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와 닌텐도의 차세대 프로젝트명 플레이스테이션, 결국 무산

[닌텐도와 소니의 합작 플레이스테이션]
이미지 - 유투브(/watch?v=dCV6RusogAk)

공포 영화 중에는 쌍둥이로 잉태되었지만 한 아이만 세상에 태어나고 나머지 한 아이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억울하게 눈을 감은 뒤 벌어지는 무서운 이야기가 있다.

소니의 가정용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플스)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지금 세상에 알려져 있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사실 다른 모습이 될 뻔 했다. 전성기 기준으로만 전 세계적으로 1억대 이상 판매하며 누적 합계 3억대 이상을 판매한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게임기는 소니가 아니라 닌텐도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올 뻔 했던 적이 있다.

소니와 닌텐도는 한 때 같은 꿈을 꾸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신의 성실하게 서로를 돕는 돈독한 사이였다. 애초에 소니와 닌텐도는 주력 업종 자체가 다르기에 서로가 경쟁관계가 아니었고, 사이가 나쁠 이유도 없었다. 닌텐도는 가정용 콘솔 게임기와 게임 개발 관련 업종에 특화되어 있었고 소니는 게임 사업과는 무관하게 사운드와 영상 등의 기술 특화적인 가전제품으로 서로 시장이 겹치지 않기에 치열하게 경쟁 할 필요가 없었다. 닌텐도의 최고 전성기였던 16비트 게임기 시절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에는 소니의 핵심 사운드 칩이 탑재되었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동반상생의 길을 걷는 협력자 관계였다.

[Nintendo와 SONY의 로고]
이미지 - http://smilecitrus.info/?tag=nintendo

게임기의 중요한 칩셋에 나란히 새겨진 닌텐도와 소니의 로고를 보고 있노라면 두 회사가 얼마나 애틋한 사이였는지 알 수 있다. 닌텐도라는 회사는 자사의 하드웨어 플랫폼 설계 기술상으로 부족한 부분은 최대한 외부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데 적극적인 업체 중에 하나다(그에 반해 롬 카트리지 정책등과 같은 폐쇄성이 공존하는 희한한 집단이다).

닌텐도는 8비트 가정용 콘솔 게임기인 패미컴의 성공 이후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성공에 취해서 머물지 않고 더더욱 시장 독점에 대한 욕심을 내면서 성능을 집약적으로 끌어올리는데 사활을 걸었다. 추격자 세가(SEGA)에게 여차하면 그대로 시장을 뺏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자신감이 충만했는지, ‘Super’라는 접두어를 붙여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컴’을 출시한다.

슈퍼패미컴을 출시하면서 그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CPU와 사운드 칩셋은 모두 외부의 기술을 활용했다. 자신들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기술력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력 투입도 문제였지만, 현금을 쌓아 둘 정도로 현금이 많다고 소문난 닌텐도조차 살 수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숙련된 기술개발력에 필요한 시간이었다. 당장 출시해야 할 플랫폼에 아무리 많은 돈을 들인다 해도 정해진 일정 안에 만족할만한 품질의 기술 개발력을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닌텐도는 자신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차라리 그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와 함께 가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닌텐도는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억지로 만들려 하지 않았다.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해당 분야에 최고와 손을 잡았는데 닌텐도가 가정용 콘솔 게임기 시장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시절, 워크맨과 휴대용 CDP등으로 사운드와 관련 된 기술에 특화된 기업은 바로 소니였다. 닌텐도에 없던 것을 갖고 있던 소니는 닌텐도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자연스럽게 닌텐도와 협력하는 관계가 됐고 닌텐도의 차세대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컴에는 소니의 8-channel 8-bit Sony SPC700 칩이 탑재됐다. 소니의 사운드 칩은 당시 닌텐도가 탑재하려던 FM음원칩에 비해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PCM음원칩이었는데 경쟁상대였던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에 장착 된 FM음원칩보다 우월한 성능을 보여줬다. 같은 게임 사업에 경쟁자였던 세가를 제치고 시장이 겹치지 않는 협력관계인 소니와의 상생관계는 그렇게 시작됐고 그 이후로 닌텐도와 소니는 협력자의 길을 걷게 된다.

