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문화 토론회’ 각계 전문가들 “게임 질병화 문제점 많아”

게임중독으로 인한 장애를 공식적인 질병으로 분류하겠다는 WHO(세계보건기구)의 움직임에 각계 전문가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WHO는 오는 5월 예정한 국제질병분류기호(ICD)-11 개정에서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ICD-11에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되면 한국도 통계청과 보건복지부가 이를 받아들여 따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고 연구가 부실하며, 단지 게임을 즐긴다는 이유로 엉뚱한 환자들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9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는 WHO의 게임 질병코드 이슈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 장애에 대해 진행된 연구들의 단점이 너무 많고, 체계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그 동안의 연구들이 다 단면적인 연구라는 점”이라며 “최소한 6~7개의 그룹들을 수년간 비교하고 살펴봐야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존질환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 교수는 “게임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의 75%는 우울증, 57%는 불안장애, 60%는 강박증, 100% ADHD”라면서 “그렇다면 순수한 게임 장애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 “(게임 장애에 대한) 진단 기준을 한번 만들어보고, 그 후 반응을 보자라는 방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재 ‘게임 장애’에는 중독의 핵심 증상인 ‘금단’과 ‘내성’이 빠져 있다”고며 “ICD는 카테고리가 중요한데, ‘게임 장애’는 어느 카테고리에 들어갈지 정해지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진단 기준이 허술하게 만들어지면 치료의 효과는 물론,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기 힘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게임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미디어의 시각을 짚었다. “1800년대 초반에는 로맨스소설, 선정적인 소설이 인기를 끌자 신문은 연일 이를 비판했다”며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도 ‘나쁜’, ‘폭력’, ‘저질’ 등 부정적인 어휘로 TV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 모두 상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인데, 게임은 유독 제발 현실 세계로 돌아오라고 이야기를 한다”며 “게임은 책, 연극, 영화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야 하고, 예술 창조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한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요즘 아이들은 게임하는 시간보다 유튜브 시청시간이 더 많다”며 “장난스럽게 예언하자면, 몇 년 후에는 지금 게임이 먹는 욕을 유튜브가 더 먹을 것이고 유튜브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게임 장애라는 주장은 온라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양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게임장애가 질병으로 공식화 될 경우 상당히 많은 혼란과 문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들의 경우, 게임이 아주 매력적인 병역면탈의 방법이 될 것”이라며 “2년 동안 군대에 가는 것보다 PC방에서 1년 동안 살면 병역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술처럼 범죄를 저지른 후 양형을 받기 위한 핑계로 게임을 들 수 있다는 점도 거론했다. 이 소장은 “예를 들어 성범죄자가 판사 앞에서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중독’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범죄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양형을 받아 빠져나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정신 장애는 한번 진단이 내려지면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며 “한번 진단이 내려지면 평생 따라다니고, 과도한 사회적 비용과 의료비 지출,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장애를 주장하는 분들이 청소년을 걱정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면서도 “의도가 좋다고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며, 사회적인 효과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부에서는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경란 동의대 디지털콘텐츠공학과 교수, 김봉석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교수, 유원준 앨리스온 디렉터가 참여하는 종합 토론이 펼쳐졌다.

좌장을 맡은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WHO의 ‘게임 장애’ 질병 분류를 추진하는 세력들이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10월 WHO 컨퍼런스가 서울에서 열리는데, 올해 한국에서 확실하게 이 이슈를 굳히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과거 보건복지부가 100억 원짜리 게임 중독 연구를 준비하는 동안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며 “이를 추진하는 세력은 ‘4대 중독법’ 입법화 실패 이후 상당히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위 학회장은 “4대 중독법이 저지가 되니 WHO라는 외세를 등에 얹고 과거 나당연합군처럼 상륙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게임 중독이나 장애 연구가 의사들의 순수한 선의라고 생각하면, 순서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연구도 복지부 예산을 받아서 데이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WHO가 게임 장애를 질병코드로 분류하면 한국에서는 입법을 통해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이후 게임회사들의 매출 일부분을 모아 기금을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 현직 게임 개발자들이 많이 모르고 있다”며 “순식간에 마약 생산자로 몰릴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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