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 리니지 사태 그 이후

세상일을 따져 들어가다 보면 대개 어떤 사건의 원인이 하나인 경우는 드물다. 이것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싶은 일도 자세히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뒤얽혀 있곤 한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 명의 도용 사태도 비슷한 생각을 갖게 한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일은 중국 작업장에서 대규모 명의도용이 저질러졌고, 도용된 명의는 고스란히 <리니지>의 아이템 획득과 거래에 악용됐다는 것. 여기에 엔씨소프트 측이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방조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피해자만도 최대 122만 명에 달하고 그 중 8500명이 지난 15일 1인당 100만 원씩 80억 원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결과에 따라 수천 억 원대의 대규모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발표만 놓고 보면 엔씨소프트 측이 크게 잘못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엔씨는 지난해 10월 이후 매달 수십 만 명의 가입자 급증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늑장 대처를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이 그렇게 단순 명료한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사태를 표면적으로 보면 명의도용이지만, 그 배경에는 뿌리 깊은 한.중 게임 아이템 거래사슬이 감춰져 있다. <뉴욕 타임스> 등 세계적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라면 중국에는 옌볜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방에 수많은 작업방이 존재한다. 허름한 폐건물이나 창고 등에 수십 대의 PC를 들여놓고 인력을 고용, 아이템 취득에 열을 올리고 그렇게 얻은 아이템을 팔아 많은 이득을 취하는데 무려 95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명의도용.해킹 등 불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발 해킹은 그들이 직접적으로 <리니지> 서버에 침투해 신상 명세를 탈취한 것이 아니라 국내 다른 여러 사이트에 악성코드를 심어놓아 그 사이트를 접속하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신상명세가 중국 쪽 작업방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경로를 밟는다. 또한 국내 일부 업자들도 신상명세를 중국에 팔아 넘긴 흔적도 있다는 전언이다.

진상은 차후 경찰에서 밝혀내고, 재판과정을 통해 파헤쳐지겠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이같은 온라인 게임 아이템 거래를 둘러싼 한.중간 검은 커넥션이 이미 깊숙히 뿌리를 깊게 내렸다는 점이다. 올 들어 더욱 극성스러워진 중국발 해킹도 실제 엄청난 돈이 오가는 아이템 거래라는 검은 유혹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사태를 게임사만의 잘못으로 돌리고 덮을 수 없다는 것. 다른 게임회사들이나 인터넷기업들에 대한 잇단 명의도용 실태 보도가 아니더라도 수면 아래의 수많은 피해가 늘고 있고, 그걸 쉬쉬하고 있다는 것이 해킹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현재 중국발이든 국내발이든 온라인 게임거래와 해킹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한 어떤 게임회사도 똑같은 문제로 인해 집단소송과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게임사나 정부가 한시라도 빨리 보다 근본적인 보안 대책을 위해 손을 맞잡는 것이다. 또한 게임 아이템 거래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간스포츠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200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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