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쉬워지는 공감하기, 공감의 속도는 LTE, 친구 목록은 공감 목록

지난주 레알겜톡 ‘게이머 남친이 좋은 이유’가 예상치 못하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기사로 가장 신기하고 놀란 사람은 기자 본인이었다. 어떤 점 때문에 반응이 좋았을까 고민을 해본 결과,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하나는 여자들에게 말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고, 하나는 게이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공감’은 매우 중요하다. 시인 정현종은 ‘섬’라는  두 줄짜리 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썼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기자는 이를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연결된 육지가 아니라 뚝뚝 떨어져있는 섬과 같다.

그래서인지 공감을 하는 방법은 점점 간단해지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꾹꾹 눌러주는 1초면 충분하다. 전에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서정적이면서도 어렵게 사랑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하상욱 시인의 ‘이쁜 여자가 좋아. 그래서 니가 좋아’라는 ’보고있나 여친’이란 제목의 시처럼 심플하게 표현할 수 있다. 공감의 속도가 LTE급으로 빨라진 것이다.

▲ 하상욱 시인 페이스북 캡처
이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야흐로 9년 전, 사촌 오빠가 수학 과외를 해준 적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약속 시간에 맞춰오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화가 나서 도대체 뭘 하느라 안 오냐고 물었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나 지금 레이드(대규모 사냥) 뛰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더욱더 분노한 나는 “그까짓 게임 중간에 끄고 오면 되잖아!!”라며 소리친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정확히 4년 후,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 기자는 당시 사촌오빠가 레이드를 중간에 포기하고 과외를 하러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번뇌를 했었는지 절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당시 저장하고 끄는 게임이 전부인 줄 알았던 기자는 MMORPG의 특수성을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와 겨우 5살 차이 나는 사촌 오빠와 게임으로 공감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물며 50년 차이가 나는 세대와 공감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이버 웹툰 작가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 63회 중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꿈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기자와 같이 사는 85세 할아버지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인선아, 지금 인터넷 되니? 나 카톡이 안된다”라며 방문을 여는 시대다. 명절날 가족들이 모이면 “에미야, 물 좀 다오”가 아니라 “에미야, 하트 좀 다오”라는 말이 오가며 게임을 통한 공감이 쉬워졌다.

스마트폰 게임의 친구 목록은 단순히 ‘친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 목록에만 있다면 나의 친구의 동생의 선생님의 강아지의 수의사의 딸이라 하더라도 같은 게임 하나로 공감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게임으로 하는 공감은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지금의 정서와 딱 맞는다. 하트 보내기 한번이면 공감 완료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가기 위해 힘들게 바다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모터보트 한번 타고 쌩 다녀오면 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레알겜톡은 공감할 수 있는 짧은 시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연히
만난 너


보고싶다

-황인선 단편시 ‘레알겜톡’ 중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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