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친 패러다임 시프트 주역로 평가받는다. 전반적인 사회 분야에서 점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임 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 분야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임팩트가 다소 부족했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Chat GPT'와 이미지 생성 기능 '스테이블디퓨젼'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대중의 뇌리에 AI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해당 기술들은 AI가 패러다임 시프트를 이뤄낼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보여줬다"라며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 대화 AI 기능은 상업화 모델이 올해 많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AI가 게임 분야에서 변화가 느린 편이라고 설명했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게임 AI는 오히려 한국이 글로벌을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AI를 게임에 적극 반영하기엔 허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 비용의 문제를 들었다. 현재 게임들은 CPU를 기반으로 작동된다. AI 기반 게임을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GPU를 사용해야 한다. 연산 작업이 패턴화로 이뤄진 현재 구조보다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게임은 서버 비용을 꽤 많이 지불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GPU로 바꾸게 된다면 비용이 약 10배 가까히 증가한다. 이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인 난관으로 인해 게임 AI를 당장 투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와 별개로 게임 AI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대중들도 이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AI의 게임 능력은 지난 2016년 진행된 구글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AI의 게임 능력이 본격적으로 조명 받았다.
당시 대국은 AI 기술이 전문가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는 것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때를 기점으로 국내 게임업계의 AI 연구는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게임에서도 다방면으로 AI가 활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며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게임 AI가 어떤 역할을 할 있고 어느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대중들은 관심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남녀노소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바로 "AI가 프로게이머를 이길 수 있을까"이다. "포켓몬과 디지몬이 싸우면 누가 이기냐" 등 다소 유치하지만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기 마련이다.
■ 보상 구조에 따른 게임 AI 개발 난이도
AI에서 게임은 바둑보다 훨씬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졌다. 바둑은 바둑판이란 제한된 공간에서 치뤄진다. 반면, 게임은 전장의 안개로 인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다. 불완전한 정보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보상 구조가 어려운 게임일수록 AI의 학습 속도는 더뎌진다. 일례로 딥마인드가 알파고 이전에 AI 학습을 했을 당시 벽돌깨기를 진행했다. 벽돌깨기는 "벽돌을 많이 깨면 더 높은 점수를 올릴 수 있다"는 직관적인 보상 구조를 가졌다. 그렇기에 "벽돌을 많이 깰 수 있는 방법"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학습하기 쉽다.
반면 현재 행동이 당장의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임은 피드백 과정이 복잡하다. 넥슨 인텔리전스랩스의 장창완 실장은 어드벤처 게임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어드벤처 게임은 어느 방에 가서 열쇠를 얻고 그 열쇠로 어떤 퍼즐을 풀어야만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는 구조"라며 "순간마다 자신이 최적의 플레이를 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상황마다 변수가 많은 게임일수록 학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상 구조가 복잡한 RTS, AOS 장르에서도 AI가 프로게이머를 이기는 시대가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각각 엔씨소프트의 액션RPG '블레이드 앤 소울'의 '비무'와 밸브의 AOS '도타2'의 '오픈AI'가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승리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스타' 역시 스타크래프트2 프로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게임 AI가 MMORPG의 PvP, AOS, RTS 장르를 하나씩 정복해나갔다. 국내 게이머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국내 최고의 인기 e스포츠인 라이엇게임즈의 AOS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롤판의 상징적인 선수이자 'GOAT'로 평가받는 '페이커' 이상혁 선수를 이길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 현재 게임 AI는 '페이커'를 이길 수 있을까?
전문가 의견은 "현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과 "데이터를 제공받지 않고 학습한다면 쉽지 않다"라는 입장으로 갈린다. 페이커의 손을 든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사례들이 게임 소스와 데이터를 모두 오픈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소개한 비무와 오픈AI는 공개된 게임 데이터를 바탕으로 초기 학습을 시작했다. 이후 강화 학습을 통해 셀프 대전을 이어갔다. 대전을 거듭하며 스스로 새로운 전략과 수를 배워나갔고 기존 강자를 뛰어넘는데 성공한다.
알파스타도 마찬가지다. 알파스타는 개발사 블리자드가 공개한 기존 플레이어들의 게임 기록을 바탕으로 학습했다. 이를 통해 알파스타는 각 유닛의 활용 방법 등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스스로를 상대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자체적으로 강화해나갔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현재는 경기 시청만으로 AI가 학습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MMORPG나 AOS 장르는 맵, 패턴 같은 것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 양이 방대하다. 그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이를 화면만 보며 학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넥슨 인텔리전스랩스의 김보람 실장 역시 "게임 장르별로 다를 수 있지만 오픈 데이터가 없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아직 불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페이커를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되는데 기술이 해당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카드 게임처럼 턴 방식 게임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현재 AI가 게임 데이터만 있다면 페이커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로 예상된다. 다만, 데이터 없이 스스로 학습하여 이기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 게임 AI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미'
전문가들은 단순히 실력이 뛰어난 AI를 만드는 것이 목표는 아니라고 밝혔다. 바로 실용성의 문제다. 넥슨 김 실장은 "게임 AI를 못 만드는 건지 안 만드는 건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실력이 뛰어난 AI를 만들어 그 AI가 모든 유저를 다 압승해버리는 것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라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유저를 재밌게 만드는 AI다"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단순히 이기는 것보단 비등비등하게 겨루가다가 승패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정말 어려운 기술"이라고 말했다.
게임의 본질이 즐거움인 만큼 게임 AI 역시 '재미'의 요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단순히 현존 최고의 선수마저 꺾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현재 게임사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다.
딥마인드의 알파스타도 게임 실력과는 별개로 보는 사람을 흥미롭게 만드는 재미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알파스타는 정찰을 통해 얻는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어떤 유닛을 생산할지,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각 순간마다 승리할 확률이 높은 행동을 채택했다.
하지만 RTS 장르의 핵심인 전술보다는 유닛 조작에 의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알파스타의 분당행동수(APM)는 1500 이상까지 치솟았다. 프로게이머의 평균 APM이 300~400 정도임을 감안하면 거의 4배 이상의 차이다.
알파스타는 운영보다는 교전 위주의 유닛 컨트롤 대결로 승부를 걸어왔다. 최고의 승률을 계산하여 실행하는 AI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이후 APM을 제한하여 진행한 경기에서도 소수 유닛 교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현재 게임 AI 개발에 놓인 과제는 사실 "페이커를 이길 수 있는가"보단 "페이커도 게임 AI와의 대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가"이다. '게임' AI인 만큼 유저에게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임 AI는 상호작용을 중점으로 혼자서도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발전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 게이머부터 페이커와 같은 초고수까지 게임 AI와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