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그래픽은 오랜 세월 레트로 게임을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오래전에는 대부분의 게임이 한땀 한땀 점(dot)을 찍어 세상을 그려내는 픽셀 그래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낸 게임들은 게이머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그런 픽셀 그래픽이 요새는 인디게임을 대표하는 그래픽 스타일이 되었다. 레트로를 표방한 게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디 게임에 쓰인다. 표현 기법과 개발 엔진, AI의 발전으로 구현 난도가 내려갔고, 어설픈 3D보다 훨씬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처음 '아르티스 임팩트'의 트레일러를 보고 별 감흥이 없었다. 움직임이 기묘할 정도로 부드러웠지만, 1인 개발이라고 하니 '와 기술 발전이 대단하구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개발자가 직접 그렸다는 설명을 봤을 땐? 의심이 피어올랐다. 플레이해 보면 분명 기계로 만든 허점이 보일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불순한 마음으로 플레이를 시작한 '아르티스 임팩트'였지만, 지금은 반성하고 있다. 개발자 Mas가 4년 동안 직접 그려낸 세상은 사람 냄새로 가득 차 있었으니 말이다.
- · 게임명: 아르티스 임팩트
- · 개발사: Mas
- · 서비스: Mas
- · 장르: RPG
- · 배경: 포스트 아포칼립스
- · 플랫폼: PC(스팀, 스토브)
- · 출시일: 2025년 8월 7일
- · 리뷰 버전: 사전 코드 버전
■ "이렇게까지 한다고?" 집요함이 느껴지는 픽셀 그래픽
'아르티스 임팩트'는 시작부터 강렬하다. 캐릭터 자체는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표현이 과하게 생략되어 있다. 반면, 움직임은 중복되는 걸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걷기와 뛰기, 계단 오르내리기, 문 열기, 음식 먹기, 걸레질, 설거지 등 일상적인 움직임부터, 다른 캐릭터, 사물과의 상호작용, 감정 표현 등 말풍선을 대충 띄워서 처리할 만한 것들까지 모두 다르게 그려져 있다.
게다가 그 움직임이 매우 부드럽다. 화면에서 보이는 캐릭터의 크기는 작지만 동작 하나하나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또렷하게 보일 정도다. 주인공인 '아카네'는 물론, 등장 횟수가 적거나 한 번 뿐인 캐릭터들도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심지어 주인공과 함께하는 AI 로봇 '봇'이나 플레이에 여러 도움을 주는 '~로이드' 시리즈 로봇들, 가끔 등장해 엮이는 동물들까지 거의 모든 캐릭터가 그 수혜의 대상자다.
그런 움직임이 전투에서 정점을 찍는다. 주인공 아카네는 형태가 변하는 검으로 전투를 벌인다는 설정인데, 전투에서는 검과 함께 춤을 추며 싸운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당연하다는 듯이 스킬마다 움직임도 모두 다르다.
적들은 몸체는 가만히 있지만, 공격 표현이 다양하다. 단순히 타격 이펙트만 나오는 공격은 극히 일부이며, 대부분은 해당 적이 무엇으로 아카네를 공격하는지 보여준다. 그것도 엄청난 프레임으로.
보스는 등장부터 강렬한 경우가 많다. 배경을 모두 검게 칠하고 점 몇 개로 움직임을 표현하는 장면이 많은데, 그때부터 보스가 어떤 실루엣을 가졌는지 보이는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르티스 임팩트'의 그래픽은 말로 풀어내면 정말 끝도 없다. 한번 플레이해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바로 알 수 있을 거다.
■ 픽셀 그래픽 강조하는 '선택과 집중'
픽셀 그래픽에서는 개발자 Mas의 집착이 엿보일 정도지만, 그렇다고 '아르티스 임팩트'의 모든 걸 픽셀로 그려낸 건 아니다. 그랬으면 4년이 뭔가, 10년이 걸려도 출시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거다.