[쿠다라기 켄]
이미지 – 유투브(watch?v=wd8wRQcPNxI)

이 때 두 회사를 연결하는 중요한 인물이 쿠다라기 켄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던 그는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 1, 2를 성공시켜 신화적인 인물로 추앙받으며 플레이스테이션의 개발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아직 세상에 등장하지 않았던 그 이전에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에 소니의 사운드 칩을 사용하게 되면서 쿠다라기 켄은 닌텐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어느 날 집에서 자신의 딸이 닌텐도의 패미컴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게임 시장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다. 그 이후로 쿠다라기켄은 소니의 경영진을 설득하고 자신의 회사였던 소니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닌텐도에서 보낼 정도로 게임사업에 몰두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비화가 있다. 당시 소니에서는 게임 사업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한 번 PC게임 사업에 진출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는 게임 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다짐으로 사업을 철수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쿠다라기 켄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들의 게임 사업이 실패한 것이지 게임산업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에 진출 한 자신들의 게임 사업의 실패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는 게임 시장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 되고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다시 게임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딸이 닌텐도의 게임기 패미컴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닌텐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던 쿠다라기 켄에게 닌텐도가 차기 게임기로 슈퍼패미컴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쿠다라기 켄은 곧바로 닌텐도를 찾아가 자신이 설계한 새로운 음원칩을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에 탑재하기를 제안했다. 닌텐도에서는 왜 난데없이 가전업체 소니에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의아해 했지만 결국 당시에 채택하기로 했던 FM음원칩보다 훨씬 성능 면에서 뛰어난 소니의 음원칩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쿠다라키 켄과 닌텐도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닌텐도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숙적인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에서도 같은 FM음원칩을 탑재하고 있었고, 다른 대안이 없던 차에 갑자기 보다 성능이 우세한 칩을 제공해 준다고 하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소니의 신형 사운드 칩셋을 닌텐도에 납품하기 전에 소니의 경영진에게 사전 동의나 내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쿠다라기 켄이 독단으로 닌텐도에 납품하기로 했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으로 치면 자동차 연구원 한 명이 새로운 냉각장치를 개발했는데, 내부 회의나 경영진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혼자 전자회사를 찾아가 마치 내부 승인을 얻은 것인양 새로운 부품을 신형 냉장고에 탑재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장에 해고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연히 소니의 경영진은 이 사건을 두고 노발대발했고, 그렇지 않아도 문제아 같았던 쿠다라기 켄을 이 참에서 소니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 쿠다라기 켄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준 이가 오가 노리오 회장이다. 오가 노리오 회장은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소니의 회장이기 전에 성악가이자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소니 그룹에서는 당연하게도 소니뮤직을 설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후에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SCE)를 설립한다. 오가 노리오 회장은 일찍이 1989년 미국의 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해 ‘소니픽쳐스’를 탄생시킨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미국의 CBS 레코드 부문을 인수해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를 탄생시켰다. 

오가 노리오 회장은 CD-ROM이 막 개발되던 시기에 저장 용량에 대한 표준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74분 2초)이 온전히 녹음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한 것으로 도 유명하다. 참고로 교향곡의 경우 지휘자의 곡 해석 여부에 따라 전체 연주 시간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컴퓨터처럼 정확히 매 초 단위를 엄격하게 지키기 보다는 객석의 수준과 반응에 따라 변화를 주기도 하기 때문에 같은 교향곡이라도 지휘자에 역량과 해석에 따라 전체 연주 시간이 최소 몇 초 에서 최대 몇 분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오가 노리오 회장은 소니의 경영진이기 전에 성악가이자 지휘자였기 때문에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제시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연주 시간은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필 하모닉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시간을 기준으로 한 74분 2초였다(사실 CD쓰면서 아무도 안 궁금해 했을 듯).

