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와의 국토행군 반나절

걷기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 방법이다. 자동차 안의 퇴화된 앉은뱅이가 아니라 태고적 뚜벅이 조상들의 후손으로 돌아가게 한다. 배낭을 메고 걷다보면 세포 하나하나마다 취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의 문화원정대가 올해 3회를 맞았다. 2004년 동해안과 DMZ. 지난해 남해안 횡단에 이은 28일 간의 목포~서울의 서해안 도보행진이다. 지난달 25일 128명의 대원이 목포를 출발해 하루 10시간. 평균 26킬로미터씩 걸어 680킬로미터를 걸었다. 원정대장인 산악인 박영석씨와 만화가 허영만씨 등이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해보자며 제안해 시작됐다.

기자도 서산 구간에서 반나절을 동참했다. 판초에 내리치는 장맛비소리가 천둥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렁찬 젊은 함성이 길을 덮었다. 대원들은 행렬을 위협하며 무섭게 내달리는 자동차들을 피해가며 힘든 동료를 부축하고 격려했다.

행군길에서 만난 김택진 사장은 “기업을 시작해 올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원들과 같이 텐트를 쳤고 하루 꼬박 걸었다. 그는 “걷다 보니 어느새 목표에 와 있더라”며 명의 도용 문제 등으로 힘든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젊은 대학생들은 텐트 안까지 파고드는 모기와 발의 물집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섭씨 40도를 넘어서는 아스팔트의 지열 속을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걸어가는 일은 무척 숨이 차다. 그래서일까. 빨래가 안 말라 고생이지만 폭염 속의 두통과 구토 증세보다 차라리 비오는 날이 더 좋다고 했다.

주최측이 메신저가 되어 거치는 지역 PC방을 이용. 홈페이지에 일지가 연재되고 응원 메시지도 늘어만 갔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사진도 1000장을 넘어섰다. 말이 서로 다른 팔도 젊은이들은 불침번을 서면서 서로 친해졌다. 그들은 “비행기나 차가 아닌 힘들게 걷고 나니 우리 나라가 멋있구나”하고 느꼈다. 쓰레기 봉지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던 젊은이는 외국으로 배낭여행 가기 전에 우리 국토를 꼭 한번 걷고 싶었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아주 긴 도보 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스스로 직접 느끼고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길 위에서 그리고 타인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비록 4명이 낙오했지만 내일 서울에 도착해 서울시청 앞에서 완주식을 갖게 될 때쯤엔 왕관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푸르른 청춘의 월계관이 그들의 머리에 하나씩 걸려 있으리라.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2006.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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