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36. 박선용 ‘치킨 인디들에게’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36. 박선용 ‘치킨 인디들에게’

개발자들 사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 중 하나가 바로 ‘치킨 수렴의 법칙’이다. 게임 개발자로서 점점 연차가 쌓이고, 팀장이나 PD급 승진 등의 좁은문을 통과하지 못한 개발자들이 결국 치킨집을 차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회사 앞 치킨집에서 코딩하다 막힌 부분 얘기를 하고 있는데 치킨집 사장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미담(?)이 심심찮게 들리는 걸 보면 마냥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이건 사실 게임 개발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년간 회사 생활을 하다 퇴직하고, ‘치킨’으로 상징되는 자영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직장인의 닭튀김 수렴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어느 직장을 다니든 결국에는 자영업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치킨 가게를 하게 된다는 웃프는(웃기다와 슬프다 합성어) 말이다.

최근 몇년 사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앱 마켓은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Unity3D 엔진을 필두로 한 ‘게임 개발의 민주화’ 흐름은 보다 저렴하게, 좋은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과거보다 작은 규모의 개발팀으로, 훨씬 적은 맨먼스를 들이고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처
몇명 안되는 인원으로 게임을 만들어 대박을 친 스타 개발자들이 등장했다. 미디어와 마켓들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웹진들은 “하루에 얼마 버는 이 게임 개발진 인원수를 보니, 헉!”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모바일 마켓 플랫폼들도 인디를 지원하기 위한 카테고리 등을 만든다. 바야흐로 인디 붐이다. 이와 함께, ‘치킨 인디’들이 생겨났다.

‘치킨 인디’들에 대한 필자의 정의는 이렇다. ‘생존을 주 목적으로 하는 모바일 인디 게임 개발자’. 이들이 인디가 된 이유는 다양하다. 나의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쫓아 인디 개발자가 된 경우도 있고,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면서 (정확히는 실업 급여가 나오는 기간 동안) 혼자서도 게임을 만들어 먹고 살 수 있는지 도전해보기 위해 인디가 된 경우도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목표는 같다. 인디로서 생존할 것, 가능하다면 대중적으로 성공할 것. 시장 특성상 개발 호흡이 긴 콘솔이나 PC보다는 짧은 호흡으로 여러 번 도전할 수 있는 모바일 게임 시장을 타겟으로 한다.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보다는 플레이어들에게 이미 익숙한 장르나 메카닉을 바탕으로, 조금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어나더 카피캣을 내놓는다. 금전적으로 성공을 맛본 개발자들은 계속해서 자가복제를 시도한다. 마켓에는 ‘플래피’나 ‘2048’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의 게임들이 넘쳐난다.

개발자들의 모임에서는 어느새 내 게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 게임을 만들고 있는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메인 화면에 뜰 수 있는지, 어떻게 광고를 붙여야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지, 정부 지원사업을 어떻게 따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핫한 주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타임 라인에는 출시 광고나 추천 종용 글이 가득하다. 플레이어는 비슷한 게임들에 지치고, 개발자들은 수많은 경쟁자들에게 지친다. 요즘의 모바일 마켓에 들어가보면 마치 100미터마다 거리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치킨집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모두가 사장님이지만, 모두가 비슷한 장사를 하고 있다. 한쪽에서 치즈가루를 뿌린 치킨이 인기를 끌면 우리 치킨에도 뿌린다. 경쟁자는 계속 많아지고, 모두 함께 가난해진다.

필자는 치킨 인디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혹은 그들이 인디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게임을 만들든 인디로서 개발자 각각의 선택은 그 자체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그게 바로 인디다. 다만 인디 개발자라면, 자기 자신에게 보다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식당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안전한 아이템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시작에 있어 금전적으로 큰 위험요소가 없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다. 작가로서의 인디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가운데 고귀한 창작열을 불태우는 창작자’의 모습 따위는 언론이 만든 멋진 그림일 뿐이다.

내가 왜 게임을 만드는지, 나는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자문자답에서 ‘내 스타일’이 나온다. 내 스타일이 있다면, 이미 당신은 작가다. 두려워하지 말자. 세상에는 치킨말고도 수많은 닭요리가 있다. 기왕 닭요리집을 한번 열어보기로 했다면, 적어도 한번 정도는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한경닷컴 게임톡 박선용 객원기자 sun@turtle-cream.com

■ 박선용은?
인디 게임 스튜디오 터틀 크림 대장으로 5년차 인디 개발자다. 팀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을 하면서 인디 게임 ‘슈거 큐브: 비터스위트 팩토리(Sugar Cube: Bittersweet Factory)’와 ‘6180 더 문(6180 the moon)’의 개발을 총괄했다.

“작지만 유니크하라(Small but Unique”라는 모토 하에 ‘지금껏 보지 못한 게임 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에 목매느라 정작 ‘재미’는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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