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아블로 이모탈 공식 트레일러
"모바일로 즐길 수 있는 '디아블로'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2018 블리즈컨 무대에 올라온 와이어트 챙이 관객들에게 건넨 질문. 그리고 관객들은 대답은 어떤 환호성, 야유도 없는 '고요함'으로 답했습니다. 수많은 게이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 최고의 게임 행사장에 기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상황은 블리자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건이었죠.
'디아블로3: 영혼을 거두는 자'가 출시된 지 약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확장팩 혹은 '디아블로4' 등 정식 넘버링 소식을 기대했거든요. 당시 글로벌 게임 시장에선 모바일 게임에 대한 시선도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랑받았던 디아블로 IP가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된다는 소식은 팬들 입장에서 당연히 수용하기 어려웠죠.
다행히 2019 블리즈컨 시연 무대에 오른 이 게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연자들 모두 "막상 해보니까 괜찮은데?", "잘 보완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모바일인데 불편하지 않아", "역시 블리자드인가?" 등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죠.
블리자드는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수차례 테스트로 피드백을 받고 적절하게 반영하면서 보완한 결과 2021~2022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로 거듭났죠.
그 주인공이 완전체로 지난 6월 3일 게이머들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저들이 질문하죠. "그래서 완성된 모습은 어떤데?" 이 질문의 답을 알아보기 위해 디아블로 IP를 모바일 MMORPG로 재해석한 블리자드의 첫 모바일 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을 직접 즐겨봤습니다.
■ 디아블로 분위기만은 "제대로"
디아블로 시리즈는 호러 장르의 으스스한 배경과 고어(gore)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게임 그래픽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공포 게임이 수없이 등장하면서 공포감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편이지만, 디아블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다크 판타지 분위기는 여전히 존재하죠.
디아블로 이모탈를 처음 접한 순간 BGM부터 필드 분위기까지 "아! 디아블로 게임이네"라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스킬과 몬스터들의 익숙한 효과음이 그 향수를 더욱더 자극했죠.
스토리도 디아블로2와 3 사이의 내용을 다룬 만큼 원작 팬 입장에서 흥미를 유발하는 포인트였습니다. 디아블로 시리즈가 글로벌 인기 IP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 넘치는 서사'였으니까요.
물론, 출시 전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사실 디아블로3 이후 풀어내야 할 복선은 많지만 디아블로2와 3 사이에서의 복선은 거의 다 해결된 상태였거든요. 그나마 디아블로3 네팔렘들의 성장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내지 않았다는 정도가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스토리는 티리엘로 인해 타락한 세계석이 파괴됐지만 그 파편이 성역에 떨어졌고 디아블로의 부관 '스카른'이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주군을 부활시키려는 내용을 중심으로 방대하게 풀어나가는데요.
결과적으로 천사들과 함께 스카른을 처치해 그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디아블로의 영혼이 성역으로 돌아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 완전한 부활이 아닌 만큼 누군가에 의해 아니면 반지의 제왕 '사우론'처럼 영혼으로 남아 심복들을 조종해 부활을 꿈꾸는 디아블로의 계획을 막아내는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죠.
사실 기존작들과 설정이 다른 내용을 중간에 끼워 넣으면 오히려 몰입감이 떨어지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출시 전에는 기대감보다 우려가 많았어요. 그러나 전작들의 세계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내용이 추가된 모습은 우려를 기대감으로 전환하는 매개체가 됐고 디아블로 팬으로서 충분히 만족하는 포인트였습니다.
■ 정식 넘버링 감성 "글쎄"
디아블로 이모탈에서 디아블로 정식 넘버링 시리즈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100% "NO"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와 감성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거든요.
이것을 긍정·부정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기존 디아블로 정식 넘버링 시리즈들은 핵앤슬래시를 표방한 액션 RPG였던 반면, 디아블로 이모탈은 MMORPG로 재구성한 게임입니다. 이에 따라 디아블로에 새로운 재미를 감미한 것과 디아블로의 감성을 느끼기엔 장르 특성상 성향이 너무 다른 것의 경계선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다만, '디아블로1'부터 '디아블로2: 레저렉션'까지 꾸준하게 즐겼던 골수 팬의 시각에선 고개를 젓는 요소가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스킬 구성과 퀘스트 레벨 커트라인이 대표적이에요.
기존 디아블로 시리즈들의 핵심 재미는 스킬을 난사하면서 액션·쾌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디아블로 이모탈은 특정 타이밍에 적합한 스킬을 사용하는 협력 플레이적 요소가 강조된 MMORPG인 만큼 스킬 쿨타임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라 평타로 공격하는 시간이 많죠. 이 부분이 정식 넘버링과 가장 이질적이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진행 시 설정된 레벨 커트라인도 디아블로 감성과는 거리가 먼 설계입니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레벨 커트라인이 존재하지 않아 유저가 퀘스트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자발적으로 추가 레벨 육성과 아이템 파밍을 진행하면서 해결하죠.
디아블로 이모탈은 레벨 커트라인으로 다양하게 준비한 콘텐츠를 유도했습니다.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하는 레벨에서는 태초 균열, 도전 균열, 현상금 사냥, 인스턴스 던전, 지옥 성물함 등 여러 콘텐츠를 즐기면서 레벨 육성을 해야 하죠.