[오가 노리오]
이미지 – https://www.handelszeitung.ch/unternehmen/vater-der-cd-gestorben#

아마도 거대 가전업체였던 소니 내부적에서는 이처럼 특이한 행적을 지닌 오가 노리오 회장은 내부에서 많은 질시와 견제를 받았을 것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오가 노리오는 자신의 음악가 활동을 겸업하는데 회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병행하겠다는 조건으로 소니에 입사했던 터라 내부에서의 질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가재는 게 편이라고 아마도 오가 노리오 회장 역시 일찍이 문제아 취급 받았던 쿠다라기 켄을 바라보는 심정에는 무언가의 동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한 어른들의 비즈니스에서 단순히 동정심 같은 감정적인 것만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오가 노리오 회장은 자신의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오가 노리오가 소니의 사장으로 취임한 1982년에 이미 소니는 워크맨의 성공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가 되어 있었고 뜻하지 않게 큰 돈의 맛을 본 회사는 점차 타성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경영진들은 예전에 열정 넘치고 의욕에 불타는 도전자가 아니었다. 점점 회사의 매출이 커지고 조직의 규모가 거대화 되면서 회사는 둔해지고 느려지고 있었다. 대기업화 되어 가는 소니에서 오가 노리오 사장은 무언가 혁신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도 미국의 컬럼비아 영화사를 인수하는 등 외부적인 활동을 활발히 벌이며 선전했다.

[COLUMBIA – a Sony Company]

하지만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이미 타성에 젖은 고위급 관료 같았던 경영진들에게 새로운 혁신을 기대하기란 어려웠고 그들은 새로운 사업들의 제안에 시큰둥했다. 이미 돈이 충분히 잘 벌리고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것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에서였지만 오가 노리오 사장에게 이것은 다가올 소니 몰락의 전조와 같아 보였다. 소니 내부에도 무언가 혁신적인 인재가 필요했고 이 때 그의 눈에 들어온 이가 바로 문제아, 이단아 등의 취급을 받던 쿠다라기 켄이었다. 그렇게 오가 노리오는 쿠다라기 켄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소니의 미래 먹거리 중에 하나로 게임사업을 점찍어두고 있었다.

이렇게 오가 노리오 사장의 지원에 힘입어 쿠다라기 켄은 독단으로 결정한 닌텐도 사운드 칩셋 계약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게 된다.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이 출시되자 그들을 두고 저돌적이고 비이성적인 행위라 비난했던 소니 내부의 여론은 잠시 잠잠해졌다. 슈퍼패미컴이 대박 흥행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미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은 당시 하드웨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확대/축소/회전 등의(Mode 7) 기능을 지원하며 총 32,768가지 색상 중에 동시 256색상을 표현할 수 있었고 소니의 DSP를 통한 PCM음원을 통해 미려한 사운드를 제공하는 특장점으로 경쟁자였던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 보다 성능상 높은 점수를 받으며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는 동시표현 색상수나 사운드 면에서 슈퍼패미컴에서 밀리고 있었다. 물론 일본 내에서 시장 판매량도 밀리고 있었다(북미에서는 소닉 더 헤지혹의 인기로 판매량 급증).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이 유명세를 탈수록 사운드 칩셋의 제조사였던 소니의 이름 또한 오르내렸다. 쿠다라기 켄에게는 구사일생의 기회가 된 것이다. 만약 슈퍼패미컴의 판매량 부진으로 게임기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회사의 승인도 없이 독단적인 결정으로 슈퍼패미컴에 납품한 사운드 칩셋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올 것이 뻔했다. 당장에 위기는 넘겼지만 쿠다라기 켄에게는 새로운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로 게임기 자체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단순히 칩셋 하나 부품 공급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고 전체적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게임기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쿠다라기 켄은 다시 닌텐도를 찾아갔다.

