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애완동물,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다

[다마고치]
이미지: 유튜브(watch?v=YV_24hXdbOU&feature=youtu.be)

게임별곡 시즌2 [반다이 2편] 

지난 편에 하마터면 회사의 존재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릴 뻔한 반다이의 위급한 상황에 대해서 얘기했었다. 그런 반다이를 다시 번듯하게 살려놓은 것이 조그만 달걀 하나였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다마고치(たまごっち)’라고 불리는 달걀만한 게임기 하나가 다 쓰러져 가는 반다이를 다시 살려낸 일등공신이 된 유명한 이야기는 누구나 알 것이다. ‘다마고치’라는 뜻은 일본어로 ‘다마고(たまご, 달걀)’와 영어 단어 ‘워치(watch, 시계)’의 합성어로, 달걀같이 생긴 시계 장난감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반다이가 개발했던 것은 아니고 1996년 일본의 주부였던 아키 마이타가 개발한 것을 반다이가 아이디어를 사서 시장에 다시 내놓은 휴대용 디지털 애완동물 게임기다. 이제 출시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고 있는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다마고치’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C&C 레드얼럿’과 곧이어 출시된 ‘디아블로’에 빠져 생을 포기하다시피 했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며 기방에 들른 자신의 애마 목을 친 김유신 장군의 심정으로 다시 독하게 마음 잡고 공부하려고 했더니 짠 하고 등장한 ‘스타크래프트’에 연타를 맞았다. 이미 돌아갈 곳(도망갈 곳)이라고는 군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마고치’ 따위에게 관심 가질 여력이 없을 때기도 했지만, 필자의 동생뻘 되는 아이들은 ‘다마고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여담이지만 제대하고 나니 ‘디아블로2’가 나왔다). 

[다마고치 홈페이지]
(이미지: http://tamagotch.channel.or.jp/index.php)

성능도 시스템도 고작 달걀만한 기계였다. 액정도(당시에는) 흑백 화면에 말귀도 못 알아듣는 도트 픽셀 덩어리의 디지털 애완동물이 하는 일이라고는 먹는 일 아니면 먹은 것 소화시키고 확인 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귀찮은 존재였지만 누군가에게 그 귀찮음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했었나 보다. 마치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듯이 ‘다마고치’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그 작은 액정만 들여다보면서 먹이도 주고 놀아 주기도 했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해 무한한 인간의 육아본능을 자아내면서 이 작은 어리광쟁이 기계는 전 세계에 불티나듯이 팔려나갔다. 미국에서는 발매 3일만에 3만개, 일주일도 안 되어 5만개 등 그 뒤로는 이제 집계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이 팔려 나갔다. 아마 중국의 인구 수만큼은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이니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으니 정확한 누적 집계는 생산자인 반다이조차 모를 듯 하다.

이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조그만 기계 덩어리 하나가 한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그 회사에 딸린 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며, 더 나아가 그것을 손에 쥔 사람들까지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놀라운 일을 해낸 이유는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속성에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형제나 자매와 같은 동종의 인간보다는 이종의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 더 큰 만족을 느끼며 반려동물과 훨씬 잘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굳이 저명한 연구 논문의 내용을 빌리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아이들과 반려동물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반려 동물이 사람에게 전하는 다양한 긍정적 효과들은 수 많은 연구들에서 밝혀진 바 있다.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동물을 통해 심리치료를 진행하는 것들을 TV에서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은 심리적인 안정과 사회성 향상, 윤리적 학습 등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좋은 영향을 끼친다.

[반다이남코 : 마이 다마고치 포에버]
이미지: 유튜브(watch?v=FZIoTdBxA-A&feature=youtu.be)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같은 경우에도 드넓은 잔디밭 마당이 딸린 저택에 산다는 것은 최상위 계층 아니고서야 미국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와 같았다.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많은 책임과 의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어른들은 이미 잘 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로 반려동물을 키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새로운 대안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다마고치’였다. 실제로도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아이들은 그저 같이 뒹굴고 뛰노는 즐거움만 느낄 뿐이지만, 어른들은 뒤에 남아 배변패드를 정리하는 즐겁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도 아직도 수많은 집에서 반려동물을 반대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좀 더 정확하게는 속 좁게 배변패드 정리하는 일 하나만으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보다 더 다양하게 복잡한 이유들이 얽혀 있을 것이다.  

