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버티던 8개월 작은 마을 짱푸의 기억...언제 직접 작가를 만나고 싶다

빠레트, 굳어버린 붓, 이젤, 잘라 만든 캔버스, 먼지가 쌓인 구석 물감, 입술 자욱이 묻은 싸구려 커피잔, 수북하게 쌓인 재떨이와 찐내가 나는 고독한 골방...

가난한 화가의 겨울 풍경을 상상했다. 청소년 시절 동네 큰 사거리마다 화방이 있었다. 아그리빠, 줄리앙, 아리아스, 비너스 등 전시된 석고상부터 세로줄로 세워진 비싼 물감들과 화구들이 창 너머로 보였다. 

나는 윈도우 밖에서 가난한 피아프가 화려한 무대 의상을 보며 서 있듯 가지고 싶은 그것들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가난한 미술반 학생의 내 모습이다. 

어제 지인의 사무실에서 만난 50호 정도 유화 한 점을 사무실 인테리어가 끝나면 내 방에 들여놓기로 했다. 

그림의 주인은 가난한 화가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물질적 풍요로움이 가득한 그림이 아니라 중국에서 힘들게 버티던 그 노쇠해진 내 기억을 저장해 놓은 그림이었다.

그렇게 만나지도 못한 신인 화가의 그림 속에서 힘들게 버티던 중국 쿤산 옆 작은 마을 짱푸의 기억을 소환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타지에서 혼자 버티던 8개월의 기억을 다시 단단하게 붙들어준 그를 그림으로 먼저 만나며 언제 직접 작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청소년기 가끔 화랑을 방문해서 전시된 그림을 보며 내가 어른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상상할 때가 있었다.

오늘도 샤갈, 에른스트, 달리, 고흐, 고갱, 모딜리아니, 마네, 모네, 세잔 등 그들이 그린 그림을 생각하며 장님이 직접 손가락 끝으로 만지듯 상상을 한다.

손끝으로 전달되는 붓의 터치, 속도, 캔버스의 두께,,. 오일냄새 등...물감으로 무지개를 만들어 섞어 놓은 그림들이 꼭 마술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봄이면 사무실에 수련이 담긴 풍경이 한쪽에 있을 것이다.

커피를 내리고 마시며 보는 그림을 생각하니 중국 쿤산의 힘들었던 기억이 행복함으로 바뀌고 있다. 그림의 힘이다.

글쓴이=주홍수 애니메이션 감독 sisi9000@naver.com

주홍수 감독은?

주홍수 감독은 30년 가까이 애니메이터로 만화가로 활동을 해왔다. 현재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여러 작품을 기획 중이며 올 해 출판이 예정된 산문집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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