닌텐도는 이미 차세대 게임기 사업에 대한 구상이 진행 중이었고 쿠다라기 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닌텐도를 들락날락했다. 이렇게 쿠다라기 켄의 끈질긴 노력 끝에 닌텐도와 소니는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에 소니의 CD-ROM 기술을 합쳐 슈퍼패미컴 애드온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이 때 붙여진 프로젝트 코드명이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쿠다라기 켄은 닌텐도가 게임기 시장에서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소니도 언젠가는 게임기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의 소니는 AV(Audio/Video)시장에서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글로벌 기업이었다. 당시 소니의 경영진은 이미 워크맨이라는 세기의 물건을 개발하고 전 세계를 소니의 이름으로 물들인 성공의 신화를 쓴 주역들이었지만 게임기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쿠다라기 켄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게임 사업에는 일체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쿠다라기 켄의 게임 사업에 대한 열정은 곧 사내에서 이단아로 불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계속 된 경영진과의 마찰로 퇴사 압력을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소니의 회장이었던 오가 노리오 회장의 특명으로 쿠다라기 켄이 총 사업을 지휘할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렇게 야심차게 출발한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는 회사 내부에서 ‘PS-X(플레이스테이션-X)’라는 프로젝트명으로 불렸다. 그리고 추가로 필요한 핵심인재들은 발굴하기 위해 사내모집의 방식으로 지원자를 모집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지원자는 단 3명 밖에 없었을 정도로 지원자를 구하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소니 내부에서도 대놓고 ‘이단아’ 또는 ‘정신 나간 놈’ 취급 받는 쿠다라기 켄의 줄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원으로서 목숨을 거는 행위였다.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회사 내부 고위층에서 이단아 취급 받는 쿠다라기 켄인데 그 밑에서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장담하기 힘든데다가 일이 잘 안 됐을 경우에는 생각하기에도 끔찍했을 것이다. 중간관리자들은 자신들의 윗 선에서 쿠다라기 켄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을 야생의 본능으로 눈치 챘기 때문에 절대 자신들의 팀원이 PS-X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팀원이 눈엣가시 같은 쿠다라기 켄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상사 눈 밖에 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쿠다라기 켄이 진행하는 PS-X 프로젝트에서 채택한 차세대 저장장치 CD-ROM 역시 당시 소니 내부에서는 CD-i와 CD-ROM 중에 어떤 것을 표준으로 정할 것인지 사업부간에 정치싸움이 벌어지던 때였다. 즉, 무엇 하나 확실히 정해진 것도 없었고 누구 하나 확신을 가진 자가 없었다. 그렇게 플레이스테이션의 위태위태한 첫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닌텐도와 함께 만들기로 했던 플레이스테이션은 무산됐다. 양 사간의 저장장치 라이선스를 두고 치열한 공방 끝에 그 동안 시장이 겹치지 않아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었던 사이에서 시장이 겹치게 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결국 닌텐도가 소니와의 계약을 진행할 의사가 없음을 통보하게 된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닌텐도는 소니의 숙적과도 같았던 네덜란드 필립스와 CD-i 규격을 협상하기로 하면서 소니와 닌텐도의 다시는되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이제 둘 사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원수이자 적대관계로 변하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해 오가 노리오 회장은 닌텐도에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보일 정도로 대노했다. 

그리고 1992년 6월 24일 역사적인 날이 시작되었다. 이 날은 소니의 경영진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도쿄에 위치한 소니의 본사 회의실에서 열리는 이 회의는 당시 소니의 사장이었던 오가 노리오와 고위급 경영진들이 참석하는 최고의사결정 회의였다. 회의 주제는 당연히 닌텐도의 배신행위에 대한 소니의 대응에 대한 문제였고 그 배신에 동조한 내부의 숙적으로는 쿠다라기 켄이 지명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글쓴이=김대홍 schnauf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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