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간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활약해 온 지우의 은퇴 소식에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겠다며 태초 마을을 떠난 소년이 기어코 거머쥔 영광을 축하함과 동시에, 신 시리즈와 그 주인공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죠.
그러나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지켜봐 온 오랜 팬들의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포켓몬스터 W의 더블 주인공 고우에 대한 제작진의 과한 편애와 서사 몰아주기로 지우는 시리즈 진행 내내 찬밥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고우와 지우처럼 신규 캐릭터 푸시를 위해 기존 캐릭터를 소비하는 일 자체는 드물지 않습니다. 문제는 고우의 캐릭터성이었죠. 자신을 구해준 포켓몬도 포켓몬이니 포획하겠다는 '사이코패스 밀렵꾼'에게 정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시청자들은 근본 주인공 지우를 외면하고 비호감 캐릭터를 차기 주인공으로 밀어주는 듯한 제작진의 행보에 거부감을 느꼈죠.
엉망진창 작화 퀄리티, 각 지방 챔피언 간 파워 밸런스 붕괴 등 지우 중심 에피소드인 월드 챔피언십 진행 중에도 여러 잡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우는 소위 말하는 '아름다운 이별', 레전드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듯 은퇴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노려라 포켓몬 마스터' 특별 에피소드 방영이 예고되었음에도 포켓몬 팬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떠나게 됐으니, 최종장에서나마 제대로 주인공 대우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죠.
근본을 잃어버려 실망한 팬들을 달래듯 노려라 포켓몬 마스터는 '지우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마무리한다'라는 목적에 충실합니다.
제목 값을 하듯 오프닝 곡은 물론 포켓몬스터 무인 편을 오프닝에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그간 여행을 통해 만난 소중한 친구들과 추억이 담긴 스냅샷, 지우가 만났던 여러 지방의 다양한 포켓몬들을 흘러가듯 보여줍니다. 결국 꿈꾸던 포켓몬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지우의 모습으로 마무리하죠.
전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지우 엄마와 오 박사의 환담은 극장판 2기 '루기아의 역습'에 등장했던 장면 진행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무인 편에서 항상 지우 일행을 위협했던 무시무시한 독침붕과도 화해에 성공하죠.
무인 편 코리갑, 3세대 나무킹, 4세대 브이젤, 6세대 음번 등 전 시리즈에서 활약했던 지우의 포켓몬들도 등장합니다. 포켓몬들의 근황을 알고 싶어 한 팬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긁어줬죠. 특히 코리갑의 코를 끌어안고 웃는 피카츄의 모습을 보면, 진화 전부터 사이가 좋았던 둘이 생각나 절로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반가운 손님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극장판 5기 '물의 도시의 수호신 라티아스와 라티오스'의 지우 바라기 라티아스도 등장합니다. 당시 지우를 좋아하는 포켓몬으로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줬었죠. 이번에는 물에 빠진 지우를 구해줬던 극장판에서 첫 만남과 달리 다친 라티아스를 지우가 구해냅니다.
빠지면 서운한 로켓단도 등장하죠. 두 발로 걷는 나옹과 마자용을 비롯한 익숙한 멤버들입니다. 지우가 라티아스를 치료하는 것을 목격하고 냉각 장치가 달린 포획기로 라티아스를 노립니다. 드래곤 타입의 약점을 노린 악랄한 전략이었죠.
라티아스를 구하려다 함께 냉각 장치에 갇힌 지우는 피카츄에게 10만 볼트를 지시합니다. 이제는 10만 볼트에 직격해도 끄덕 없는 것을 보니 정말 지우가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로켓단은 약속된 전개대로 별이 되고, 라티아스와 지우는 무사히 풀려나 인사를 나눈 뒤 헤어집니다.
25년 간 이어졌던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최종장이라 그런지 정말 다양한 지방의 포켓몬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전 시리즈에서 지우와 함께 모험했던 포켓몬들이 등장해 많은 팬들이 반가워했습니다. 소울 메이트 피카츄를 제외한 지우의 엔트리는 매 화 달라질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엔 어떤 포켓몬과 재회할지 기대하는 재미도 있겠네요.
이제는 포켓몬 마스터가 아닌, 포켓몬과 친구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도 마음에 들었어요. 고우만 빠졌을 뿐인데 스토리 퀄리티가 수직 상승한 것이 체감됩니다. 더블 주인공 체제가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지만, 시선이 분산되면 몰입에도 방해가 될 수밖에 없죠.
1화만 방영됐을 뿐이지만, 이대로 진행된다면 노려라 포켓몬 마스터는 팬들의 노스탤지어를 충족시키며 긴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팬들도 "왜 이렇게 할 수 있으면서 진작 그러지 않았냐"라며 아쉬워 할 지언정 최종장 에피소드 자체는 만족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이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할지라도, 끝이 좋으면 그나마 좋게 기억되기 마련이니까요. 그간 고생한 지우의 라스트 댄스가 부디 아름답게 끝맺을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