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전앤파이터 빼앗긴 땅, 이스핀즈 공식 트레일러
"확실히 고민을 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던전앤파이터의 신규 콘텐츠이자 최초 레기온 등급 콘텐츠인 '빼앗긴 땅, 이스핀즈'를 체험한 첫 느낌이다.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등급이고 지난 콘텐츠였던 '마이스터의 실험실'이 여러 부분에서 혹평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아쉬움을 제대로 풀어내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스핀즈에서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은 보스 몬스터 4마리만 순차적으로 상대하는 구조였다. 지금까지 일반 던전, 상급 던전, 레이드 등 던전앤파이터에 존재하는 모든 콘텐츠는 매번 보스를 만나기 전에 여러 하수인 방을 거쳐야 했다. 보스와 싸우고 싶은데 주구장창 이어지는 하수인 방으로 몰입감이 떨어지거나 지루해지는 상황이 많았는데, 이번 이스핀즈는 입장하자마자 4마리의 용을 한마리씩 순차적으로 상대하는 방식이라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감이 깨지지 않고 공략할 수 있었다. NPC들이 좌측 메시지로 특정 기믹을 설명하는 것도 나름 재미 포인트였다.
게다가 코인을 사용할 수 없고 죽으면 다시 1페이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조건(재입장 횟수 30회)이 있어 공격에만 집중했던 이전 던전들과 다르게 "공격 안 해도 되니까 사는 거만 신경 쓰세요"라는 멘트만 무한 반복할 정도로 생존 중심 위주 플레이를 펼쳤고 그만큼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집중력 또한 한층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스핀즈의 던전은 '배신자의 선택', '철의 무덤', '용의 정원', '죽음의 숲'으로 구분되고 각 던전에 용의 주인이 1마리씩 배치되어 있으며, 공략 순서는 도전자가 정하는 것이 아닌 매주 임의로 정해진다. 던전 입장 시 작전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낮은 작전인 '휘몰아치는 공격(금룡 느마우그에게 속성 공격 시 대미지 45% 증가)'의 경우 권장 명성이 3만3043 이상이며, 가장 어려운 '속전속결 2(4분 안에 용인 처치하기)'는 권장 명성 3만8243 이상부터 도전 가능하다.
본격적으로 도전을 시작하면 적들의 등장 연출부터 "신선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그 신선함은 기믹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 한 번쯤은 경험해 봤던 기믹들인데 그것을 보다 역동적이면서 재미있게 파훼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한 것이 포인트였다.
일부 기믹을 대조하자면 금룡 느마우그는 마계대전 '맨션 드 사르포자'의 색상 구슬 기믹과 비슷하다. 기자가 색약을 가지고 있어 사르포자의 구슬 색상을 구분하느라 룸메이트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난감한 기믹이었는데, 이번 금룡 느마우그의 경우 색상과 함께 문양이 지면과 머리 위에 나타나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었다.
진룡 이트레녹의 기믹은 '직격의 워즈워스'의 박치기 기믹과 과거 왕의 유적에서 '나에게 무릎을 꿇어라'라는 지면 파동 기믹이 혼합된 버전이었다. 땅울림이라고 표현된 진룡 이트레녹의 기믹은 점프 혹은 바닥을 내려찍으면서 파동을 일으키고 해당 파동에 닿으면 도전자는 넘어지면서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점프로 피해줘야 한다. 이때 게이지가 100% 채워진 것을 보고 점프하면 늦으므로 8~90% 정도 채워졌을 때 점프해야 정확한 타이밍에 회피할 수 있다.
진룡 이트레녹은 땅울림 외엔 특별한 기믹이 없어 점프 타이밍만 익히니까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다. 캐릭터를 쉴 새 없이 어수선하게 움직여야 했던 보스였지만 개인적으로 직관적인 기믹이 파훼할 때마다 손맛을 느끼게 해줘 굉장히 마음에 드는 구간이었다.
난이도가 가장 높으면서 손이 가장 바빴던 보스는 흑룡 네이저였다. 시로코 레이드를 떠올리게 만든 해당 보스는 자신이 전투를 하는 중앙 구간 외 다른 맵에 어둠의 꽃을 사용한다. 어디에 꽃이 피었는지는 미니맵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도전자는 전투 지역에 나타난 '어둠의 정령'을 건드려 버프를 3개 수급한 후 해당 맵으로 이동해 어둠의 꽃을 제거하면서 흑룡 네이저를 처치해야 한다.