반다이남코 : 마이 다마고치 포에버 - 응가 치워라 (아니 이 씨..)
이미지: 유튜브(watch?v=FZIoTdBxA-A&feature=youtu.be)

솔직히 지금도 집안에서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키우겠다고 하면 가족 전원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집도 있겠지만, 그 중에 누군가 극렬하게 반대하는 구성원 때문에 SNS의 남의 반려동물 사진이나마 보며 위로 받거나 부러움의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심리적 위안을 받는 사람들이 필자 주변에도 많이 있다.

모성애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본능 중 하나다. 지구상에 현재 이렇게 인류가 생존하여 번영 할 수 있는 데에는 아마도 ‘모성애’라는 속성이 인간에게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모성애는 어린 시절 다양한 놀이의 형태로 발현됐는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하던 소꿉놀이나 인형 옷 입히기 놀이 등이 그것이다. 그것이 PC의 발전으로 어느덧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탄생 시키면서 디지털 생명체를 나와 교감하면서 오롯이 나만의 의지로 키워 나간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채워주었다.

[아마존 - 다마고치]
(이미지: https://www.amazon.co.jp)

하지만 PC나 콘솔 게임기 등으로 등장했던 다양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게임역사에 족적을 남겼지만 ‘다마고치’ 만큼의 사회적인 현상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다마고치’가 이렇게 사회적으로까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독특한 게임 시스템이라든가 조작감이 뛰어나다든가 하는 등의 게임 본연의 기능보다는 그 휴대성에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다마고치’는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점점 더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아직까지도 멈추지 않고 지금도 아마존과 같은 대형 쇼핑몰 사이트에 가면 어렵지 않게 ‘다마고치’ 기계를 살 수 있다. 정확한 금액은 기계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2000~3000엔 정도면 살 수 있는데 한국 돈으로 치면 2만원 ~ 3만원 정도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원가는 1만원이 안 될 것 같은데 거의 반 이상은 남는 장사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너무 순수함을 짓밟는 것 같으니 원가 생각은 하지 말자). 아마 최초에 ‘다마고치’를 개발했다고 하는 주부 역시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자녀들 때문에 그 일을 시작 했을 것이다. 그렇게 ‘다마고치’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반다이남코 : 마이 다마고치 포에버]
이미지: 유튜브(watch?v=FZIoTdBxA-A&feature=youtu.be)

지난 편에 얘기한 것처럼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교육부에서 1997년 생명 경시풍조를 조장하고 학생들에게 정서적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다마고치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하도 울려대는 ‘다마고치’ 소리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외국에서는 ’ 다마고치’ 때문에 운전자가 전방 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다마고치’ 금지령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어른들의 이유야 대상만 바뀔 뿐이지 늘 한결같다. 한참 스마트폰이 열풍일때도 그랬고 SNS에 중독된 청소년이 어쩌고 할 때도 그랬고 ‘포켓몬 고(GO)’도 그랬다. 

자신들이 깊이 있게 접해보지 못해서 그 즐거움을 모르는 어른들이야 늘상 반대하고 제한하고 규제하는 재미로 사는 양반들이긴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다마고치’의 생명경시 풍조라는 것도 사실 원하는 육성 과정에 실패했을 때 전지를 뺐다 다시 껴서 리셋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조금은 억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게임기 속의 생명과 실제 현실 세계에서의 생명도 구분 못하는 정도로 아이들이 미련하거나 멍청하지는 않을 것인데도 그런 걱정을 해주신다. 어쨌거나 ‘다마고치’를 직접 접해본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와는 분명 그 간극만큼의 좁혀지지 않을 정서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오히려 그런 삭막하고 메마른 어른들의 감성에 ‘다마고치’라는 치유제를 권하고 싶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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