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보다는 완구제조에 강점 보였던 반다이, 다마고치로 대박 내다

게임별곡 시즌2 [반다이] 

반프레스토를 얘기하면서 반다이를 빼놓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반프레스토라는 회사 이름 자체에 이미 반다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반다이의 ‘반’과 ‘프레스토’의 합성어). 지난 편에서 알 수 있듯이 반다이와 반프레스토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다이라는 회사를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완구제조업체 정도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반다이는 본격적인 게임 회사라기보다 완구, 프라모델, 피규어 등의 사업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때는 비디오 게임과 보드 게임까지 다양한 분야의 게임 사업에도 진출했었다. 

반다이의 출발점부터 알아보면 이 회사는 창업 초기에 뜻밖에도 섬유 회사로 출발했다. 섬유회사였던 ‘萬代産業’의 자회사로 시작한 섬유공장이었는데, 우리나라가 한참 전쟁 중이던 1951년에 설립해 전쟁특수로 톡톡히 재미를 본 회사 중 하나다. 

원래 전쟁에는 많은 물자가 소모되기 마련이다. 그 중에는 주로 피복과 의료 재료에 쓰이는 섬유관련 제품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도 휴전으로 끝이 나고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렇다 할 세계적인 특수 상황 같은 일이 없었다. 본사에 재고가 쌓이게 되는 상황이 되자 재고처리를 위해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반다이]의 모체가 된 완구사업이었다. 회사에 남아도는 섬유관련 자재를 활용하여 봉제인형을 제조, 수출하는 업종으로 변경한 반다이는 의외로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두게 되자 섬유공장에서 본격적인 완구사업 업체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런 반다이의 완구사업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이마이 과학’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마이라는 회사는 합성수지 사출성형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회사였다. 즉, 지금의 반다이가 ‘건프라’ 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합성수지 사출 기술을 보유한 이마이의 인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이마이 본사가 있었던 시즈오카에는 지금도 이마이에서 반다이로 이름이 바뀐 반다이의 제품 제조 공장이 있다.

[시즈오카 하비쇼]
(이미지 출저: https://www.hobby-shizuoka.com/)

반다이의 공장이 있는 시즈오카는 매년 시즈오카 하비쇼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일본 최대 규모의 프라모델 행사다. 타미야, 하세가와 등 프라모델 좀 해봤다 하는 분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회사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업체들이 참가한다. 당연히 반다이도 참여하는데, 매년 신제품 소식을 발표하면서 얇은 우리네 지갑을 서럽게 하고 있다.

[시즈오카 하비쇼]
이미지: 유튜브(watch?v=saxkLw9MVLM)

한국에서는 아이들 장난감 취급 당하기 일쑤이지만, 일본에서 완구사업은 거대한 시장이다. 일본 완구협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시장 규모는 8000억엔 이상. 한화로 거의 10조원에 달하는 일본의 완구 시장은 한국의 2017년 기준 영화 시장 규모인 2조3271억원의 4~5배 가까운 거대한 규모다. 

시즈오카 하비쇼는 매년 5월 시즈오카 현의 종합전시장인 트윈메세 시즈오카에서 열리며, 주로 프라모델과 미니카들이 많이 전시된다. 일본은 5월에 시즈오카에서 시즈오카 하비쇼를 개최하고 매년 가을쯤에는 도쿄 오다이바에서 전일본모형하비쇼를 개최한다. 하지만 규모나 물량면에서 시즈오카 하비쇼가 압도적으로 큰 행사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제나 인구수로 1위인 서울을 제치고 부산에서 매년 열리는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와 같은 분위기를 연상하면 될 듯 하다.

[반다이몰 주력상품]

이 행사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부스 중 하나는 당연히 반다이 부스다. 매년 새롭게 출시되는 건담 관련 제품들을 보면서 전 세계의 많은 건프라 마니아들로부터 기대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렇게 시즈오카가 최대 규모의 프라모델 관련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두에 언급한 것과 같이 지금의 반다이의 합성수지 사출성형 기술을 보유한 이마이라는 회사가 시즈오카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마이만 시즈오카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타미야, 하세가와, 아오시마 등 세계 굴지의 프라모델, 완구 업체들이 시즈오카에 밀집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는 프라모델 애호가들의 성지(聖地)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서로 견제와 경쟁의 대상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시즈오카의 프라모델 업체들은 서로 상생하는 방안으로 협동조합을 결성해 협력하고 있었다. 반다이보다 먼저 1946년 창업한 타미야도 시즈야에서 시작한 회사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부터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당시에 타미야, 하세가와 등의 모델들은 국내 업체에 비해 가격이 비싸서 정말 큰 맘 먹고 어렵게 살 수 있었던 고급 취미였다(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실물 크기 건담]

