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은 신기하지만 게임은 재미없다? 지스타2015 전후 극과 극 반응 이유 보니

처음에는 VR게임에 대한 찬양론을 펼칠 생각이었다. 지스타 2015에서 VR게임 시연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더욱 확신했다. VR게임이 게임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겠구나. 침체된 게임산업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겠구나. 다른 수많은 기자들이 지스타 기사를 통해 썼듯, 'VR게임 돌풍'이라던가, 'VR게임 내년 핫트렌드 부상' 등의 제목으로 칼럼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게 되면서 계획은 조금씩 틀어졌다. 게임 깨나 해봤다고 자부하는 A씨. VR게임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니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드렁하다. 기대 이하였단다.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구경거리를 만나고 왔다는 눈빛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VR게임인데? 지금 IT업계에서 가장 핫하다는 VR인데? 그러자 짜증까지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아 VR이면 뭐 어쩌라고. 게임이 재미없었다니까.”

혹시나 현재 VR게임의 활성화를 막고 있는 걸림돌로 지적되어온 인지부조화(멀미, 어지러움)나 해상도 문제, VR기기의 공간적인 제약 때문은 아닌지 물었다. 그건 또 아니라고 했다. 이런 ‘사소한’ 문제는 언젠가는 해결되는데, 핵심적인 문제는 그냥 게임이 재미없다는 것이다.

다른 ‘게임전문가’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이미 해외게임쇼에서 VR게임을 경험했던 그는 이번 지스타에서 아예 VR게임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그랬다는 반응이다. 현재 선보인 VR게임 중 정식 출시되었을 때 구매하고 싶은 게임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대중들의 VR게임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냉랭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단순히 일부 전문가들의 ‘게임부심’으로 치부하기에는 후자와 같은 반응이 너무 많았다. 이 극심한 온도차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VR게임에서 ‘신기함’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이들과 이야기를 계속 나누면서 의문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VR게임에 대한 반응은 사용자 경험의 가치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갔다. ‘VR의 신기함’에 가치를 둔 사람들은 좋아했고, ‘게임 본연의 재미’에 가치를 둔 사람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신기함’도 굉장히 의미있는 사용자 경험이다. 그러나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즐기는 영화나 테마파크 놀이기구에나 어울리는 경험이다. 적어도 게임에서는 ‘신기함’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게임은 수십 번 되풀이해도 재미있어야 하는 대표적인 반복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스타에서 수많은 VR게임을 경험했을 때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후자의 편에 서게 됐다. 첫번째와 두번째 게임을 시연했을 때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눈 앞에 잡힐듯한 오브젝트와 정교하게 꾸며진 배경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세번째 게임에서는 더 이상 자극을 받지 못했다. VR이 주는 경험이 앞선 게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번째 게임부터는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VR기기를 착용한지 2~3분이 지나니 더 볼 것이 없었다. 결국 스태프에게 요청하여 10분을 다 못채우고 나왔다. 그 이후의 게임들은 더 심했다. 아마 게임전문가 A처럼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구경거리를 만난 눈’을 하고 있었으리라.

(반다이남코의 비주얼노벨 '서머레슨')

‘그 때 그 VR게임을 다시 해볼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봤다.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게임 중에 ‘예’라는 대답이 나온 게임은 단 2개, 캡콤의 호러어드벤처게임 ‘키친(Kitchen)’과 반다이남코의 비주얼노벨(흔히 미연시라고 하는) ‘서머레슨(Summer Lesson)’ 뿐이다. 나머지 게임은 굳이 또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이어트로 유명한 모 연예인이 남긴 명언 중에 “먹어봤자 내가 아는 그 맛이라 굳이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절로 이해가 됐다.

그나마 ‘키친’과 ‘서머레슨’도 리스크를 수반한다. 둘다 어드벤처 장르에 속하는데, 어드벤처는 ‘빵’ 터지는 킬러타이틀이 되기 힘든 대표적인 비주류 장르다. 소수의 매니아들이 열광할 뿐이다.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RPG나 FPS게임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뮤지컬 '라이온킹'은 VR을 도입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잘 만든 VR게임만 살아남는다

VR은 분명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VR게임은 잘 모르겠다. 3D 입체영상이 영상산업에서는 큰 획을 그었지만 게임산업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처럼, VR 역시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될 것이다.

닌텐도 3DS를 갖고 있는 지인은 3D 기능을 오프(off)로 해놓고 게임을 즐긴다. 켜봤자 게임하는데 신경만 쓰이기 때문이란다. 3D 기능만 내세우고 게임성에서 기존 게임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게임들은 다 이 꼴이 됐다. 혹시나 VR게임도 이렇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무안경으로 3D 입체영상을 경험할 수 있고, 휴대성까지 뛰어났던 닌텐도 3DS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VR기기가 필요한 VR게임은 더욱 불리한 조건이다. VR게임 개발자들은 좀 더 힘을 내시길. 2번, 3번 해도 여전히 재미있는 VR게임이 많이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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