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세가 제치고 날개돋친듯 팔려나간 플레이스테이션

[SONY PlayStation]
이미지 - 유투브(/watch?v=QRg9QvJLHWs&feature=youtu.be)

1994년 12월 3일 크리스마스를 3주 앞두고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이 세상에 공개됐다. 전통적으로 닌텐도가 독주하고 있는 가정 콘솔용 게임기 시장에, 세가가 닌텐도를 추격하고 남은 작은 파이를 여러 회사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상황에서 소니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차례로 플레이스테이션은 1995년 9월 9일 북미, 1995년 9월 29일 유럽, 1995년 11월 15일 호주에서 각각 출시됐다. 

대한민국은 가장 늦은 시기인 1997년 3월에서야 정식으로 출시됐는데, 이미 2년이나 늦은 출시 시점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많이 배포돼 사실상 게임기를 살만한 사람들은 이미 구매한 뒤였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전자상가 밀집지역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업소마다 가격이 일률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관계로 종업원들의 앵무새 같은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는 대사를 들어야 했다. 돈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기에 웃돈을 줘가면서까지 구입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당시 60~70만원의 거액을 주고 산 친구들도 있었다.

정식 출시 가격은 3만9980엔이었지만 일본에 직접 가서 사오지 않는 이상 그 가격에는 구매할 수 없었다. 일본에 직접 갔다 온다 하더라도 왕복 비행기 표 값을 생각하면 웃돈이 얹혀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지기도 했다. 당시 최고의 출장 선물은 플레이스테이션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처음 출시한 3만9800엔의 가격은 당시 세가 새턴이 1994년 11월 22일 출시했을 때 4만9800엔이었다는 것에 비하면 만엔이나 싼 가격이었다. 출시 이후부터 세가의 새턴과 소니의 플스는 가격 인하 전쟁이 붙었다. 소니의 플스는 2만9800엔에서 2만4800엔으로 가격을 인하하고, 다시 1만9800엔에서 1만8800엔으로 떨구더니, 최종에는 9800엔까지 가격을 내리는 극한의 경쟁을 펼쳤다. 

여기에는 하드웨어 설계 출신이었던 쿠사나기 켄의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있었다. 사실 세가와 소니의 가격인하 전쟁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쿠사나기 켄은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 할 세가의 콘솔 게임기 세가 새턴을 분해 조립해가며 하드웨어 설계를 면밀히 조사하던 중 ‘이거다!’ 하면서 무릎을 쳤다. 세가의 게임기 개발사업부는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로 거듭나겠다는 각오까지는 좋았지만, 만년 2등의 설움이 얼마나 북받쳤는지 지나치게 상대 진영들을 의식한 것이 문제였다.

[SEGA SATURN]
이미지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ga-Saturn-Motherboard.jpg

쿠사나기 켄은 그 문제점을 놓치지 않았다. 세가는 영원한 숙적 닌텐도는 물론 신흥세력이었던 소니까지 지나치게 신경을 썼다. 그세가는 소니의 강력한 3D 기능 지원이라는 광고 문구 하나에 자신들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의 성능으로 짓눌러주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초기 단일 CPU 설계였던 세가의 차세대 콘솔 게임기의 하드웨어 설계 스펙을 무리하게 변경해 결국 CPU를 하나 더 추가하는 듀얼 CPU의 복잡한 구조로 변경시켰다. 단지 CPU가 하나 더 추가 된 것으로 끝이 아니라 듀얼 CPU구조에 맞춰 모든 회로 설계가 다시 이뤄져야 했다. 물론 제조단가 상승은 불가피했지만 세가에게 이런 문제는 문제 따위도 아니었다. 당시에 세가는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텐데 수중에 돈이 남아돌아도 1등을 탈환하지 못하는 설움에 북받쳐 있었다.

세가 입장에서는 경쟁자에 비해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 한 결과였지만 오히려 이 열정이 화를 불러왔다. 쿠다라기 켄은 세가의 게임기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고 제품 구조와 개수, 그리고 공정과 단가를 치밀하게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이미 신입 시절부터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 사장에게서 기술력만큼은 인정받았던 인재였을 만큼 실력 하나는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플스3 사건으로 이미지가 좀 추락해서 입으로만 먹고 사는 사업가처럼 비춰지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는 유능한 엔지니어다).

