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챔스 전석 지정 유료 좌석제 9797석 매진 "이제 당당한 스포츠"

고등학교 시절, 처음 마트에서 ‘공기 통조림’을 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제주도의 맑은 공기를 캔에 담아 판매하는 그 상품을 보며 ‘도대체 누가 살까?’라며 쓸데없이 남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공기 통조림’을 만든 사람이 중국에 갔다면 돈방석에 앉았을 것 같다. 한 달 중 5일을 제외하고 끔찍한 스모그에 시달린 중국인들이 깨끗한 공기가 담긴 통조림을 찾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 중국에서 유행한 '공기통조림' 출처=TV조선 뉴스 중
'물'도 마찬가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물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은 치킨집 사장님이 치킨버거를 사먹는 것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은 돈을 주고 사먹는 '음료수'가 아니라 당연히 기본적으로 주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화하면서 물의 위치 역시 달라지고 있다. 수영선수 박태환이 선전한 해양심층수 '블루마린'과 세계 최초로 상품화된 물인 '에비앙'과 같이 비싼 브랜드 상품들이 속속 나오면서 '물도 사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도 이제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은 하나의 음료수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게임과 e스포츠와 관계도 비슷하다. e스포츠는 분명 이름에 ‘스포츠’가 들어가며 하나의 ‘경기’로 관전을 할 만한 가치를 지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당연히 공짜’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 e스포츠는 문화라기보다는 하나의 무료 공연(?)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그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상하이 올스타전'만을 들어도 1만여석의 티켓이 4일만에 매진되었다. 경기장 인근에는 암표가 돌아다녔다.

지난 6월 15일 일산 킨텍스에서도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올림푸스 LOL 챔피언스 스프링 2013(이하 롤챔스)’은 사상 최초로 전석 지정 유료 좌석제를 실시했다. 예상을 깨고 표는 날개돋친듯 삽시간에 팔렸고, 매진을 기록했다.

▲ 2013년 6월 15일 일산에서 열린 '올림푸스 LOL 스프링 챔피언스'
온게임넷에 따르면 일산 킨텍스 현장 유료좌석 9255석은 물론, 서울 CGV 왕십리, 부산 CGV 서면, 충남 CGV 천안에서 진행되는 결승전 상영 티켓 542석도 모두 매진이었다.

티켓의 가격은 결코 싸지 않았다. 23일부터 판매한 R석은 2만5000원, S석은 1만5000원, CGV 결승전 상영 티켓은 1만6000원으로 영화 티켓(주말 1만원)보다 비쌌다. e스포츠업계는 이번 롤챔스를 계기로 “e스포츠는 공짜 공연”이라는 인식이 송두리째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도록 큰 역할을 한 것은 ‘스타크래프트’였다. 이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 LOL이다. 6월 17일 기준 게임트릭스에 의하면 LOL은 47주째 온라인 게임순위 1위로 PC방 점유율 41.74%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제는 강의실에서 친구가 사라져 “황인선 MIA(LOL 용어 Missing In A battle의 줄임말.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뜻함)요!”라고 말했을 때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사람이 10명 중 4명꼴이란 소리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롤챔스에서는 10대에서 20대 남성 팬들이 주를 이루긴 했지만, 어린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 팬도 종종 볼 수 있었다는 점. 많은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즐기고, 관심이 높아져 자연스럽게 ‘돈을 내고도 즐기는’ 당당히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공기 통조림이나 생수처럼 세상의 선입관도 언젠가는 달라진다. e스포츠가 하나의 문화로서 당당한 대접을 받으면서 이제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흔하게 보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랑 아빠랑 오랜만에 LOL경기 보러 일산에 갔다 왔다. 엄마는 CJ 팬이고, 아빠는 MVP 팬이라 둘이 시작 전부터 신경전하면서 나한테 누구 응원할 거냐며 협박했다. 결국 MVP가 3:0으로 파워 승리하고 엄마 삐져서 밥을 안해준다..."

한경닷컴 게임톡 황인선 기자 enutty415@gmail.com

 

*한경닷컴 게임톡에서는 생활 속 게임 신조어와 문화 트렌드를 매주 수요일 '황인선 기자 레알겜톡'을 통해 연재한다. 황인선 기자는 20대 새내기 게임기자이며 MMORPG와 모바일 게임을 좋아하는 열혈게이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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