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기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공사를 시작했다. 무려 한 달 반이다. 16층에 사는 기자는 아침저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강제로 운동을 하고 있다. 종종 1층까지 내려왔는데 무언가를 두고 온 사실을 깨닫거나,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집에 두고 온 가디건이 간절하게 생각날 때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운동하는 셈치고 열심히 오르내리는 중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귀환석’은 거의 필수다. 클릭 한 번이면 다른 지역에 있든, 다른 대륙에 있든 상관없이 지정해놓은 장소로 캐릭터를 10초 만에 옮길 수 있다. 특히 ‘산본-일산-강남-원주-강남-산본’으로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는 일도 있는 기자에게 ‘귀환석’은 “어서 내 돈을 가져가!”라고 소리칠 만큼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다.

시험 칠 때 가장 답답한 것은 ‘아는데 못쓸 때’다. 기자가 전공하는 국문과의 경우 주관식 20문제는 기본이었다. 워낙 써야 할 내용이 많아 한 시간 동안 손목이 끊어질 듯 B4용지를 앞뒤로 4장을 채워야 했다. 기자는 유별난 악필이라 한 글자씩 공들여 쓰지 않으면 오히려 교수님이 시험지를 해석해야 했다. 따라서 똑같은 한 시간이라도 아는 걸 모두 써 A+ 답안지를 내기 위해서는 체감 상 주어진 시간은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업적 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약 3년 동안 거의 매일 아침마다 커피우유를 사먹은 기자는 문득 “내가 이 우유를 몇 개나 사먹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대략적인 계산으로 720개 정도라는 것만 알 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돈으로 환산하면 720*1200 정도로 무려 86만4000원이다. 왠지 100만원을 꽉 채우면 ‘우수 소비자상’이라도 줘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게임 속 ‘업적 제도’는 ‘상대편 플레이어 100명 처치’ 등 의미 있는(?) 일도 카운트해주지만, ‘다른 플레이어와 포옹한 횟수’, ‘낚시로 1000마리 물고기 낚기’ 등 평범하고 소소한 일들도 의미 있는 일로 만들어준다. 남자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잡았는데 갑자기 ‘빠바밤~’하면서 [업적 달성: 남자친구와 100번 손잡기] 등의 업적이 뜬다면 평범한 날도 의미있는 기념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사귄지 첫날 업적이 떠버린다면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게임 속 마법장치 같은 ‘귀환석’이 현실에서 꿈처럼 이뤄질 수 있는 날은 올까. 아주 먼 미래에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지루하고 똑같은 하루하루의 일상에 지쳤다면 ‘게임의 현실화’를 상상하며 짧은 일상 탈출을 해 보는 건 어떨까. 기자처럼 혹시 오늘 저녁에는 '순간이동의 보주'를 터치하면 순식간에 내 방 침대 위에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