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지 쿵야 아일랜드 공식 트레일러
"혹시 '야채 부락리'를 알고 계신가요?"
사실 저는 야채 부락리를 직접 플레이하진 않았습니다만 늦은 밤 부모님 몰래 TV 앞에 앉아 시청하던 쿵야쿵야 애니메이션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야채 쿵야들의 만담, 지금 생각하면 제법 신랄한 조크들이 일품이었죠. '쿵야는 야채를 좋아해~' 엔딩곡은 지금도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2007년 11월 출시된 쿵야 어드벤처 이후 쿵야 시리즈는 한동안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2019년 캐치마인드가 무려 8년 만에 모바일 플랫폼으로 출시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기존 캐치마인드를 모바일 환경으로 이식한 것에 가까웠으니까요.
모두들 여느 게임들처럼 쿵야 시리즈 또한 역사 속 뒤안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2022년 6월, 넷마블의 '머지 쿵야 아일랜드'가 깜짝 출시되어 돌풍을 일으키기 전까지는요.
■ 오염된 섬을 정화하는 친환경 게임
야채 부락리도 쓰레기를 주워 칭찬 지수로 교환하는 환경 친화적 게임이었지만 머지 쿵야 아일랜드는 한 술 더 뜹니다. 플레이어는 더럽땅으로 뒤덮인 오염된 섬을 정령왕이 되어 직접 정화해야 하죠.
섬을 정화하려면 머지를 통해 치유의 정수를 모아야 합니다. '합치다'라는 뜻을 가진 '머지'는 국내 게이머에겐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지만 해외에선 인기 있는 게임 장르 중 하나로, 같은 사물 3개를 합쳐 새로운 사물로 성장시켜 콘텐츠를 해금하는 게임 방식입니다.
치유의 정수를 얻는 방법은 연속 머지로 콤보를 발생시키거나 쿵야를 통해 치유의 꽃을 채집하는 방법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상위 단계의 치유의 꽃에선 상위 단계의 정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머지가 이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원뿐만 아니라 쿵야들 또한 머지를 통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3머지가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이지만 5머지를 통해 보너스 자원을 추가로 얻을 수 있어요. 극한의 효율을 노리는 플레이어라면 5머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습니다.
■ 게임만 켜면 시간이 순삭?
작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쿠키런: 킹덤'을 기억하시나요?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 디자인과 그래픽도 물론이지만, 최대 효율로 자원을 생산하고 납품하는 과정에서의 중독성도 '쿠키런: 킹덤'의 무시 못 할 인기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짧은 텀의 생산이 가장 효율이 좋았기 때문에, 게임을 켜두면 끊임없이 할 일이 생겨나곤 했죠.
머지 쿵야 아일랜드 또한 그렇습니다. 머지 게임과 자원 생산적 요소를 결합시켜 한층 더 재미있네요. 다른 머지 게임에서 주어지는 보드와 인벤토리 대신 한정된 섬 타일이 주어지기 때문에, 생산된 자원들을 5머지하기 위해서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치유의 홀씨나 포도 같은 몇몇 하위 자원들은 5머지보다 판매하는 것이 골드 측면에서 훨씬 이득이거든요.
쿵야를 통해 자원을 채집하고, 스태미나를 다 쓴 쿵야들이 잠든 사이 플레이어는 모험을 떠나 추가적인 재화나 룽을 파밍해야 합니다. 게임의 핵심적 재화인 골드, 목재를 비롯한 각종 자원들은 쿵야들이 잠든 사이에도 생산을 멈추지 않고, 겨우 섬 정리가 좀 끝났다 싶으면 하늘에서 치유의 홀씨가 흩날립니다. 홀씨를 다 팔고 나면 약속의 등대와 아침 하늘 종탑에 불이 들어와 있죠.
상기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기 전 잠깐 하려고 켰다가 어느새 아침 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괜히 "시간 강도다", "이거 하느라 밤새우고 출근했다"라는 후기들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 여심 저격의 비결, 귀여움 UP 스트레스 DOWN
고난도의 컨트롤 요소 또한 게임의 재미 중 하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것도 게임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학업이나 회사 생활이 충분히 힘든데 게임 속에서까지 굳이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유저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괜히 힐링 게임이 유행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 점에서 머지 쿵야 아일랜드는 플레이어의 피로감을 덜어주기 위해 굉장히 신경 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 편의 기능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석이었는데요. 곳곳에 흩어진 같은 종류의 자원을 근처로 끌어당기는 자석 기능 덕분에 번거롭게 화면을 확대하거나 이동하지 않고도 섬 곳곳에 흩어진 자원을 손쉽게 머지할 수 있었어요.
