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이가 뜬금없는 판타지 게임이라니? 지금도 놀란 사람도

이번 연재는 이름을 거창하게 “잊혀진 명작”이라 했지만, 사실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나는 게임-게임기 얘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연재 중간 중간에 이런 코너를 마련해서 얘기를 이어가 볼까 한다. 좋게 말하면 ‘숨겨진(잊혀진) 명작’ 정도가 되겠다.

‘KOEI’가 만든 HOMM?
1990년에 코에이(KOEI)에서 새로운 게임을 하나 만들었다. ‘젬파이어(GEMFIRE)’라는 게임인데, GEM은 익히 아시다시피 보석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잘 나갔던 삼보 컴퓨터의 모델 중에 ‘트라이젬’이 있었는데, 삼보 컴퓨터의 ‘삼보’는 세 개의 보석이라는 뜻에서 영어로 Tri(3, 3개), Gem(보석)의 합성어 TriGem이다. ‘Tri’는 3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는데, 최근 롤(LOL)에서도 트리플 킬(Triple Kill)이라고 할 때도 그 Tri 이다. 삼각대는 Tripod 라고 한다. 양각대는 다리가 두 개라서 bipod라고 한다.

여기서 bi는 2라는 의미이다. bicycle(바퀴가 둘인 자전거), binary(이진법, 이진수)등에서 앞에 bi 역시 ‘2’ 라는 의미이다(영어 공부도 함께할 수 있는 게임별곡 멋지다). 이 정도 영어 지식은 대한민국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면 누구나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기억하시겠지만 예전 삼보 컴퓨터의 로고는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3개의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이시는가? 보석 3개 (그래서 삼보 컴퓨터) 참고로 저 게임이 등장할 1990년에 ‘삼성’의 로고는 삼성 이름(별이 3개)과 같이 다음과 같은 모양이었다.
별이 3개라서 삼성. 매우 직관적이다. 지금은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저 당시에도 삼성은 꽤나 규모 있는 업체였다. 그래도 지금과 같이 거대 기업이 될 줄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지만, 20년 전의 로고와 현재의 로고에서 SAMSUNG 이라는 글자만은 버리지 않았다. 모양은 계속해서 바뀌어도 본질(글자)만은 그대로 이어간다는 점에서 나름 훌륭하다고 해야 할지.

Gem 얘기 한 번 꺼냈다가 삼성까지 이르는 대책 없는 잡설은 그만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저 당시에 KOEI는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로 국내에 열광적인 유저를 양산해 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곧이어 등장할 ‘대항해시대’, ‘원조비사’, ‘수호지’ 등 “역사 전략 시뮬레이션 하면 KOEI”라는 공식을 만들어 가려고 준비 중인 때였다.

그러던 중 필자가 입수한 문제의 게임 ‘Gemfire’는 “이건 뭐지”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기존의 KOEI하면 떠오르는 이미지하고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모습의 게임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삼국지나 원조비사 등의 동양적인 역사 시뮬레이션 외에도 이전에 소개했던 ‘랑펠로’ 같은 게임부터 대항해시대와 같은 서양 역사 시뮬레이션 등 주로 현실(과거) 위주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의 이미지가 강했던 터라 뜬금없는 판타지 게임이라니? 하는 느낌이었다.

게임 이름 역시 GemFire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은 Fire Gem (화석, 불길의 마석) 등의 판타지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 이름과도 비슷하다. 

익숙한 회사 로고가 지나고 나면 당연히 나올 것 같은 화면의 모습은 삼국지 아니면 대항해 시대와 같은 느낌의 게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여진 화면은 어라? 잘못 실행했나? 할만큼의 당황스러운 느낌도 있었다. 

이거 KOEI 게임 맞아? 하는 느낌은 필자만 그렇게 느낀 것일 수 있으나, 너무 현실 배경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제작사로 느낌이 강했던 KOEI의 게임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게임 해본 사람도 물어보면 많지 않은 걸 보니 삼국지만큼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 한 것 같다(물론, 삼국지 게임만큼의 흥행을 한 게임이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1편의 흥행부족이 못내 아쉬웠는지, KOEI에서는 2편도 만들어냈다. 1990년 말에 등장했던 게임인데, 정확히는 1999년이었던 것 같다. 21세기가 되기 전에 꼭 출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게임 이름은 ‘로얄 블러드2–다날 왕국 연대기’이다.