대략 대전에서 부산 정도 거리인 시즈오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쿄 오다이바에 가면 실물 크기의 건담을 볼 수 있다. 이전에는 ‘RX-78-2 Ver.GFT'이 서 있던 자리에 최근에 유니콘 건담으로 대체 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수 많은 콘텐츠 중에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국내에도 이미 수 많은 팬이 있는 ‘건담’이 당당히 1위를 차지하여 실물 크기의 건담을 세워놓았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일본 내에서 건담이라는 콘텐츠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단순히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끝나지 않고 건프라의 세계로까지 영역을 넓혀 그 중심에 반다이라는 회사가 있게 만들었다. 실물 건담 조형물은 반다이남코홀딩스와 건프라로 유명한 반다이 그리고 건담 애니메이션의 선라이즈와 소츠(創通)의 컨소시엄으로 구성 된 주체가 운영관리하고 있다(어차피 다 한 가족).

소츠라는 회사는 다소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건담 바닥에서는 꽤 유명한 업체로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동전사 건담이나 최근 ‘은하기공대 마제스틱 프린스’등 수 많은 애니메이션들의 판권이나 관리를 하는 업체다.

[실물 크기 건담]

이렇게 반다이는 현재 건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아쉽게도 게임 사업만은 비슷한 군류에 있는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입지가 약하다. 대부분의 게임이 외주업체 위탁이거나 자체 개발해 흥행한 게임은 몇 안되고, 그나마도 사람들의 기억에 반다이는 게임업체라기보다는 완구업체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하도 건담을 많이 팔아먹어서 전혀 게임회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실정이다. 반다이와 남코와 반프레스토가 각기 다른 솥밥을 먹던 시절부터 각 회사에 자체적인 게임 사업부가 있었지만, 반다이 남코 그룹으로 통합되면서부터 반다이와 남코, 반프레스트의 게임 부문은 통합됐다. 반다이 외에 남코나 반프레스토는 이미 게임 사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회사였지만 반다이만 게임 쪽에는 다소 약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최근 내놓는 게임들도 반다이남코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개발을 반다이쪽에서 하고 있지는 않다.

반다이의 최근 행보는 TV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 캐릭터 사업 쪽으로 굳어지고 있는 분위기이고 게임 개발은 그룹 차원에서 남코쪽에서 담당하는 듯하다. 

반다이가 게임을 만들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의 얘기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반다이는 MSX와 닌텐도의 패미컴 게임을 제작했었는데 당시에도 전문 게임 개발회사가 아니다 보니 외주나 하청에 의존하거나 퀄리티가 엉망인 경우가 많아서 욕도 많이 먹었다.

이미지: 유튜브(watch?v=zafUd5nYdMc)

일례로 건담 관련 콘텐츠를 우세한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MOBILE SUIT GUNDAM LAST SHOOTING(1984)’ 같은 게임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게임 이름에 건담이 들어간다고 하지만 실제 뚜껑을 까보고 피 같은 눈물을 흘린 구매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 뒤로도 반다이의 이름을 걸고 나온 게임들은 거의 다 망작에 가까운 게임들이 많다. 패미컴에 이어 슈퍼패미컴 시절에도 조악한 게임으로 유명했는데, 남코와 반프레스토와 합병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반다이만의 게임 역사는 거의 흑역사로 기억된다.

하지만, 주 수입원이 게임에 의존한 수익이 아니다 보니 회사는 크게 힘들 일 없이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결국 크게 한 방 맞는데, 안 그래도 게임 개발도 시원치 않았던 판에 더 나아가 게임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바로 ‘Apple Pinpin’이라는 이름의 게임기다. 이름 그대로 아이폰으로 유명한 Apple사와 합작으로, 그 당시 애플 컴퓨터에서 반다이가 1996년 3월 28일에 일본에 처음 출시한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겸용 콘솔 게임기이다.

