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의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담은 모바일 드레스업(Dress UP) 게임이 등장해 유저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 스타트업 에어캡이 자체 개발한 ‘걸 글로브(GIRL GLOBE)’다. 수채화 풍의 일러스트와 더불어, 다양한 패션 스타일링과 관련된 퀘스트를 풀어나가는 게임이다.
‘걸 글로브’는 옷 입히기 게임인 동시에, 게임 속에 등장하는 의상과 소품들을 직접 유저가 구매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패션 플랫폼이기도 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의상 역시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의류 브랜드들의 의상을 담았다.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착용한 의상이나 사극 드라마 의상을 전담한 유명 한복 브랜드도 게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개발사인 에어캡의 현지민 대표는 대학 시절인 2017년 회사를 창업, 2018년부터 3년 간의 개발 끝에 ‘걸 글로브’를 선보였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개발돼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 여러가지 언어를 지원한다.
현지민 대표는 “다른 비슷한 게임과 비교했을 때 유저들의 반응은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초반에 저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버그가 발견돼, 버그 수정과 게임 안정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회사 이름인 에어캡은 흔히 물건을 포장할 때 쓰는 ‘뽁뽁이’로 불린다. 현지민 대표는 “사실 뽁뽁이에서 영감을 얻어 회사 이름을 정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처음 창업 당시에는 인생이란 시지프스 신화 같다고 생각했다”며 “큰 공을 뽁뽁이로 싼 뒤 산을 올라가면 중간중간 터뜨리면서 재미있게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회사 이름을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제 관심 분야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기에, 회사 이름 역시 삶과 맞닿은 이름이길 원했다”고 덧붙였다.
창업 전 현지민 대표의 꿈은 영화 연출이었다. 아르바이트로 게임회사에서 시나리오 라이터와 기획 일을 하다, 영화가 아닌 게임 쪽에 눈을 뜨게 됐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즐겨 하던 옷 입히기 게임을 눈여겨봤다. 현지민 대표는 ‘코벳 패션’, ‘로이월드’ 등 다양한 패션 게임을 수 년간 열정적으로 즐긴 유저이기도 했다. 실제 패션 브랜드가 등장하면서도, 서양은 물론 아시아 여성들의 취향에도 맞는 게임을 구상했다. “이런 게임을 만들면 전 세계의 여자들이 다 할 것 같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걸 글로브’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살아 있을 때 할 만한 것은 영화’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면, 그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죠. 저는 항상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창업을 하고 게임을 만들면서 훨씬 의욕적이 되었고, 삶의 변화도 많이 겪은 것 같습니다.”
창업 초기의 투자와 팀 꾸리기, 그리고 실제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열심히 창업스쿨 등을 돌아다니며 엔젤 투자자들을 만나 초창기 시드 자금을 마련했다. 6명의 멤버들이 모여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개발에 매달렸다. 패션 디자이너들 역시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직접 만나 설득에 나섰다. “영업을 잘 하지는 못하는데, 할 사람이 없으니 결국 제가 하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게임을 개발하면서 약 3번 정도 완전히 갈아엎었다고 한다. 스토리 역시 어둡다는 평가가 많아 현재 패션 잡지사의 이야기로 바꿨다. 게임에서는 한국은 물론 헝가리, 우크라이나, 태국 등 다양한 국가들의 패션을 엿볼 수 있다. ‘걸 글로브’는 지난해 8월에 출시하려던 계획이었으나, 핵심적인 재미 요소를 추가하면서 일정이 늦어졌다.
출시를 앞두고는 중국 게임사에서 한복과 관련한 ‘동북공정’ 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현 대표는 “초반에는 유저들로부터 한국 게임 맞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며 “한복 이슈를 노린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국가별로 나눠서 기획했기 때문에 한복 콘텐츠가 들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걸 글로브’에는 2800개 이상의 의상과 소품들이 등장한다. 7월에는 챕터 업데이트를 통해 신규 브랜드의 의상들도 추가된다. 2개월마다 한 국가의 챕터를 업데이트하면서 콘텐츠를 추가할 예정이다.
에어캡은 직원 수는 총 25명이다. “게임의 볼륨이 생각보다 작지 않다”고 말한 현지민 대표는 “3년 동안 여러가지로 힘들었지만, 그래도 직원들 월급을 단 한 번도 밀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게임이 1년 만에 뚝딱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계속 게임을 수정해 나갔다. 현 대표는 “어려울 때마다 항상 좋게 봐주신 분들이 계셨고, 그분들 덕분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아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지민 대표의 목표는 지금까지 나온 패션 게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제 목표는 샤넬과 구찌를 ‘걸 글로브’ 안에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해외에서는 명품 브랜드들이 드레스업 게임에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에어캡이 그러한 사례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저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이 딱 ‘걸 글로브’ 같은 게임이었거든요. 이제는 전 세계 브랜드들을 제 게임에 넣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죠. 유저 분들의 반응도 정말 하나하나 다 챙겨보고 있어요. 앞으로 꾸준히 부족한 점을 고쳐나가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게임으로 만들어나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