'아르티스 임팩트'에서는 카툰 형식의 컷인 연출이 자주 쓰였다. 스토리 연출을 위해 여러 일러스트가 만화처럼 배치되는 것 외에도, 평소 플레이에도 은은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카네와 다른 사물의 상호작용이 있다. 아카네가 문을 열고 이동하거나 계단으로 오르내릴 때, 특정 사물과 반복해서 상호작용을 할 때 해당 동작을 보여주는 네모난 컷을 붙여서 보여준다. 마치 만화에서 특정 동작을 강조할 때 작은 컷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행동하는 아카네의 주변에 단순히 실선으로 된 박스를 씌우는 연출이었다. 컷을 따로 나눈 것이 아니었음에도 동작이 강조되는데, 아카네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효과를 준다.
여기에 실사 사진에 픽셀 캐릭터를 얹는 등의 연출도 자주 활용된다. 픽셀 그래픽을 보며 상상한 이미지와는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효율화를 꾀한 모양새다.
덕분에 '아르티스 임팩트'는 모든 요소를 픽셀로 그려내지 않았음에도 픽셀 그래픽이 굉장히 강조된 인상을 준다. 이런 선택과 집중은 혼자서 개발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퀄리티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일 것이다.
■ 옆길로 새는 걸 적극 권장하는 잔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아르티스 임팩트'는 인간과 AI의 전쟁 끝에 멸망에 가까워진 세상에서, 주인공 아카네와 동료 AI 봇은 임무를 수행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모험은 없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돌아보고 여러가지를 느끼며 성장하는 아카네를 보는 게 목표라면 목표다. 제목에 임팩트가 있고 게임 시작 시 폭력적 표현과 언어에 대한 경고가 나오지만, 게임 플레이는 잔잔하기 그지없다.
플레이어도 급할 필요가 없다. 구석구석 이것저것 만지고 느껴가며 즐기는 게 좋다. 게임의 조작은 이동, 선택, 취소로 간단하지만, Shift 키와 선택 키를 같이 눌러 다른 방식으로 만져보는 조작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다. 실제로도 해당 조작으로 대부분 다른 동작을 보여준다.
플레이 타임은 약 5시간이지만, 1회차가 마음에 들었다면 2회차까진 해보는 걸 추천한다. 분기가 되는 부분에서 메인 스토리가 변화하진 않지만, 중간에 다른 서브 스토리가 추가되는 건 있다. 플레이어의 반복적인 행동, 혹은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이 새로운 이벤트나 분기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사람들은 효율을 추구하며 앞으로만 달려 나간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다른 선택지들은 뒤로 밀려나기만 한다. '아르티스 임팩트'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금은 여유를 줄 수 있는 따뜻한 게임이 아닐까 싶다.
■ 조금 아쉬운 최적화 외엔 모든 게 좋았던 '아르티스 임팩트'
'아르티스 임팩트'는 고집스러운 픽셀 그래픽과 이를 살려주는 연출, 포스트 아포칼립스임에도 잔잔함이 느껴지는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가 어우러져 이 게임만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픽셀 그래픽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즐겨봐야 할 게임이며, 상호작용이 많은 걸 좋아하는 RPG 팬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최적화는 조금 아쉽다. 전투 시의 스킬 사용이나 눈이 내리는 등 이펙트가 과도할 때, 등장 적 수가 많을 때 프레임 저하 현상이 종종 생기는데, 이를 조정하기 위한 게임 내 그래픽 설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권장 사양이 낮은 편이나 그에 근접한 환경에서는 게임 경험이 훼손될 수 있다. 부드러운 움직임의 픽셀 그래픽이 강점인 게임이니 말이다. 이펙트까지도 일일이 다 그린 거라 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추후 패치로라도 그래픽 설정이 추가되었으면 한다.
- 정교한 픽셀 그래픽, 독특한 연출
- 풍부한 상호작용
- 자연스러운 다회차 플레이 유도
- 아쉬운 최적화
- 게임 내 그래픽 설정 미지원
- 불명확한 세이브 포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