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가방 잊게해줄 '귀환석'-'신속의 물약'-소소한 '업적 제도' 상상

얼마 전부터 기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공사를 시작했다. 무려 한 달 반이다. 16층에 사는 기자는 아침저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강제로 운동을 하고 있다. 종종 1층까지 내려왔는데 무언가를 두고 온 사실을 깨닫거나,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집에 두고 온 가디건이 간절하게 생각날 때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운동하는 셈치고 열심히 오르내리는 중이다.

한 달 반 뒤 힙업된 모습을 상상하며 불평을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지만 딱 한 가지 피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어깨가 빠질 듯이 무거운 가방’이다. 중력 탓인지 왠지 높이 올라갈수록 어깨가 뻐근해진다. 무거운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아..‘귀환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온라인 게임에서 ‘귀환석’은 거의 필수다. 클릭 한 번이면 다른 지역에 있든, 다른 대륙에 있든 상관없이 지정해놓은 장소로 캐릭터를 10초 만에 옮길 수 있다. 특히 ‘산본-일산-강남-원주-강남-산본’으로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는 일도 있는 기자에게 ‘귀환석’은 “어서 내 돈을 가져가!”라고 소리칠 만큼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다.

‘귀환석’처럼 게임 속에서만 있고, 밖에서 만날 수 없지만 현실에서 꼭 있었으면 좋겠는 ‘상상 아이템’이 있다.

시험 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아는데 못쓸 때’다. 기자가 전공하는 국문과의 경우 주관식 20문제는 기본이었다. 워낙 써야 할 내용이 많아 한 시간 동안 손목이 끊어질 듯 B4용지를 앞뒤로 4장을 채워야 했다. 기자는 유별난 악필이라 한 글자씩 공들여 쓰지 않으면 오히려 교수님이 시험지를 해석해야 했다. 따라서 똑같은 한 시간이라도 아는 걸 모두 써 A+ 답안지를 내기 위해서는 체감 상 주어진 시간은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게임 속의 ‘신속 물약’이나 ‘집중 물약’이 진짜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짧은 시간동안 글씨 쓰는 속도를 엄청나게 올려주거나, 귓가에서 모기가 앵앵거려도 흔들리지 않을 집중력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안지를 시원하게 써내려갈 수 있다면, 가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중요한 시험에서는 꼭 챙겨 마셨을 것이다.

‘업적 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약 3년 동안 거의 매일 아침마다 커피우유를 사먹은 기자는 문득 “내가 이 우유를 몇 개나 사먹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대략적인 계산으로 720개 정도라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돈으로 환산하면 720*1200 정도로 무려 86만4000원이다. 왠지 100만원을 꽉 채우면 ‘우수 소비자상’이라도 줘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게임 속 ‘업적 제도’는 ‘상대편 플레이어 100명 처치’ 등 의미 있는(?) 일도 카운트해주지만, ‘다른 플레이어와 포옹한 횟수’, ‘낚시로 1000마리 물고기 낚기’ 등 평범하고 소소한 일들도 의미 있는 일로 만들어준다. 남자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잡았는데 갑자기 ‘빠바밤~’하면서 [업적 달성: 남자친구와 100번 손잡기] 등의 업적이 뜬다면 평범한 날도 의미있는 기념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사귄지 첫날 업적이 떠버린다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비 게이머가 이런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상상을 들었다면 “뭐야, 현실과 게임을 구별 못 하는 거 아냐?”며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는 이런저런 쓸데없지만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무거운 가방을 잊고 16층까지 훌쩍 올라갈 수 있었다.

게임 속 마법장치 같은 ‘귀환석’이 현실에서 꿈처럼 이뤄질 수 있는 날은 올까. 아주 먼 미래에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지루하고 똑같은 하루하루의 일상에 지쳤다면 ‘게임의 현실화’를 상상하며 짧은 일상 탈출을 해 보는 건 어떨까. 기자처럼 혹시 오늘 저녁에는 '순간이동의 보주'를 터치하면 순식간에 내 방 침대 위에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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