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 새턴의 실패 이후 드림캐스트로 소니와의 2차 전쟁 선언

[SEGA SATURN - Virtua Fighter 2]
이미지 - https://from-japan-retro-sale.myshopify.com/products/virtua-fighter-2-sega-saturn-japan-3

온 세상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세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예전부터 닌텐도가 독식한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 만년 2등의 설움을 안고 기술을 개발하던 세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만 했다. 그 동안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닌텐도의 독주에 맞서 홀로 싸우느라 힘에 부쳤어도,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온 세상을 푸른색 물결(세가의 트레이드 칼라)로 넘실거리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게임기를 만들어 본 적도 없는 가전제품 업체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더니 시장을 빼앗아 버렸다. 세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세가는 희대의 역작이라 불리는 ‘버추어파이터’를 등에 업고도 1000만대를 팔지 못했다(공식집계 926만대). 버추어파이터 시리즈는 당시 아케이드 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격투 게임의 3D 대중화를 연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누구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하던 3D 대전 액션 게임을 성공시키며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당시 ‘버추어파이터(이하 버파) 2’는 MODEL2 기판을 사용한 아케이드 버전과, 이를 콘솔 게임기 버전으로 이식한 세가 새턴용 버파가 있었다. 새턴용 버전을 PC로 이식한 버전은 초기 3D 가속이 지원되지 않고 소프트웨어 렌더링만으로 처리하는 문제로 그래픽 퀄리티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후에 Direct3D를 지원하는 패치 이후에야 그래픽 최적화 문제가 해결됐다).

역대 버파 시리즈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시리즈 중에서도 최고 성공작으로 꼽는 버파2 새턴 버전은 170만장이 팔렸다. 당시 새턴 게임들 중에서는 높은 판매량이지만 다른 콘솔 게임기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다. 300만장은 기본이고 500만장 700만장 이상 팔리는 게임들이 즐비한 닌텐도 진영이나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에 비해 초라한 수치였던 것이다.

[SEGA Rally Championship]
이미지 – 유투브(/watch?v=cs3d6KaU-bg)

세가 새턴은 1992년부터 개발을 시작해서 출시까지 약 2년간의 개발기간이 소요됐다. 세가는 전통적으로 아케이드 시장에서 강력한 히트작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 게임들만 새턴으로 옮겨와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세가 새턴은 버추어파이터나 버추어 캅, 세가 랠리 챔피언십 등의 3D 인기 게임의 후광으로 새턴 발매 초기에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의 판매량을 앞지르고 먼저 1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면서 그 예상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세가에서 죽어라 고생해서 만든 3D 게임을 새턴용으로 이식하고 발매하면 할수록 이것은 소니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처음부터 3D 게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지만 당시 3D 게임은 이제 막 활개를 펼치기 전이었다. 아직은 2D 게임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즉,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3D게임에 최적화된 3D 전용 게임기라고 하지만 게임기에서 구동 되는 3D 타이틀이 절대 부족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서드파티들에게 혜택을 주며 전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3D게임이라는 것이 몇 달 뚝딱해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게임개발 업체는 2D게임 위주였기 때문에 소수 업체만이 출시하는 3D 게임들로는 막상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도 즐길만한 3D 게임이 절대 부족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것을 세가가 열심히 홍보해 주고 있었다. 

‘이제는 3D 게임의 시대다!’

자사의 빅히트 타이틀들을 새턴용으로 이식하면 할수록 경쟁사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게이머들이 거는 기대치도 높아져 갔다. 애초에 급하게 설계를 변경하느라 제대로 완성되지도 않은 3D게임기와, 처음부터 3D기능을 염두에 두고 개발 된 게임기와의 싸움은 이미 결말이 예상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Virtua Fighter 2]
이미지 – 유투브(/watch?v=93Zpzm37sTU&t=725s)

실제로도 당시 소니의 개발진들은 세가의 버추어파이터를 보고 ‘이거다!’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일화가 있다. 3D의 가능성을 보고 미래를 예측해 3D기능에 최적화된 게임기를 만들어도 정작 소프트웨어가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세가의 버추어파이터를 보고 정말 3D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들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그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게임기의 3D 기능만 따져보면 세가 새턴보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우월).

