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홀로 백패킹 여행 중 만난 하산 길에 작은 농가 한 채...아 가을인가

지난해 가을 혼자 강원도 백패킹을 다녀오며 하산 길에 작은 농가 한 채를 발견했다.

깨끗하게 리모델링된 마당에는 백색 마사토가 깔려있고 슬라브로 올린 지붕에 비만 내리면 차양에서 빗물이 악보처럼 떨어지는 그림을 상상했다.

비가 올 때마다 마당에 놓은 쟁기, 쓰레받기, 양은 세숫대야에서 빗방울 튕겨 올리는 소리가 다른 두께에서 울림으로 들려주는 각자의 훌륭한 악기가 될 것이다.

저 방문을 열면 바깥세상이 바로 보이는데, 맑은 봄날보다 처음의 상상처럼 비오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거라 술꾼다운 엉뚱한 생각을 했다.

가을이 도착해 있을 때, 집을 등지고 있는 도시의 전봇대 만한 참나무, 잣나무 숲 나무를 비집고 날아가는 바람 소리와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가 어느 바다 시원한 파도 소리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그때마다 한 해가 가는 마지막 절기에 주인은 나처럼 삶의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가을 풍경을 기록하겠지...

작은 화단에는 무슨 꽃이 심어 있을까? 궁금함에 주인 몰래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중에 꺼내먹는 꿀단지처럼 궁금증을 조금은 남겨 놓기로 했다.

내가 예뻐하는 채송화와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심어지면 좋겠다며 혼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아무튼 그날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에서 사진 한 장을 보며 언젠가는 도시를 떠나 촌부처럼 헐랭이 바지에 싸리비를 들고 마당을 쓰는 행복한 말년의 모습을 상상했다.

봄부터 잘라 말린 장작을 아궁이에 넣고 군불 때서 밥을 짓고 장터에 나가 사 놓은 무청시래기를 불려 만든 된장국에 먹는 겨울 저녁 밥상의 풍경은 함박눈과 어울려 더 짙은 밤을 만들 것이다.

작고하신 소설가 최인호 선생은 마지막 산문집에 이렇게 썼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스님이 되거나 어느 산골 작은 오두막에 선술집을 하며 촌스런 아낙네와 살을 섞고 살겠다고...

삶을 크게 나누고 양분해서 자신을 되돌아보니 자연에 어울리게 사는 부족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

한적한 오후 혼자 더 잃을 것도 없는 삶에서 동해선 기차를 기다리며 서울을 떠나기 전 늦가을과 동행하며 본 정선의 풍경은 그곳에서 아직도 나를 붙잡고 있다.

그날 밤 별과 바람,그리고 작은 농가의 풍경, 내 나이만큼이나 검은 이끼로 변색된 벽돌집, 정선의 사투리를 섞어 만든 곤드레밥이 담긴 행복 주머니를 꺼내본다.

그리고 달고나처럼 이렇게 하나씩 꺼내 먹을 때 행복해진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주홍수 감독은 30년 가까이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며 올해 출판이 예정된 산문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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