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15. 김성완 '찡한 IGF 대상 이름 유래’

게임톡 연재 ‘인디 정신이 미래다’ 15. 김성완 ‘IGF 대상 이름 유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디 게임 공모전은 GDC 중에 시상식이 이루어지는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일 것이다. 이 공모전의 최고상인 대상은 ‘시머스 맥널리(Seumas McNally) Grand Prize’라고 불린다. 대상에 사람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이다. 어떤 상에 이름이 붙는 경우는 노벨상처럼 그 상을 제정한 사람의 이름이 붙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시머스 맥널리. http://www.longbowgames.com/photos/fighting.jpg

IGF 대상에 시머스 맥널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바로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IGF 대상에 그의 이름이 붙은 데에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다.

Tread Marks http://www.longbowgames.com/contact/tribute/tank0029
시머스 맥널리가 혼자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던 인디 게임 ‘트레드 막스(Tread Marks)’는 2000년 IGF에서 최고 게임 디자인(Best Game Design), 최고 기술(Technical Excellence)의 2개 부문과 함께 대상을 수상하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트레드 막스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탱크 배틀 게임이다.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지형 메시의 정밀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거의 최초의 게임이기도 했다. 하지만 IGF 대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대상에 붙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시머스 맥널리는 2000년 3월 10일 IGF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뒤 불과 10여일 만인 3월 21일에 21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호치킨 림프종이라는 암을 앓고 있었는데 18세에 발병하여 3년째 투병 중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밍에 재능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게임 개발자가 되기를 원했다. 게임 개발자로서 큰 포부를 가졌다. 시머스는 암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만들었다. 온라인으로 직접 판매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한다. 바로 ‘롱보우 디지털 아츠(Longbow Digital Arts)’라는 이름의 회사다. 이 회사는 캐나다 토론토주의 온타리오에 있는 직원이 모두 4명인 아주 작은 인디 게임 개발사였다.

그런데 이 작은 인디 게임 개발사의 직원은 시머스를 대표로 해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이 전부인 그야말로 가족 회사였다. 롱보우 디지털 아츠가 가족 회사가 된 것은 암 투병중인 시머스의 소망을 위해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들이 직접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머스가 유일한 프로그래머로서 게임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다. 아버지가 레벨 디자인을 어머니와 동생이 아트와 모델링을 담당했다. 이렇게 해서 가족애를 바탕으로 가족이 함께 게임을 만드는 가내수공업 인디 게임 개발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롱보우 디지털 아츠는 시머스 맥널리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도 현재까지 여전히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시머스 맥널리의 뛰어난 재능과 암에도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은 가족들의 애정어린 도움과 함께 IGF 대상이라는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을 맘껏 누려 보지도 못하고 GDC 참가로 무리한 탓인지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고 만다. 의료진의 노력과 가족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21살의 꽃다운 나이로 가족들의 품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필자도 GDC 2000에 참가했기 때문에 직접 시머스 맥널리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이런 사연을 가진 개발자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강연을 하던 시머스의 모습은 병색이 완연한 수척한 얼굴에 오랜 항암 치료 때문에 대머리였고, 약해진 폐로 인해 목소리마저 작고 힘이 없었다. 필자로서는 그 강연이 그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IGF 주최측은 다음달인 4월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념하는 의미로 IGF 대상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하였다.

세계적인 인디 게임 공모전의 최고상 이름에 이런 슬프고 아름다운 가족의 사연이 있다는 것은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맥널리 가족 같은 애틋한 사연이 아니라 해도 가족이 함께 게임을 만드는 일은 뭔가 낭만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부부가 함께 인디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이른바 부부 개발사들이다. 필자의 경우도 인디 게임으로 첫 출시한 게임은 아내와 동생이 함께 개발에 참여해서 만든 이른바 가내수공업 게임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맥널리 가족처럼 온 가족이 함께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가족 구성원 중에 누가 암 같은 중병에 걸려서 투병 중이라면 그 가족에게는 커다란 시련이다. 그런데 맥널리 가족은 그런 시련을 가족이 함께 힘을 합쳐 게임을 만드는 것으로 잘 견디어 내지 않았나 싶다.

게임이 마약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 인디 게임 개발자로 그것도 가족 개발사로 살아가는 입장에서 게임이 가족을 사랑으로 묶어주고 이 사회를 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가족 인디 게임 개발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성공하기를 바란다.

시머스 맥널리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여기서...

http://www.longbowgames.com/contact/tribute/

한경닷컴 김성완 객원기자 idgmatrix@gmail.com

■ 김성완 교수는?
부산게임아카데미(동의대학교 게임공학과) 교수로 한국 게임개발자 1세대다. 미리내소프트웨어에서 PC 패키지 게임을 개발했다. 대표작으로는 ‘풀메탈자켓’이 있다. PC 패키지 게임이 저물고 한국 게임 시장이 온라인 게임을 중심으로 고도성장하던 초기에는 오즈인터미디어에서 3D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카페나인의 차기 버전 개발에 잠시 참여했다.

그 후 게임 개발 교육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게임 개발자 지망생들을 가르치면서 소프트웨어 3D 렌더러 g-matrix3D를 개발하여 오픈 소스로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게임아카데미에서 게임 개발 인력 양성에 힘쓰는 한편 인디게임개발자로 나서며 페이스북에서 인디게임 개발자 그룹 '인디라!'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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