지금 소개하는 GemFire 게임의 다른 이름이 Royal Blood 였기 때문에 ‘2’라는 숫자를 붙여 시리즈처럼 보이지만, 이름만 시리즈처럼 붙어 있지 실제 1편과의 연계성은 거의 없다. 배경 스토리나 게임 시스템도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봐도 좋을 만큼 관련성이 거의 없는데, 왜 굳이 ‘2’라는 타이틀을 붙였는지는 의문이다.

옛말에 ‘형 만한 아우 없다’고, 1편의 흥행 부족에 이어 2편 역시 흥행 부족(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닌가?) 일본 자국 내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는 삼국지, 대항해시대, 원조비사, 수호전 영걸전 정도로 기억되는 기존의 KOEI 게임들 때문에 이런 판타지 게임을 KOEI에서 만들었다고? 하면 놀라는 유저도 간혹 있었다.

아마 ‘신장의야망(信長の野望)’보다도 유저가 적었을 것 같다. 물론 신장의야망 시리즈도 꽤 인기 있는 게임이었다. 한국에 민감한 가깝고도 먼 나라의 역사적 소재라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서 그렇지 게임 자체는 나무랄 데 없는 명작 게임이다.

물론 KOEI라고 해서 모두 명품 게임만 만들어 낸 것은 아니고, GemFire만큼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태합입지전 같은 게임도 만들어냈다. 태합입지전도 시리즈화 되었는데, 국내(한국)에서는 역시 삼국지나 대항해시대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다.

이와 비슷하게 뜬금없는? 소재로 ‘에어 매니지먼트’같은 게임도 만들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에는 다소 어려운 소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게임 역시 마니아층이 있고 계속해서 후속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유저도 많지만, 역시 KOEI는 삼국지다.

[그래 이런 게 KOEI 게임이지]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화되는 현상이 꼭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당분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물론 ‘삼국지’ 전략 시뮬레이션 하면 KOEI를 따라잡기에 어려움이 많다. 그리고 어떤 삼국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나와도 기존 KOEI의 삼국지 게임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우리는 KOEI에서 만든 삼국지의 캐릭터 이미지와 게임 시스템에 지난 수 십년간 적응해왔고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그래! 삼국지는 네 거다 KOEI).

다른 시각에서 보면 자국(중국)의 역사 소재를 그렇게 친하다고 볼 수는 없는 타국(일본)의 게임 개발사에 빼앗긴 관점에서 보면 씁쓸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 역사 소재로 한 게임은 뺏긴 게 없어서 다행이다. 반대로 보면 아직까지 크게 흥행한 우리나라 역사 소재의 게임이 많이 없다는 건 불행이다.

비운의 게임기 PC엔진 (PC-Engine)
아주 오래 전에 해태전자라는 회사에서 게임기를 발매했는데, 그 당시 비슷한 시기에 앞뒤로 국내에는 슈퍼패미컴(슈패)을 한국에서는 슈퍼컴보이(현대)라는 이름으로, 메가드라이브(MD)는 한국에서 슈퍼알라딘보이로 이름으로 출시하였다. 국내 16비트 게임기 시장은 두 기종의 게임들이 거의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었고, 게임기 시장 역시 두 기종이 전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슈퍼패미컴에 마리오가 있다면, 메가드라이브에 소닉이 있다.” 하던 시절 뜬금없이 해태전자에서 들여온 게임기는 사실 현대나 삼성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개발제품이라기보다는 일본의 PC-Engine(휴카드 사용)을 들여와 판매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PC-Engine도 참 우여곡절이 많은 게임기로 1980년대 후분 알파무역이라는 회사에서 직수판매를 하다가 대우전자에서 ‘재믹스PC셔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판매했었는데, 대우전자가 게임기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해태전자에서 ‘바이스타’라는 이름으로 출시했었다. 이름의 의미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조차도 PC-Engine의 최대 강점 중에 하나였던 CD-ROM 드라이브를 탑재하지 않았고 게임기 모양 또한 원판과 차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회사이름 브랜드 자체가 ‘과자’ 회사 이미지가 강했는데, 갑자기 디지털 게임기 사업이라니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점이 치명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른 게임기는 모두 전자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업체(현대, 삼성)로 게임기도 큰 맥락에서 본다면 전자제품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 해태전자는 딱히 전자/전기 관련 된 회사로서의 이미지는 많이 약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음향장비(오디오) 사업도 하긴 했었지만, 지금으로 치면 초코파이밖에 생각이 안나는 모 제과업체에서 최신형 울트라씬 타블렛PC를 발매했다고 하는 것하고 비슷한 느낌이려나?

