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e스포츠가 ‘게임 대회’라는 틀을 넘어 국제 스포츠 무대와 제도권 문화로 깊숙이 편입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제도권 스포츠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다양한 분야의 혁신을 통해 성숙한 환경을 구축한 해로 평가할 수 있다.
국제 기구와의 연대, 리그 구조 재편, 팀 재정 건전화, 기술 혁신 및 미디어 전략 변화, 공정한 문화 조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발전상을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e스포츠를 둘러싼 담론이 폭넓게 전개됐고, 각종 이해 관계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제도, 기술, 문화 전반에서 한 단계 성숙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 IOC와 국제e스포츠 연맹 교류 본격화, 공동발전 모델 모색
먼저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국제 스포츠 기구와의 연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e스포츠연맹(IESF) 간의 교류가 본격화되며, 전통 스포츠 무대와 e스포츠가 단순히 공존하는 단계를 넘어 상호 협력과 공동 발전 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파리올림픽 전후로 진행된 e스포츠 시범 대회는, 향후 e스포츠의 제도권 편입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시발점이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한국, 중국, 미국 등 전통적인 e스포츠 강국들은 선수 라이선스 제도 정비, 프로 리그 기준 강화 등을 통해 국가 차원의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e스포츠 관련 연간 보고서나 각국 e스포츠 협회 발표 자료를 살펴보면, 선수 복지나 표준계약서 도입 같은 실질적인 변화들이 제도화 과정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리그 운영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재편과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라이엇 게임즈의 LoL e스포츠는 국제 대회 포맷을 재정비하고, 시즌 중간 컵대회를 도입하는 등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보여줬다.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팬층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팀 단위 게임뿐 아니라 ‘발로란트’나 격투 게임 분야 등 신흥 종목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격투 게임 장르는 캡콤, 반다이남코 등 대형 퍼블리셔 주도로 글로벌 대회가 확대되었고, 모바일 e스포츠 리그는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며 시장 다변화에 성공했다.
■ ‘지속 가능한 커리어 구축할 프로페셔널’ 선수상 재정립
팀과 선수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2022~2023년을 거치며 거품 논란과 재정 압박을 겪은 e스포츠 팀들은 이제 안정적인 스폰서십 구축, 구독형 콘텐츠 서비스, NFT 및 메타버스 플랫폼 등을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관련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 파트너십 전략과 선수 육성 프로그램 강화, 심리 상담 및 생애주기 관리 같은 복지 투자 확대가 팀 운영의 새로운 지향점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기에 잘 임하는 선수’를 넘어 ‘지속 가능한 커리어를 구축하는 프로페셔널’로서 선수상을 재정립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및 기술 혁신 역시 눈부시다. 4K, HDR급 고화질 스트리밍 등 팬 경험의 질이 크게 높아졌으며,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경기 콘텐츠 유통이 활발히 이뤄졌다. 스트리밍 플랫폼뿐 아니라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영상 콘텐츠가 팬 유입의 새로운 관문으로 각광받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한 해였다.
특히 AI 기반 전략 분석, 빅데이터를 통한 밴픽 패턴 파악, 코치진의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 기술적 토대가 점점 더 경기 현장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아울러 공정성과 지속 가능한 문화 형성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반칙과 불법 프로그램 사용 문제는 여전히 숙제지만, 빅데이터 기반 부정행위 감지 시스템이나 선수 보호 정책은 업계 차원의 자정 작용을 강화하고 있다.
청소년 선수 보호, 성차별·혐오 문제 대응, 심리적 번아웃 관리 등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과제로 자리 잡았고, 이는 점차 명확한 가이드라인, 규정 강화, 처벌 제도를 통해 개선되는 추세다. 이는 단순히 경기력 향상이 아닌, 산업 생태계 전반의 건강성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건임을 지난 1년간의 흐름이 입증했다.
■ 2025년도 e스포츠 소년체전 시범종목 지정 큰 의미
마지막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의미있는 이슈는 2025년도 e스포츠 소년체전 시범종목 지정이다. 2025년도부터 소년체전에 e스포츠가 종목으로 포함된다는 것은, 선수들이 체계화된 시스템 내에서 보호 받을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과거 동네 PC방에서 꿈꾸던 게임 속 승리는 이제 국가 공인 무대에서 기량을 검증받을 수 있는 경로가 열렸다. 이는 게임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게임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진로’로서 e스포츠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e스포츠의 소년체전 도입을 단순히 ‘도약의 기회’로만 보기는 어렵다. 청소년 선수들의 학업·생활 균형, 장기적인 커리어 관리, 청소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건강 문제, 심리적 스트레스 관리 등은 제도권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또한 특정 게임 타이틀을 둘러싼 사행성 우려나, 게임 밸런스 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정성 이슈, 반칙 및 편법 행위 대응 등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에 따라 소년체전 내 e스포츠 종목 운영 지침은 기존 스포츠 종목보다 더 정교하고 면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청소년 선수 선발 기준과, 교육 프로그램 선정, 훈련 방식에 대한 명확한 규정, 전문 코칭스태프와 심리상담사 배치,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 등이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히 ‘게임 잘하는 아이를 뽑아 메달을 준다’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e스포츠를 즐기고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2024년 e스포츠는 e스포츠는 더 이상 마니아적인 문화 콘텐츠가 아닌, 세계 스포츠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할 토대를 닦아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토대 위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을 쌓아나가느냐이며, 그 귀추는 2025년 이후의 e스포츠 시장 변동과 산업 생태계 진화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동양대학교 공전영 e스포츠학과 교수는?
공전영 교수는 e스포츠학과 책임교수이자 e스포츠사업단장이다. 2000년대 초반에 레인보우식스, 카운터스트라이크 선수를 활약했다. e스포츠 교육 및 문화콘텐츠 연구 분야에서 폭넓은 학문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전문가다.
e스포츠 교육의 표준화, e스포츠 문화 연구, 문화콘텐츠 학제간 연구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학문적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또한 산업체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현장 적용 가능한 교육 모델들을 개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