콤보 시스템에서도 개발진의 따스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속 머지에 성공하면 콤보 보너스로 치유의 정수를 추가 획득할 수 있지만, 추가 획득량이 많지는 않아서 굳이 콤보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어요. 옵션에서 설정할 수 있는 콤보 OFF 기능은 이 게임에서 콤보가 필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깔끔하고 캐주얼한 느낌으로 세련되게 잘 뽑힌 아트워크와 큐티뽀짝한 쿵야들은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섬의 풍광과 더불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쿵야들을 보고 있자면 절로 힐링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스태미나를 다 쓰면 세상 모든 시름을 짊어진 것처럼 피곤한 모습을 하고 집으로 퇴근(?) 하는데, 주중 직장인 퇴근을 보는 것 같아 제법 웃기고 귀여웠네요. 코코넛 열매를 맵에 두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본 양 마구 화를 내면서 달려가는데 대체 코코넛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건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어린 시절 추억으로 무장한 친근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눈 아프게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그래픽, 쉽고 편리한 조작 방식과 특유의 중독성. 왜 여성 게이머들이 이 게임과 사랑에 빠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못생긴 쿵야 멈춰!
게임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진화할수록 기괴해지는 쿵야 디자인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넷마블 공식 콘텐츠에서도 이런 걸 인지했는지 진화된 쿵야는 각종 영상에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낮은 단계의 쿵야들은 기존 쿵야 시리즈의 깜찍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어요. 문제는 성장한 쿵야들입니다. 머지를 통해 진화하는 상위 단계의 쿵야들은 마치 삐뚤어진 탈선 청소년을 연상케 하더군요. 특히 비트 쿵야와 용과 쿵야, 고구마 쿵야는 충격적이었어요. 분명 우리가 좋아했던 그 시절 쿵야는 동글동글 귀엽게 데포르메된 야채 캐릭터였으니까요.
저처럼 느낀 유저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지 "못생겨져서 머지하기 싫다", "못생긴 게 덩치도 커서 시야를 가리니까 짜증난다", "진화 전으로 외형 설정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스태미나를 다 쓰고 잠든 쿵야들이 일어나는 순서도 불편한 점의 하나였습니다. 잠든 순서대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최근 집으로 자러 들어간 쿵야 순으로 일어나더라고요. 하루 종일 게임을 켜두는 지박령 같은 헤비 유저들은 도돌이표마냥 계속 같은 쿵야를 봐야만 했습니다.
스태미나가 많은 상위 쿵야일수록 늦게 잠들기 때문에, 계속 보는 쿵야는 못생긴 상위 쿵야일 확률이 높고요. 저도 한번 게임을 켜면 몇 시간 동안 진득하게 하는 편이라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 힐링 그 자체 '귀여움이 진리지'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머지 쿵야 아일랜드는 충분히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경쟁 콘텐츠나 협력 콘텐츠가 없어 접속 시간의 압박 없이 여유 될 때 접속해서 진득하게 하기 편하고, 조작도 크게 어렵지 않아 스트레스를 주지 않습니다.
무념무상으로 같은 자원들을 모아 5머지하고 있으면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는데, 커뮤니티에서 힐링 게임으로 소문난 이유가 있더라고요. 야채 부락리를 비롯한 기존 쿵야 시리즈의 팬 분들도, 쿵야 시리즈를 머지 쿵야 아일랜드를 통해 새로 접하는 분들도 부담 없이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업데이트로 만렙 확장과 더불어 신규 테마인 '화산섬'이 개방되었는데요. 레몬 쿵야, 백합 쿵야 등 새로운 쿵야와 함께 다양한 자원과 건물 또한 추가됐다고 합니다.
즐겨보니 콘텐츠가 늘어난 것은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조작감이 불편해진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신규로 추가된 화산섬과 기존의 섬이 자원을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본 섬에서 필요한 자원을 화산섬까지 일일이 옮겨야 하는 것이 많이 번거로웠어요.
혼자 화풍이 다른 것 같은 당근 쿵야 디자인 또한 아쉬운 점의 하나였습니다. 쿵야 디자인은 향후 꼭 개선되었으면 좋겠네요. 별조각, 목재, 코인 등을 획득할 수 있는 핫타임 이벤트가 진행 중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머지 쿵야 아일랜드를 찍먹하기에는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