그러던 중에 1996년 3월 드디어 캡콤의 바이오하자드가 출시됐다.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먼저 출시한 바이오하자드 게임은 ‘서바이벌 호러’ 게임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게임으로 275만장이 팔렸다. 새턴의 버추어파이터2가 170만장 팔린 것에 비하면 100만장이나 더 팔린 것이다. 당시 이 수치에 놀랐던 이유는 게임의 장르도 낯선데다, 내용조차도 기존의 게임들과는 다소 특이하고 다른 방식이었기에 아무도 바이오하자드의 흥행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캡콤 내부에서도 이 게임은 팔리지도 않을 게임인데 왜 돈을 낭비해가며 만드냐는 비난을 받았다(자세한 내용은 게임별곡 캡콤편 참조).

[Bio Hazard 1(Resident Evil 1)]
이미지 – 유투브(/watch?v=5nbuY1ExnOs)

바이오하자드의 성공은 캡콤으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소니에게는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심정으로 자다가도 웃음이 나올 판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인 1996년 4월 스퀘어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적을 발표한다. 세기의 게임으로까지 표현되는 파이날판타지 7편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된다는 소문은 하루가 가기 전에 전 세계 게임업계로 퍼져나갔다. 세가는 스퀘어가 소니행 티켓을 끊었다는 발표를 듣자마자 부랴부랴 에닉스를 찾아갔다. 파이날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스퀘어에 맞설 수 있는 정도의 상대라면 적어도 드래곤퀘스트로 유명한 에닉스 정도는 돼야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하고 1997년 1월 에닉스마저 소니와 손을 잡기로 결정한다.

[DQ7]
이미지 – 유투브(/watch?v=o00UAMp_kiw)

파이날판타지, 드래곤퀘스트 이렇게 일본에서 최정상을 차지하는 국민 RPG 두 개 모두 닌텐도에서 소니로 갈아 탄 것이다. 세가는 둘 중에 하나라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결국 둘 다 모두 닌텐도를 버리고 세가를 선택하는 옵션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닌텐도의 NDS, 3DS로 다시 파이날판타지, 드래곤퀘스트가 나오고 있으니 업계에서 영원한 적은 없나 보다.

그렇게 당시 국민게임 중에서도 초 거물급인 두 게임 모두 소니와 손을 잡았다. 1990년 초중반에 벌어진 게임기 왕위쟁탈전에서 파나소닉의 3DO는 일찌감치 나가떨어지고, 1994년 출시한 세가 새턴과 같은 해 출시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피 터지는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닌텐도는 1996년 돌연 32비트 게임기가 아닌 64비트 게임기로 출시해, 닌텐도64라는 이름으로 32비트 게임기 시장의 싸움을 멀리서 팔짱 끼며 지켜보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시기에 일본 내에서만 무려 4대의 플랫폼이 시장 쟁탈을 두고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동안 총 3000여개 넘는 타이틀을 쏟아내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이길 자가 없었다. 그래도 세가 새턴이 사활을 걸고 1000여개의 타이틀을 출시했지만 이미 대세는 3D였고 3D하면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인식을 뒤엎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그에 비해 3DO는 200개 정도 타이틀을 출시한 것에 그쳤다. 닌텐도의 닌텐도64 역시 200여개의 타이틀 밖에 출시하지 못했고, 게임의 질적인 부분이나 양적인 부분 모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압도하고 있었다. 온 세상이 플레이스테이션 천지였다. 닌텐도도 물론이지만 세가는 더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당시 세가의 임원을 부모로 둔 자식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사달라 말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케이드 시장의 강자이자 전통의 세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가는 위엄 있고 뼈대 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자 닌텐도와 함께 시대를 관통하는 주역이었다. 북미에서도 세가의 16비트 시절 이야기는 신화로 각인돼 있었다. 방심하다 신흥 세력 소니에게 패배한 것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전략적인 수정을 해야 할 상황에 처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세가 새턴으로는 부족하다.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세가는 자신들의 자식을 버렸다. 1997년 세가 컨퍼런스에서 드디어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라는 발표를 통해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세가의 창업자이자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공동 회장이었던 나카야마 하야오 역시 세가 새턴의 실패로 문책성 인사를 당했고 세가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상대 진영 소니의 소니 컴퓨터 엔터테언먼트 아메리카의 부사장이었던 버나드 스톨라를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부사장으로 고용했다. 세가는 적의 수장을 고용할 정도로 절박했다.

