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고등학교 친구들의 카톡방에 “너네 내가 쓴 기사 가장 최근에 읽은 게 언제야?”라고 물은 적 있다. 친구들은 “지난주?”라고 대답했다. 게임을 잘 모르는 친구들이기에 그나마도 기특하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네가 카톡방에 링크해준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다. 이 여자들은 괘씸하게도 직접 링크를 해준 기사만 간신히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친구들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기자 역시 밥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예쁘게 싸 코앞에 들이밀어야 겨우 입을 벌려 받아먹을 정도로 정보를 편안하게 받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클릭 몇 번으로 이집트 가요 인기차트까지 받아볼 수 있는 세상에서 ‘편안함’은 너무나도 당연해졌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더 이상 어려운 조작 방법을 습득하며 플레이 방법을 익히기보다는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터치 몇 번으로 몬스터도 길들이고, 파리로 여행도 가는 게임이 인기다.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몬스터 길들이기’와 ‘모두의 마블’이 대표적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기자의 경우 게임을 하면서 ‘재밌다’고 느낀 경우는 MMORPG를 플레이하며 힐 종류만 9개가 넘고, 쿨타임(스킬을 재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의 공백 시간)까지 계산하면서 스킬을 사용하며 움직여야 하는 PVP(플레이어간 전투)를 할 때였다. 양손이 모자라게 플레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침대에 젖은 수건마냥 축 늘어져서 오른손으로 화면을 터치하다가 팔이 저리면 간신히 돌아누워 왼손에 바꿔들며 게으르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우선 간단하지만 슬픈 이유로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더 이상 손이 뇌를 따라가지 못함이다. 손을 빠르게 써야 하는 게임에서는 손과 뇌가 말캉말캉한 어린 애들을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이제는 어렵고 힘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보다 쉽고 간단한 게임에서 느끼는 희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삼계탕보다 치킨인 셈이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며 게임은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 하는 것’이 되었다. 짧은 쉬는 시간동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보다는 친구들과 수학 선생님이 예쁘다는 등 시시한 얘기를 하며 긴장을 풀고 싶기 마련이다. 게임은 이런 ‘휴식’에 가깝다.

하드코어한 온라인 게임의 끝판왕까지 즐겨본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게임은 여러 이유로 꽤나 자극적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고, 앉은 자리에서 터치 몇 번으로 다양한 게임을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게으름 속에서 피어나는 재미는 잘못된 걸까? 기자의 대답은 ‘글쎄요’이다. 만득이 시리즈에 웃지 않고, 개그콘서트에서 매주 반복되는 “너 되게 낯설다”라는 멘트에 습관적으로 빵빵 터지는 이유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재미는 하나의 유행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작은 문제가 있다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재밌는 게임 만들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 디자이너에게 “뭔가 다이내믹하면서도 화려한... 마치 축제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디자인해주세요. 아! 색깔은 흰색, 검은색, 회색 이 세 가지로만요!”라고 주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편안함’과 ‘재미’ ,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 두 토끼를 잡기만 한다면 나를 포함한 "유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시간문제다.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