이 당시에 즐겨했던 게임으로는 PC기준으로 ‘심시티1’, ‘위험한 데이브’(보석 먹는 게임), ‘페르시아 왕자’, ‘금광을 찾아서’, ‘스키냐 죽음이냐’, ‘데스트랙’ 등이 있었다(앞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보석 얘기와 삼성 얘기는 바로 지금 삼성의 게임기 사업, 보석 먹는 데이브 등을 위한 포석이었다. 고 쓰면 대박 이겠구나 하고 갑자기 생각났다).

PC-Engine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했던 게임기였는데(특히 PC-Engine DUO) 어찌된 영문인지 국내에서는 그렇게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16비트 게임기 시장은 슈퍼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가 나눠먹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뭐 애초에 PC-Engine 자체가 당시에 8비트 게임기였던 패미컴(패밀리)을 노리고 발매한 제품이라 같은 8비트 계열의 게임기라는 약점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PC-Engine DUO에 이르러서는 감히 서민의 입장에서는 손도 닿아 보기 힘들 만큼의 가격 정책으로 PC- Engine DUO의 경우 1991년 발매할 당시 5만9800엔(원 아님!)의 가격으로 발매 했다. 1990년 말에 발매됐던 슈퍼패미컴의 경우가 세금포함 2만5000엔의 가격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고가의 게임기였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배터리 세트나 TV튜너 등의 주변기기 풀셋을 장만하게 되면 16만7400엔(또 얘기하지만 원 아님!)이라는 홈쇼핑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 놀라운 가격! 지금 즉시 주문 신청하기에는 너무나 겁이 나는 16만7400엔이었다.

실제로 필자는 PC-Engine DUO같은 꿈의 게임기를 꼭 손에 넣어보고 싶었으나, 경제력이라고는 하늘 같은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지는 용돈 밖에 없던 학생 신분에 감히 입 밖에도 꺼내서는 안 되는 금기어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 PC-Engine DUO가 필요하니 급전 5만9800엔.. “

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안에 있는 신발이라는 신발은 다 날아들었을 것이다(다행히 가난해서 신발이 많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인데 왠지 슬프네). 더 날아 들 신발이 떨어질 무렵 어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또 다시 교회로 갔겠지..

하지만, 가격정책과 국내 판매 정책 등의 여러 가지 문제로 보다 많은 유저를 양산해 내지 못 한 아쉬운 게임기였어도 나름대로의 존재 가치의 의미가 있는 게임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마 그 뒤로 발매되는 CD-ROM탑재 게임기들 특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등이 많은 영감을 받지 않았나 생각될 만큼 여러 가지 면에서 참고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기존의 롬팩 위주의 게임기 시장에서 제한적인 용량의 한계를 벗어나 CD-ROM이라는 대용량 매체를 만나 기존의 다른 게임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사운드와 그래픽을 보여준 게임들이 출시되기도 했었다.

특히 PC-Engine (PCE) 하면 ‘천외마경’ 게임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천외마경과 더불어 빼놓으면 섭섭한 게임이 바로 ‘이스’ 이다. PCE판 이스를 잠깐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뒤로 집에 돌아와서 가질 수 없는 자의 비애를 느끼며 몇 일 밤을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난다.

필자의 잡소리
최근 1990년에 출생한 친구들이 사회에 진출할 나이가 되었다. 사회 초년생인 그들이 태어나기 직전 또는 태어나서 이제 갓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세상이 어떠했는지, 그 중에서도 게임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추억의 공유를 하고 싶은 마음에 최근 그 당시 게임들 위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얼마나 공감이 갈지 의문이다.

글을 쓰는 또 다른 목적은 그 당시의 게임들이 최근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스마트 폰 게임들의 적절한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Full 3D의 현란하고 웅장한 PC용 고 사양 게임들도 못 만들 이유는 없겠지만, 전체 다수의 시장에서의 접근 효용성과 수익성 면에서 바라본다면 1980 ~ 90년대를 위주로 출시되었던 게임들이 적절한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것은 필자도 포함된 얘기이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큐씨보이는?
‘게임별곡’을 집필하는 한 큐씨보이는 5세에 게임에 입문한 게임 경력 30년째 개발자다. 스스로 ‘감히’ 최근 30년 안에 게임들은 웬만한 게임을 다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열혈 게임마니아다.

그는 직장인 개발자 생활 12년을 정리하고 현재 제주도에 은신 거주 중이다. 취미로 몰래 게임 개발을 한다.하루 중 반은 게임을 하며, 반은 콜라를 마시는데 할애하고 있다. 더불어 콜라 경력도 30년!

 

관련기사

저작권자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