이때 어둠의 꽃이 쌓이는 것을 무시하고 흑룡 네이저와의 전투에만 집중하면 즉시 사망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오랜 시간 난무하기 때문에 반드시 꽃을 처치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손이 가장 바쁜 보스였지만 진룡 이트레녹처럼 즐거운 것보다는 다소 지루함이 느껴졌다. 솔로 플레이로 공략하는 입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보스이기도 하다.
3페이즈는 신기하다. 보스의 자신의 HP를 소모해서 공격하는 패턴이라 공격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소모되는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기믹만 잘 파훼하면 공격을 하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다. 스펙에 구분 없이 기믹 파훼 능력이 뛰어나면 슈퍼 플레이가 가능한 구간이라 진행하는 동안 "이런 방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네"라며 개발팀에게 감탄을 표하기도 했다.
화룡 애쉬코어는 진룡 이트레녹만큼 이스핀즈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었다. 진룡 이트레녹이 기믹 파훼의 손맛이 재미를 제공했다면 화룡 애쉬코어는 전투를 할 때마다 타격의 손맛과 즐거움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적을 때려야 기믹을 파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때리지 않아도 공략할 수 있는 흑룡 네이저의 3페이즈와 다소 반대 개념이다. 화룡 애쉬코어를 공략하면서 던전앤파이터의 진정한 재미는 시원한 타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점프를 통해 지면의 화염을 제거하고 적을 때려 생존해야 할 범위를 창출하거나 위험 범위를 좁히는 기믹은 향후 던전에서도 많이 이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핀즈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110레벨 시즌… 이것을 위해서 그동안 속을 썩였던 것이냐"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퀄리티와 재미 모두 합격점을 줄 만했다. 덕분에 9월에 추가될 폭룡왕 바칼 레이드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증폭됐다.
보상과 난이도에 대해선 호불호가 다소 나뉠 수 있어 보였다. 아직 다음 콘텐츠가 추가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쁘지 않은 보상안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특히, 힘들게 커트라인을 맞춰 공략한 유저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첫 공략 당시 난이도도 적절했다고 생각되지만 마음 한편에선 시간이 흘러 익숙해져서 또다시 숙제로 전락하면 그때는 다소 시간을 지연시키는 등장 연출이 다소 귀찮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도 이미 마이스터의 실험실을 견디면서 고통을 받았던 탓인지 현재의 만족감이 크게 충족돼 앞으로의 미래 따위에는 당장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라면 입장 커트라인이 너무 높다. 레기온 등급이고 기존 유저들을 어느 정도 배려하기 위해선 그 수준에 맞는 커트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신규 및 복귀 유저에게 110레벨을 달성해서 명성 3만3000에 도달할 때까지 던전앤파이터에 재미를 붙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하다.
이스핀즈는 정말 재밌다. 던전앤파이터를 즐기는 유저라면, 앞으로 즐길 계획이 있는 유저라면 꼭 한 번쯤 경험해 보라고 추천할 만큼 재밌다. 하지만 110레벨 초기 버전과 비교하면 다양한 부분이 개선된 상태라고 해도 에픽 아이템을 파밍하고 명성을 높이면서 파괴된 죽은 자의 성(마스터), 노블레스 코드, 마이스터의 실험실에 도달한 뒤로 수없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이스핀즈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정말 지루하다.
캐릭터가 어느 정도 성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잠시 던전앤파이터를 떠난 복귀 유저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으나 처음으터 여름 이벤트와 이스핀즈 하나만 바라보고 시작한 신규 유저는 바칼 레이드가 출시된 이후에도 이스핀즈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재미있는 콘텐츠라도 손에 닿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이스터의 실험실이 이렇게 나왔다면 던전앤파이터에 정착하는 신규 유저가 더 많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이 계속 맴돈다. 이스핀즈를 한 번만 즐겨도 분명 던전앤파이터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말이다.
지나간 일을 계속 생각해봤자 후회만 남을 뿐. 이스핀즈로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한 만큼 그 이스핀즈를 어떻게 하면 빠르게 만날 수 있을지,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까지 해결한다면 분명 더 많은 유저가 던전앤파이터를 찾고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