이는 자연스럽게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디아블로가 강조하는 스토리·서사 감상의 몰입감을 크게 저하시키는 뚜렷한 부작용 때문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긴 어려운 설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디아블로의 재미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전 균열'을 통해 디아블로3 대균열 등반의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자신의 스펙 대비 어려운 단계를 컨트롤로 가까스로 클리어하는 순간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도전 균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게임은 단순히 MMORPG에 디아블로 스킨을 씌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아블로 시리즈 특유의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과금 모델 "고민 흔적 보여"
과금과 관련해선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장에 출시된 모바일 MMORPG의 과금 모델들과 비교하면 상위 랭커 기준 비용적으로 저렴하고 라이트 유저 기준 부담이 적은 편입니다.
그 이유는 배틀패스, 월정액과 같은 고정 보상 상품만 구매해도 게임을 쾌적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확률형 상품들처럼 과금을 해도 스펙 상승을 체감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긍정 포인트였어요.
두 번째는 확률형 상품이 존재하다는 것과 강제성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에서 '전설 보석'은 캐릭터 스펙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보석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자신에게 필요한 전설 보석을 얻는 것이 중요하죠. 원하는 보석을 획득했을 경우 일정 수량의 전설 보석을 소모해 강화하는 단계로 접어듭니다.
여기서 전설 보석을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전설 보석은 '태초 균열'이라는 콘텐츠에서 무작위로 드랍됩니다. 태초 균열을 입장하려면 문장이라는 입장권이 필요하죠.
해당 문장은 희귀, 전설 등급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전설 문장으로 태초 균열을 입장했을 경우 클리어 시 전설 문장 1개당 무작위 전설 보석 1개를 확정 수급할 수 있어요.
전설 문장은 일반적으로 과금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전설 보석이 무작위로 드랍되고 그 보석을 얻는 입장권을 과금으로 구매해야 하니까 간접적인 확률형 아이템이라 볼 수 있죠. 출시 전 와이어트 챙 디렉터가 "디아블로 이모탈에는 확률형 아이템이 없다"고 소개했던 만큼 확률형 상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기대한 유저들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설 문장은 전설 보석의 수급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역할이지, 유일한 수급처는 아닙니다. 매일 지급하는 희귀 문장에서도 낮은 확률로 전설 보석이 드랍되고 클리어 시 획득할 수 있는 룬을 모아 전설 보석을 뽑거나 특정 전설 보석을 정가제로 구매할 수 있거든요.
앞서 언급했듯이 패키지 게임으로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었던 디아블로 시리즈와 비교하면 그리 좋은 감성은 아닙니다. 상위 랭커를 원할 경우 실력보다 과금의 영향력이 더 높아 강제적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구조인 것도 사실이죠.
특히, 최고 레벨을 달성한 후 즐길 거리가 PvP에 국한된 바람에 전설 문장 스펙의 필요성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보석 수급 관련 신규 콘텐츠 혹은 희귀 문장의 보급률을 상승시키는 방식으로 빠르게 해소시켜줄 필요가 있어 보여요.
다만, 상위 유저를 대상으로 변신, 탈것, 펫 등 여러 요소에 등급을 나눠 확률형 상품으로 판매하는 방식보다 비용적 부담감을 줄이고 라이트 유저를 대상으로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전설 보석을 얻는 수단을 제공해 강제성을 최소화한 부분에선 블리자드와 넷이즈가 많이 고민했다는 흔적은 분명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그래서 디아블로 이모탈은 어때?
60레벨까지 게임을 즐기면서 굳이 스핀오프 게임을 정식 넘버링과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블리자드 입장에선 첫 모바일 도전작이고 디아블로 IP 입장에선 다른 장르로의 첫 도전인 만큼 엄연히 다른 기준으로 판단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죠. 단순하게 "이런 디아블로도 있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수동 플레이를 전면 채용한 부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발열에 따라 프레임 저하 현상이 발생하고 피로감이 쉽게 누적되는 단점이 있어도 최적화에 공을 들인 만큼 플레이에서의 재미는 확실했거든요.
게다가 MMORPG 팬으로 이 게임을 바라보면 즐길거리가 많아서 만족했습니다. 균열, 지옥성물함 8인 레이드, 투쟁의 굴레, 호라드림의 유산 수집, 생물도감 수집, 인스턴스 던전 등 다양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했고 앞으로도 신규 콘텐츠를 선보인다고 언급했으니까요. 특히, 8년 만에 마주하는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한 반가움, 정식 넘버링인 '디아블로4' 출시 사이의 공백을 디아블로 스토리로 채워준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마주했던 블리자드 게임을 생각하면 아쉬웠던 면도 분명 많았습니다. PC 버전 완성도, 자동 사냥 매크로 대응, 파밍 구조 및 난이도, 60레벨 달성 후 성장 난이도 및 즐길 콘텐츠, 과금 영향력이 높은 PvP 콘텐츠 등은 앞으로도 꾸준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었죠.
다행히 최근 블리자드가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저들과 소통하고 관련 피드백을 반영하면서 게임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운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디아블로 이모탈도 신규 업데이트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한다면 정식 넘버링과 차별된 재미를 가진 디아블로 시리즈로 인정받고 새로운 디아블로 스핀오프 작품을 개발하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