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게이머에게 행복한 해였다.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 발더스 게이트3 등 수많은 대작이 쏟아졌다. 메타크리틱 90점 이상 받은 게임이 무려 25개에 달했다. 올해 초 출시된 게임들도 만만치 않다. 팰월드부터 철권8, 용과 같이8 등 걸출한 신작들이 앞다퉈 경쟁을 벌였다.
이제 질세라 국내 게임 업계도 지난 과오를 발판 삼아 나아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특정 플랫폼과 장르에 편향된 게임이 아닌 전 세계 게이머들이 주목할 만한 게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결과 지난해 꽤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넥슨 민트로켓이 개발한 '데이브 더 다이버'와 네오위즈가 만든 소울라이크 'P의 거짓'이 글로벌 유명 게임 시상식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이제서야 걸음마를 뗀 한국 게임이 GOTY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데이브 더 다이버와 P의 거짓 모두 국내외 게이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발더스 게이트3,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 같은 '갓겜'과 자웅을 겨루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GOTY를 수상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까. 국내 게임도 GOTY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초심으로 돌아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혁신을 꿈꾼다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숭실대학교 이재홍 교수는 "한국 게임 산업의 생태가 다소 어려운 환경이지만, 지금이 변화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임인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게임 시대를 열 수 있는 혁신을 꿈꾼다면 가능하다"고 전했다.
■ GOTY란 무엇인가?
GOTY는 Game Of The Year의 약자로 직역하면 '올해의 게임'이다. 전 세계 유명 게임 매체와 리뷰어들이 한 해에 출시된 게임들 중 가장 뛰어난 게임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많은 게이머들이 오해 또는 혼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 설명하면 GOTY는 보통명사다. 즉, 노벨상이나 아카데미 상처럼 특정 단체가 수여하는 단일 상이 아닌 각각의 시상식 또는 매체에서 선정하는 상이다.
특히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최다 고티'라는 평가 기준이 쓰이거나 최다 고티를 받은 게임이 최종적으로 올해의 게임에 선정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다 고티는 'Game Of The Year Picks Blog'라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한 유저가 전 세계 GOTY를 집계하면서 생겨난 문화다. 어디까지나 정보 제공을 위해 개인이 집계한 자료일 뿐이며, 공신력이 없기 때문에 공식 자료로 쓰이지 않는다.
GOTY를 선정하는 매체는 전 세계 수백 개에 달한다. 취미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는 게이머도 GOTY 선정이 가능하다. 전 세계 게이머들이 꼽는 대표적인 주요 GOTY는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 BAFTA, D.I.C.E 어워드, GDC 어워드, 더 게임 어워드까지 총 5곳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흔히 5대 게임 시상식이라고 불린다.
골든 조이스틱 어워드는 1983년 영국의 게임 월간지 Computer & Video Games가 주최한 게임 시상식이다. 2015년부터 해외 웹진 'GamesRader'로 이관돼 시상식을 진행했다. GamesRadar를 포함한 소수 언론이 후보작을 선정하며, 네티즌들의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BAFTA는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의 약자다. 영화, TV 프로그램, 게임 등 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시상식을 주최한다. 게임 개발 및 유통에 종사하는 인원 중 나이와 경력, 업적 등을 고려해 소수의 심사위원을 선정한다. 후보작과 수상작은 비밀 투표로 진행되며, 해당 과정은 회계법인의 인증을 거친다.
D.I.C.E 어워드는 AIAS(상호예술과학원) 회원 중에서 선정된 패널이 후보작을 뽑고, 회원 전체 투표로 수상작을 결정한다. AIAS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회원사로 가입된 기업의 직원이거나 게임 개발에 2년 이상 종사하면서 1개 이상의 상업적 결과물을 내야 하기 때문에 권위가 높고, 전문성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GDC 어워드는 게임 개발자 회의(Game Developers Conferenced)에서 매년 진행하는 시상식이다. 주최 측인 가마수트라 편집진의 투표로 후보작이 선정되며, 수상작은 회원의 투표로만 결정된다. 비영리이며 오직 개발자 협회 회원들의 투표로만 이뤄져 공정함을 높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더 게임 어워드는 캐나다의 게임 저널리스트 제프 케일리가 주최하는 시상식이다. IGN, 게임스팟 등 전 세계 유명 게임 매체가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수상작은 심사위원과 인터넷 투표로 결정된다.
■ 역대 GOTY 수상작에서 보이는 공통점
역대 GOTY 수상작의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GOTY는 누구나 선정할 수 있다. A라는 게임이 그 해에 게이머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개인 또는 단체의 평가 기준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연도별 대표 수상작을 꼽는 것이 불가능하다.
5대 게임 시상식으로 범위를 좁혀도 마찬가지다. 2008년에는 슈퍼 마리오 Wii 갤럭시 어드벤처, 리틀빅플래닛, 폴아웃3, 콜 오브 듀티4: 모던 워페어, GTA4가 GOTY에 선정됐다. 각 시상식 모두 서로 다른 게임을 선정한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GOTY 5관왕을 차지한 게임은 없다. 하프라이프2,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더 위처3: 와일드 헌트, 매스 이펙트2와 같은 명작 게임들도 3관왕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각종 매체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갓 오브 워, 엘든링도 4관왕에 그쳤다.