[SONY PlayStation]
이미지 - https://en.wikipedia.org/wiki/File:PSX_mainboard.jpg

쿠다라기 켄의 계산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는 플레이스테이션을 설계하면서 바로 이점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가장 빠르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하드웨어 스펙과 향후 단계적인 기능 추가와 성능 향상을 위한 여지로 남겨 둘 부분을 고려하고 소형화와 대량화를 통해 가격을 다운시킬 수 있는 제조 공정 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기판이 초기 플레이스테이션(일명 PSX) 메인보드다.

자신감을 얻은 쿠다라기 켄은 소니 경영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가 새턴을 향해 가격 인하 공격을 펼쳤다. 가격을 내릴 때 마다 원판 플레이스테이션의 설계를 계속 수정해가며 원가 절감을 동시에 진행한 것은 물론이다. 세가 입장에서 보기에는 막무가내식으로 가격을 인하해대는 소니에게 대항할 방도가 없었다. 소니가 인하하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세가도 따라 하고, 세가가 인하하면 다시 소니가 인하를 하는 형세가 이어졌다. 세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여기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각오로 소니의 가격 인하 정책을 되받아 쳤다.

하지만, 사실 세가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당시 세가의 북미 시장을 총괄하던 토마스 칼린스키는 세가의 사장이었던 나카야마 하야오의 전권을 위임 받아 북미 시장을 통솔하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이전 16비트 게임기 시절에 닌텐도의 슈퍼패미컴(북미 SNES)에 맞서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북미 제네시스)를 정상에 올려놓고, 아직도 북미에서 ‘제네시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만큼 북미에서만큼은 닌텐도에 뒤지지 않는 실적을 올렸다(한때 닌텐도를 역전했을 정도).

[토마스 칼린스키]
이미지 – 유투브(/watch?v=n_E2lh1lgmk)

토마스 칼린스키는 초기 세가 새턴의 프로토 타입을 받아보고 아연실색했다. 세가 아메리카의 연구팀원들 조차 이런 게임기로는 시장에 승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과격한 구조의 설계를 최대한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던 중, 당시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새로운 칩을 개발중이던 SGI와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을 통해 SGI의 새로운 칩을 세가 새턴에 탑재하는 방안을 일본 세가 본사에 전달하지만, 평소부터 나카야마 사장의 친구이자 세가 아메리카를 휘젓고 다니는 토마스 칼린스키를 곱게 보지 않았던 세가 본사의 임원진들이 온갖 트집을 잡아 토마스 칼린스키의 의견을 묵살하게 된다. 게다가 세가 본사의 사업부는 아케이드 사업부와 가정용 사업부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두고 내부에 각기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부와의 갈등이 존재하는 조직과, 단일팀으로 구성되어 하나의 목표를 둔 조직과의 싸움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번에도 운명의 신은 쿠다라기 켄의 손을 들어주었다. 세가 새턴이 일본 본사와 미국 지사의 임원진간의 갈등으로 사업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쿠다라기 켄은 더욱 가열차게 가격 인하 공세를 펼치게 된다. 이렇게 세가 새턴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의 가격 인하 공세에 밀려 점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토마스 칼린스키라는 유능한 사업가를 두고 있으면서도 참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가 새턴은 전 세계에 962만대의 판매량을 달성했지만 내수(일본)에 574만대 해외 352만대 판매한 것에 그쳤다. 그에 비해 토마스 칼린스키가 이끄는 세가 아메리카의 경우 16비트 게임기 시절에 달성한 위업은 메가 드라이브(북미 제네시스)가 일본 내수에 358만대 판매에 그친 것에 비해 해외 2700만대를 판매해 토마스 칼린스키의 탁월한 사업가적 역량은 단순 수치상으로도 입증됐다.

