게임의 배경음악을 맡았다. 

1992년 4월 20일 드디어 게임이 출시되고 1만5000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2만5000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히트작이 되었다. 여기에는 BGM도 한 몫 한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많을 정도로 게임 음악이 꽤 좋다. 당시에 게임 음악만 따로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고 다니던 친구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를 지키는 역할’
(이미지 – https://www.myabandonware.com/game/fox-ranger-1eq)

2만5000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 게임이 출시되던 시점에 정품게임 유통 채널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서게임채널과 SKC 양측에서 불법복제 근절에 대한 이미지 캠페인을 펼치고 불법복제 단속도 함께 시행하는 등 사회 인식의 개선으로 정품 게임을 구매하는 비중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아마 몇 년 전에 먼저 출시했다면 이 게임도 개발비는 커녕 박스 패키지 포장 비용도 건지지 못하고 사라졌을지 모른다.
 

‘우주로 나가는 역할’
(이미지 – https://www.myabandonware.com/game/fox-ranger-1eq)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불법 복제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너무나 컸던지 ‘폭스 레인저’는 인스톨(게임 설치)을 3번 하면 디스켓 내용이 삭제되는 과격한 복사 방지 시스템을 채택해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설치 이용 횟수 제한이라는 다소 과격해 보이는 방법은 최근의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쓰는 곳들이 있다. 다만, 돈을 주고 구매한 정품 사용자들에게 설치 횟수 제한이라는 복사 방지 옵션은 논란의 여지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 레인저’는 많은 부분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자랑하며 국산 게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의 BGM을 자랑하는 게임이다. 시리즈 1편에서 보여준 저력으로 시리즈 2편 3편까지 쭉 이어나가며 국산 게임의 자존심으로 당시 게임 순위에서도 상위에 항상 랭크되어 있을 정도로 국내에서 인기가 많았던 게임이다. 오래 전에 이 게임을 즐겼던 많은 분들의 기억 한 자리에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게임이며, 필자도 그 사람들 중에 한 명이다. 아직도 이 게임의 엔딩 자막이 기억난다.

“이 땅의 게임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게임을 사랑하는 게임 유저들께 이 게임을 바칩니다.”

■ 필자의 잡소리

‘폭스 레인저’는 당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명작 해외 게임에 기가 눌린 국내 아마추어 게임 개발자들에게 ‘아 역시 우리는 안되나’ 하는 자포자기 심정에서 ‘우리도 하면 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을 심어준 최초의 국산 게임이 아닐까 생각된다.

NF43
(이미지 – https://www.myabandonware.com/game/fox-ranger-1eq)

참고로 외계 무리들에 대항하기 위한 차세대 에너지원인 ‘NF43’은 훗날 게임음악 앨범으로 재탄생하였다. 참고로 게임음악 앨범의 상품성을 시도한 것도 최초였던 것 같다.

1. LAST GUARDIAN (THEME OF FOX RANGER) - 3:47
2.MOON FORCE (THEME OF EARDIS) - 3:49 
3. 내가 너에게 (FOX RANGER 2 : THEME OF LOVE) - 3:58
4. HORIZON - 2:36 
5. SILENT EARDIS - 2:20
6. NF 43 - 4:22
7. DARK RHYTHM - 3:36 
8. 너와 함께 - 4:20
9. 내가 너에게 (INST.) - 3:58 
10. 너와 함께 (INST.) - 4:20

총 10트랙 37분 27초로 훗날의 평가는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일단 아직 못 들어본 분들은 한번쯤 들어보기를 권한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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