[Apple Pinpin]
이미지: 유튜브(watch?v=Yz05U67NecI)

물론 이 게임기는 지금쯤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로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당시는 소니의 플스와 세가의 새턴이 박 터지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어느 누구도 끼어들 틈은 없었다고 봐도 좋았다. 일본 내에서는 차세대 게임기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였고, 때 마침 미국에서는 애플을 나갔던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로 복귀해 그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애플 본연의 것들과 관계 없는 사업들은 전부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안팎으로 부침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이 게임기는 공식 누계 판매기록은 현재까지 4만2000대로, 세계에서 가장 판매량이 적은 게임기 1위로 기네스에 기록돼 있다. 어찌됐던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발을 빼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반다이는 1996년 게임기 출시 이후 불과 2년도 채우지 못하고 1998년에 완전 철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준으로 마케팅 비용 1000억원에 추가로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 3000억 원 이상 등 총 40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입어, 회사가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애플에게도 자신들의 역사에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로 남았고, 애플의 지난 날을 거론할 때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은 반다이를 버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침몰할 듯이 점점 가라앉고 있던 반다이를 다시 구원한 것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다마고치’ 게임기였다(그러고 보니 대작 게임을 만들긴 했었네). 현재까지도 많은 애호가들이 있고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다마고치는 다 쓰러져가는 반다이를 다시 한 번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켰다. 당시 세가에 합병 당할 뻔한 반다이를 구원해내고 결국 남코와 합병하여 지금의 반다이 남코 그룹이 되는데 일등공신인 게임기이다.

[다마고치]
(이미지: https://www.dhgate.com)

발매 20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 있는 디지털 장난감으로 국내에서도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이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수량이 보급됐다. 현재 스마트폰이 운전 중 사고라든가 보행 중 사고 등의 주의 경고를 받는 것처럼, 1990년대에는 다마고치가 그랬었다. 지금도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수거해 가서 수업 종료 후에 돌려주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에도 학교에 다마고치 반입 금지령이 내리기도 했을 정도로 사회적인 현상을 일으켰다. 고작 달걀만한 게임기 하나가 발매 6개월 만에 무려 500만 개나 팔렸고 몇 달 지나지 않아 1000만개 출하기록을 달성했다. 

당시에 백화점들은 물량을 조달하지 못해 예약, 추첨제로 다마고치를 팔았는데 저 조그만 게임기 하나를 사기 위한 경쟁률이 무려 200대 1에 이르렀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미야자키 전 수상도 자신의 손자에게 다마고치를 사주기 위해 백화점에 갔다가 3번이나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간신히 구해줬을 정도였다. 물론 그 당시에도 게임은 온갖 못된 것, 나쁜 것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다마고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죽음(Game Over)에 대해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한다,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 등의 이유로 어른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마고치 열풍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찌 보면 반다이가 너무나도 쉽게 위기를 극복해 낸 것처럼 보여서 위기가 위기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인수되고 합병되고 해체되는 수 많은 게임회사의 불운함에 비해 게임기 사업 한번 말아먹은 것 외에는 크게 부침도 없었다. 그나마 위기감 있던 시절에 난데없이 나타난 달걀만한 게임기 하나로 다시 일어서 현재도 수 많은 컨텐츠를 양산해내고 있으니 당분간은 반다이의 세상이 이어질 것 같다.
 
■ 필자의 잡소리

[Captain Tsubasa]
이미지: 유튜브(watch?v=YXfGar4tfo8&t=728s)

타미야, 하세가와, 반다이 등의 프라모델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시즈오카는 프라모델의 성지 외에도 또 다른 것으로도 유명한데 캡틴 츠바사의 주인공 ‘오오조라 츠바사’도 시즈오카 출신이다. 주인공 츠바사는 시즈오카 현 난카츠 시의 난카츠 소학교와 난카츠 중학교 축구부 소속이다.

필자에게도 테크모에서 제작한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버전으로 ‘캡틴 츠바사’ 게임을 즐겼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캡틴 츠바사’ 원작 만화는 이미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총 37권으로 완결되었지만 소년 점프 잡지에서 다른 잡지로 옮기면서 후속 시리즈를 계속 연재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아직도 진정한 완결이 되지 않았다. 현재 일본에서 최장수 연재작품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축구 만화이다.

최근에 새로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하는 중인데 필자도 메이저 세컨드(메이저 세컨드는 이미 종료)와 함께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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