[299!]
이미지 – 유투브(/watch?v=ExaAYIKsDBI)

결국 1995년 5월 11윌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E3 게임쇼에서 세가는 세가 새턴을 기존 출시일보다 4개월이나 빠르게 속행해서 발표했다. 그리고 출시 가격은 399달러로 정해졌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발표에서 당시 소니의 SCE 아메리카 사장이었던 스티브 레이스의 한 마디에 앞서 발표했던 세가의 모든 것이 묻혀 버렸다.

앞뒤 아무런 말도 없이 “299” 짤막한 한 마디만 남기고 발표석에서 내려가는 그의 모습에 게임쇼 발표장은 환호와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고, 그렇게 세가와 소니의 첫 가격 전쟁은 시작되었다. 애초에 신흥 소니의 추격을 일찌감치 뿌리치고 선두주자 닌텐도를 바짝 추격하고자 했던 세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장의 반응은 세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신흥 소니의 299라는 숫자만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SEGA SATURN]
이미지 -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Sega-Saturn-JP-Mk2-Console-Set.jpg

세가는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무리하게 출시 일정까지 앞당겼지만 결국 욕심만 앞섰고 원활한 물량공급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준비를 하고 출시를 한 소니에게 한 방 먹었고, 그 뒤 이어지는 가격인하 정책을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였다. 소니가 가격인하를 하면 세가 역시 가격인하를 해야 했고 세가가 가격인하를 하면 보란 듯이 소니는 다시 가격인하를 했다. 계속해서 가격 인하를 하는 중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원칩 구성으로 단가를 절감하면서 가격인하를 하고 있었다. 소니와는 다르게 설계 변경부터가 불가능한 세가의 가격인하 정책은 그야말로 제 살을 깎아먹는 행위였다. 결국 1996년 7월 세가 아메리카의 수장이었던 토마스 칼린스키는 회사를 떠나고 만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수장 토마스 칼린스키는 세가 이전 마텔(미국의 유명한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의 사장이었다. 마텔에서도 임원들과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회사를 그만두고 하와이에 휴양 중이던 차에 세가의 사장이었던 나카야마와의 만남을 통해 세가 아메리카의 사장을 맡았으나 세가에서도 결국 정치 싸움에 휘말려 회사를 떠나게 됐다. 이 양반이 사업능력은 뛰어난데 정치력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사내 정치력은 좀 부족해도 세가의 게임기를 북미 시장에 안착시키고 북미에 맞는 전략으로 시장에 승부수를 띄우며 닌텐도의 점유율을 역전하기까지 한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이런 인재를 놓친 세가는 그 이후로 북미에서 만년 2등의 지위도 지키지 못 하고 3등, 4등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2001년 세가의 모든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포기하는 선언을 하며 게임기 사업에서 영원히 철수해버리고 만다.

소니는 세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일단은 승리했다. 가격 정책에서만큼은 세가에 앞섰고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하드웨어(게임기)가 아무리 많이 팔려나가도 결국 게임 소프트 타이틀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면도날 없는 면도기가 무슨 소용인가. 날카롭고 예리하고 날이 잘 무뎌지지 않는 성능 좋은 면도날이 필요했다. 친 서드파티 정책으로 많은 게임 업체들이 참여를 약속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업체가 주저하고 있었다 

[나카무라 마사야 – 남코 회장]
이미지 - https://www.digitaltrends.com/gaming/namco-founder-masaya-nakamura/

제일 처음 남코가 가세했다. 닌텐도의 강압적인 품질관리 정책에 넌덜머리가 난 남코는 보란듯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닌텐도의 패미컴 초기에는 우수한 다수의 타이틀이 필요했기 때문에 비교적 서드파티들에게 대우가 좋았다. 게다가 남코는 닌텐도의 서드파티 1호 업체였고 이미 아케이드(오락실) 시장에서 다수의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었다. 남코의 경우 닌텐도에게도 꼭 필요한 서드파티였기 때문에 닌텐도의 까다로운 품질검수도 생략 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하지만 남코와 허드슨이 1986년 독자적인 가정용 콘솔 게임기 일명 NC1(Namco Consumer 1)을 개발하려다 출시직전 포기한 이유로 인해 게임기 시장은 자기들의 독점 시장인데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한 닌텐도에게 품질검수 특혜금지를 받고 이후부터는 까다로운 품질검수를 받는 일반적인 서드파티가 되었다.