세가 새턴의 3D 기능에 취약함으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당했던 울분을 두고두고 가슴에 품고 있던 세가에서는 차세대 게임기만은 3D 기능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아야 했다. TV나 오디오 같은 가전 제품이나 만들던 가전제품 회사 소니와는 질적으로 달랐던 세가의 20년 가까운 콘솔 개발 노하우를 총 동원했다. 이런 세가의 꿈과 염원을 담아 차세대 게임기 이름은 ‘드림캐스트(Dream + BroadCast 합성어)’라 정해졌다.
 

[Dreamcast]
이미지 – 유투브(/watch?v=Yaqn2zHurCs)

세가의 꿈에 일본 거대의 복합기업인 히타치도 가세했다. NEC도 합세했다. 세가로서는 막강한 지원군들을 얻었다. 히타치는 세가의 메가드라이브 시절부터 세가와의 인연이 깊다. 메가드라이브 게임기는 모토로라의 CPU를 탑재했는데, 이 CPU를 모토로라가 히타치에게 하청을 의뢰해 정작 CPU를 세가에 납품한 업체는 모토로라가 아니라 히타치였던 것이다. 이 때의 인연으로 다음 기종인 세가 새턴에도 히타치의 SuperH-2(SH-2) CPU가 탑재됐다(2개나!). 새턴이 패망한 이후에도 협력관계는 계속 이어졌는데 세가의 마지막 콘솔게임기였던 드림캐스트에도 히타치의 SuperH-4(SH-4) CPU가 탑재되었을 만큼 세가와 히타치는 우군을 뛰어 넘는 절대동맹 세력이었다.

히타치는 오래 전부터 소니와 경쟁 관계인 회사였다. 히타치는 다양한 분야에 사업부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지만 전통적으로 일본 최대의 전자/전기 회사로 알려져 있다. 히타치는 캠코더와 빔 프로젝터, 오디오 기기 등 소니와 겹쳐지는 사업부가 많다. 실제로도 사업분야의 겹침으로 인한 경쟁사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소니의 경쟁사들은 마쯔시타전기산업, 후지쯔, 일본빅터(JVC), 일본전기(NEC), 도시바, 히타치 등의 전자/전기 가전업체들이다.

1980년대부터 주류 칩(단도체) 시장을 장악했던 히타치, NEC, 후지쯔와 같은 회사와 그룹 차원에서 경쟁구도에 있었던 소니는 전혀 새로운 분야였던 콘솔 게임기 시장에 도전했다. 이를 지켜보던 경재사들은 새로운 연합군을 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새로운 사업부 설립과 제조 설비라인을 갖춰가며 승기를 잡고 있는 상대와 싸우기에는 출혈이 너무 컸다.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축이 있어야 했다. 그 역할을 세가가 맡았고 세가와 일본 내 소니의 경쟁사였던 히타치와 NEC는 세가 연합군에 가세했다. JVC도 세가 연합군에 가세하여 ODD와 픽업을 담당했다. 사운드 제조 장비 등에서 소니와 경쟁관계에 있던 야마하도 가세했다.

1920년 창업해 일본의 최대 전자/전기 업체이자 복합기업인 히타치와 1899년 설립해 각종 가전제품, 반도체, 컴퓨터, 휴대폰, 통신 및 방송장비는 물론 메인프레임, 슈퍼컴퓨터까지 일본의 전기/전자제품을 총 망라하는 NEC(일본전기), 그리고 1927년 창업 한 일본의 전자대기업으로 주로 오디오와 A/V 기기를 생산하는 JVC, 1897년 창업해 오토바이, 헬멧, 모터보트, 엔진, 제트 스키, 전기 자전거, 악기, 음원, 헤드폰, 골프 용품, A/V기기, 반도체 등의 사업에 진출한 야마하까지. 하나같이 창업한지 100년이 넘거나 제일 짧은 역사도 93년에 이르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기업들이 집단군을 형성하여 소니를 압박하고 있었다.

[SEGA]
이미지 – https://www.sega.co.jp/

이름도 버렸다. 자랑스럽게 여기던 파란색 로고 SEGA도 떼어버렸다. 이제 세가는 더 이상 닌텐도와 용호상박(龍虎相搏)하며 용쟁호투 하는 권위 있고 위엄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전통의 강자 닌텐도에게 패하고 신흥 소니에게 패배한 패배자의 이름이었다. 차세대 게임기 드림캐스트에는 SEGA의 이름도 빼버렸다.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했다.

그렇게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 그룹 집단들과 신흥 세력 소니와의 2차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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