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사옥 옥상에 펼쳐진 ‘하늘N밭’의 초보 농부 체험기

정오를 넘긴 시간, 살갗을 파고드는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초를 뽑는 청년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방울토마토와 고추가 잘 자라라고 비료를 뿌렸더니 잡초들까지 힘을 얻었는지 극성이다. 정성을 다해 심은 작물들이 행여 잡초들에게 영양분을 빼앗겼을까 꼼꼼히 살펴본다. 간밤에 지지대가 쓰러지지는 않았는지, 웃자란 줄기는 없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 많다.

넥슨 콘텐츠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민섭(28)씨는 흙 깊숙이 파고든 잡초의 뿌리를 모두 뽑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허리를 폈다. 그리고 일렬횡대로 씩씩하게 늘어서 열매를 맺은 작물들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는 “애지중지 키웠으니 맛이 없더라도 좋을 것 같다”며 “그간의 노력이 직접 눈으로 보이니 뿌듯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씨 옆에도 1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작물 관리에 여념이 없다. 텃밭에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거나 힘을 합쳐 지지대를 설치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농부들의 모양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넥슨에 근무하는 20~30대 젊은 직원들이다. 그리고 흙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곳은 한국 ICT의 메카, 판교테크노밸리의 넥슨 사옥이다.

넥슨은 2014년 사옥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고, 하늘과 가장 맞닿은 공간이라는 점과 넥슨의 아이덴티티인 ‘N’을 따서 ‘하늘N밭’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곳은 3분의1 이랑(170x120cm) 크기의 개별 텃밭 27개로 구성됐으며, 텃밭은 팀별로 하나씩 배정된다. 텃밭을 배정받은 팀은 1년간 텃밭을 자유롭게 가꿀 수 있다.

텃밭을 분양받으려는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50~60팀이 분양을 신청한다. 2019년에는 총 58팀이 신청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텃밭을 관리하는 넥슨 스페이스 사옥 운영팀은 팀 크기와 상관없이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뽑는다. 사내 인트라넷에 당첨자가 공지되고 나면 떨어져서 아쉽다는 푸념 댓글이 줄지어 달린다.

텃밭을 잘 가꿨다고 해서 다음 해에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텃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경작 권한이 회수된다. 모종 식재 후 관리를 하지 않아 병충해가 발생하면 자칫 다른 밭으로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팀은 힘들여 텃밭을 분양받은만큼 텃밭 관리에 열심이다. 수확철이 되면 토마토, 고추, 셀러리, 가지, 오이, 호박 등 넥슨 직원들이 땀흘려 키운 작물들이 ‘하늘N밭’을 뒤덮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렇게 수확한 작물들은 넥슨 직원들의 회식 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이씨가 속한 콘텐츠홍보팀은 2019년 처음으로 텃밭 분양을 신청해 운좋게 바로 당첨됐다. 기쁨도 잠깐, 걱정이 솟았다. 팀원 9명 중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작물을 재배해보고 싶다고 자원한 이씨와 김민우 대리가 메인 관리자로 뽑혔다. 나머지 인원들도 틈틈이 텃밭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에는 텃밭에 무엇을 심을지가 화제에 올랐다. 처음 물망에 오른 후보는 달콤한 여름과일, 수박이었다. 하지만 수박 모종을 구하기 어려운 철이었고, 재배 방법도 농사 문외한인 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웠다. 결국 수박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비교적 키우기 쉬운 방울토마토와 고추를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농사에 들어가기 전, 사옥운영팀이 땅을 갈고 비료를 뿌려 텃밭을 비옥하게 만들어줬다. 꾸준히 인기 있는 모종인 방울토마토 모종도 사옥운영팀으로부터 얻었다. 고추 모종은 가락시장에서 직접 구했다.

모종을 심는 것까지는 쉬웠지만, 이후부터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당장 모종을 심은 다음날부터 난관이 펼쳐졌다. 꼿꼿이 서 있어야 할 모종들이 하룻밤만에 모로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얕게 심었던 것이 문제였다. 부랴부랴 구덩이를 더 깊숙이 파서 모종을 새로 심었다.

모종은 아기처럼 연약했기에 세심하게 돌봐줘야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모종 상태를 확인하고 1일 1회 물을 줬다. 날이 건조한 날에는 오후에 한번 더 물을 줬다. 특히 잡초는 보통 일주일에 한번씩 팀원들이 모두 매달려 제거했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생겼으며, 자칫 뽑을 시기를 놓치면 뿌리를 깊게 박고 버티는 탓에 애를 먹였다.

이씨는 “잡초는 다시 자라나지 않도록 뿌리째 뽑는 게 중요하다”며 “비료를 뿌리면 주변에 잡초도 잘 자라기 때문에 비료를 뿌린 기간에는 3일마다 잡초를 뽑았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잡초를 뽑을 때 쾌감(?)을 느낀다”며 “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웃었다.

젊은 초보 농부들에게 닥친 최대 위기는 연휴였다. 현충일, 전사 휴무일, 주말이 합쳐진 나흘간의 연휴가 연약한 작물들을 위협했다. 가뜩이나 막 열매가 맺히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회사에 나오지 않는 사이에 작물들이 잘못되지는 않을지 팀원 전체가 걱정에 빠졌다. 다행히도 김민우 대리가 우연히(?) 주말에 회사에서 물건을 가져와야 할 일이 생기는 바람에 위기를 극복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사고를 예방하는데 넥슨 사우들의 집단지성이 큰 도움이 됐다. 한 사우는 메뚜기, 진딧물 등 벌레가 알을 낳거나 열매를 갉아먹는다는 제보를 통해 다른 농부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사옥운영팀은 부랴부랴 친환경 재료로 구성된 살충제를 살포했다.

또 주말에 돌풍으로 인해 지지대와 줄기를 꺾였던 아픈 경험을 겪은 사우도 이와 관한 내용을 게시판에 공유했다. 이 또한 돌풍이나 태풍을 경험하지 못했던 초보 농부들에게 타산지석이 됐다.

이씨는 모종을 심을 때부터 열매를 수확할 때까지 매 순간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중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두는 마지막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씨는 방울토마토가 처음 열리던 날 사진을 찍어 메신저를 통해 팀 전체에 공유했다. 팀원들도 자신들이 방울토마토를 직접 키운 것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첫 수확으로 거둔 방울토마토 3알을 맛보는 영광은 이씨에게 돌아갔다. 마트에서 구매한 방울토마토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당도가 높아서 맛은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씨와 콘텐츠홍보팀은 해가 가기 전에 다음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 난이도 높은 작물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씨는 “요즘 건강 식품으로 각광받는 새싹보리를 키워보고 싶다”며 “재배 난이도는 높겠지만, 팀원들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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