닌텐도는 패미컴 초기에 남코의 이식작으로 입은 은혜를 잊고 우리에게 굴욕을 줬다.
- 남코 나카무라 마사야 회장

닌텐도 패미컴 초기에 자신들의 게임 때문에 덕을 많이 봤으면서 이렇게 냉대하는 것에 두고두고 이를 갈던 남코의 나카무라 마사야 회장은 소니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소니의 오가 노리오 사장을 직접 찾아갔다. 당시 소니를 방문했던 남코의 나카무라 마사야 회장은 회사 규모면에서도 소니 그룹 전체가 압도적으로 우위인데다가, 여러모로 비교해도 자신들보다 큰 회사였던 소니의 사장이 너무나도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자사의 게임기(플레이스테이션)는 꼭 성공할 것이며 이 성공에는 반드시 남코와 같은 우수한 회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완전히 넘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닌텐도에 고개 숙이고 자존심 상해있던 나카무라 마사야는 야마우치 회장(닌텐도 회장)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소니로 이적을 결정했다. 그렇게 남코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서드파티 1호가 됐다. 남코가 소니와 손읍 잡았다는 소식에 그제서야 다른 업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마우치 히로시 –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미지 – 유투브(/watch?v=xEWKLjWNL5U)

그렇게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으로 제일 처음 출시된 게임은 ‘SLPS-00001’이라는 시리얼 코드를 부여 받고 출시 된 남코의 ‘릿지 레이서’가 되었다.

그리고 결국 1996년 1월 12일, 스퀘어의 닌텐도 이탈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쉽게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출시하기만 하면 일본 내에서만 몇 백 만장씩 팔리는 파이날판타지 시리즈가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간다? 그 동안 혈맹관계에 가까웠던 닌텐도를 배신하고 소니로 옮겨 간다는 것은 닌텐도에게 전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이자 그 동안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고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였고 스퀘어의 협상 담당자들은 소니에게 이런 점을 강조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초기에 소니의 제안을 받을 때만 해도 플스가 300만대 팔리면 생각해 보겠다고 거절했던 스퀘어는 이제 정 반대의 입장이 되어 소니에게 읍소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쿠다라기 켄은 이전에 제안을 거절 당했던 괘씸함 보다 당장 플레이스테이션이 성공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용의가 있었다. 소니는 스퀘어에게 플랫폼 사용 계약을 인정함과 동시에 더해서 로열티 인하와 스퀘어만의 독자적인 유통망까지 포함하는 내용의 제안을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런 스퀘어의 이탈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닌텐도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예약대기를 걸어야 할 정도로 팔려나가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보며 스퀘어의 숙명적인 라이벌이었던 에닉스는 자사의 드래곤퀘스트 시리즈의 앞날도 생각해 봐야 할 상황이 되었다.

차기 파이날판타지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한다는 발표 하나에 쌓여있던 재고도 급속히 소진되기 시작했고 플레이스테이션은 이제 공급물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24시간 풀 가동 되도 생산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닌텐도의 차기작 닌텐도64는 기대만큼 판매량이 나오지도 않았다. 남코와 스퀘어가 손을 잡았다면 차라리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빨리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한 협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에닉스 역시 소니 진영으로 이탈을 발표하면서 이제 앞다투어 소니를 찾는 게임 회사들이 많아졌다. 세상이 변했다. 독재자 야마우치 회장의 닌텐도의 독주는 이제 끝났다. 너무 성급하게 결론 짓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시장의 반응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차세대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다.

1994년 6월 24일, 그렇게 닌텐도에 대한 복수를 외치며 시작한 PS-X 프로젝트는 이렇게 애초에 의도한 것 보다 훨씬 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엄청나게 많은 게임 회사들이 참가한 이 1차 전쟁의 승리자는 단연코 소니였다. 전통의 강자 닌텐도를 제치고 용호쟁투하며 늘 닌텐도를 긴장시키고 바짝 추격하던 세가도 제치고 이제 막 새롭게 시장에 진출한 신출내기 소니가 시장을 석권한 것이다.

하지만 쉽게 물러설 세가가 아니었다. 세가는 다가 올 2차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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