인게임 요소를 살펴보면 어떨까.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더 게임 어워드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최근 6년간 GOTY에 선정된 게임은 발더스 게이트3, 엘든링, 잇 테이크 투,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갓 오브 워다.
장르와 게임성, 지향하는 플레이 경험 등이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독특한 세계관과 깊이 있는 서사, 내러티브로 높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갓 오브 워는 마치 긴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스토리로 시작부터 엔딩까지 몰입감을 유지해 극찬을 받은 게임이다.
엘든링과 세키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한다. 게임을 플레이해 보면 단순히 보스를 쓰러트리는 방식으로는 명확하게 스토리를 파악하기 힘들다. 일부 컷신과 등장인물들의 대사, 사이드 퀘스트, 아이템 설정 등을 종합해 유추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스토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스토리를 전달해 해석의 자유를 주고, 매력적인 세계관으로 탐구의 욕구를 자극한다. 실제로 프롬소프트웨어 게임 팬들은 "프롬 뇌 돌린다"라고 표현하며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스토리 토론을 이어가기도 한다.
지난해 GOTY를 받은 발더스 게이트3도 마찬가지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주요 퀘스트나 서브 퀘스트로 다양한 캐릭터들과 상호 작용하고 각 캐릭터들의 과거와 목표, 스토리 탐구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전투, 콘텐츠, 음악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게임을 이루는 요소 전반이 유기적으로 결합됐을 때 비로소 게이머들이 최고의 경험을 느낄 확률이 높은 것은 확실하다.
장르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GOTY를 수상한 게임들을 살펴보면 액션, RPG, FPS, 어드벤처와 같은 메이저 장르가 GOTY를 받았다. 간혹 언타이틀드 구스 게임, 인스크립션 같은 마이너 장르 게임이 선정되는 경우도 있으나 극히 일부다. 대부분 게이머들에게 친숙한 장르가 GOTY를 치자한다.
■ GOTY를 받으려면 이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GOTY를 받기 위해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대중적인 장르, 전투, 음악, 콘솔 플랫폼 등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요소들을 기반으로 재밌는 게임을 만들면 수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해당 요소들은 한국 게임 시장과 거리가 멀다. 한국 게임 시장은 온라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MMORPG, FPS, 어드벤처 장르 위주로 성장했다. 깊은 스토리텔링보다는 캐릭터 육성과 파밍, 유저 간의 경쟁을 종용하는 게임이 대부분이다.
온라인 서비스 게임은 콘솔 게임에 비해 GOTY 수상에 불리하다. 수년간의 업데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쌓아나가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해 최고의 게임을 뽑는 것이 GOTY인데, 이미 게임을 어느 정도 완성해 출시하는 콘솔 게임과 비교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되돌려서 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한국 게임 시장을 기억해 보면 우리나라도 패키지 게임이 주를 이루던 시기가 있다. 마트에 가면 게임 CD나 팩을 흔하게 구매할 수 있었고 심지어 서점에서도 게임 CD를 판매했다.
지금처럼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외국은 동일한 환경에서 콘솔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반면, 국내는 온라인 게임이 득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해야 할 게임을 불법 복제판으로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기술이 발전하고 게이머들의 인식이 개선돼 게임을 돈 주고 구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지만, 당시에는 불법 복제 및 다운로드에 대한 게이머들의 인식이 낮았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게임이 비정상적인 루트로 유통돼 매출이 발생하지 않으니 온라인 게임 시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국내 콘솔 및 패키지 게임 시장이 후퇴한 것이 비단 불법 다운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후 과하게 매출을 쫓는 과금 모델과 게임성도 분명히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법 복제와 저작권 개념 미비로 인한 시장 발전 실패가 문제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게임 강국이라고 불리던 지난날의 영광은 자연스럽게 흘러간 국내 시장 환경과 콘솔 시장에 대한 무관심으로 점철돼 빛을 잃었다. 결코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노하우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한국 게임 시장도 글로벌 게임사들과 견줄만한 실력이 있다.
이재홍 숭실대 교수는 "콘솔 게임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게임 개발 기술과 제작 완성도, 게임 서비스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 그랬을 때, GOTY 후보작도 나올 수 있고 수상도 가능하다. 30여 년간 달궈 온 한국 게임산업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고퀄리티 게임을 개발할 능력이 충분하다. 그동안 콘솔 글로벌 시장에 대한 무관심이 있었을 뿐이다"고 전했다.
다행히 국내 게임 시장도 글로벌 콘솔 시장 도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P의 거짓과 데이브 더 다이브를 발판 삼아 스텔라 블레이드, 붉은사막 등 트리플 A급 콘솔 게임들이 출격 대기 중이다.
- 엔픽셀이 개발하는 크로노 오디세이 트레일가 조회수 355만, 댓글 6600개가 달리며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게임사에서 인조이, 크로노 오디세이, 아크 레이더스, 아라드 크로니클: 카잔 등 GOTY 수상작 부럽지 않은 고퀄리티 게임들도 개발 중이다. 해당 게임들의 트레일러 영상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릴 만큼 글로벌 유저들의 관심도 매우 높다.
앞서 GOTY와 관련된 내용을 길게 설명했으나 요약하면 결국 높은 완성도와 완성도를 뒷받침해 줄 인게임 요소들이 가장 중요하다. 전 세계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향후 게임 개발에 영향을 미치거나 게임 산업의 트렌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