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코인 클리어 신공 ‘고수’에게 비법 전수 ‘깐돌이’ 진상 추억

‘원더보이’가 출시된 것은 1987년이었다. 초등학교(현재는 초등학교) 시절 아시안게임(1986년)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곧 다가올 88서울올림픽 준비에 한창이던(1988년) 그 어중간한 즈음이다.

이 게임은 아이들에게 ‘동전 먹는 귀신’으로 불린 ‘악마의 게임’이었다. 물론, 동네에 한두 명씩 꼭 있는 ‘고수’ 님들께서는 가뿐히 원 코인 클리어 신공을 보여주셨지만, 이제 막 몬스터 랜드에 입문한 비기너들에게 원 코인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고작해야 3~4스테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필자는 어느날 우연히 끝판왕을 가볍게 즈려밟고 오늘도 내 할일의 한 사람 몫을 다해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는 미소를 날리는 고수님을 발견했다. 이후 그 고수님을 뵐 때마다 깐돌이(그 당시 50원에 팔던 엄청 맛있는 불량튀김과자)를 진상하며 제발 비법을 전수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기를 삼고초려 이상이었다. 그런 뒤에야 고수님로부터 전설의 원 코인 클리어 비법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트레이닝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고수님께서 원 코인 클리어하는 시범을 마칠 때까지 뒤에서 조용히 지켜봐야 했다.

고수님께서 여흥을 즐기시는 그 자금 역시 본 필자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었다. 고수님께서는 여유롭고 느긋한 플레이를 즐기는 취향인지라 끝판왕인 드래곤을 만나게 될 때까지는 적어도 2~3시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한 번 클리어 한 뒤에는 필자가 기억을 되짚어 가며 복기하듯이 한 칼 한 칼 정성스러운 칼질을 날리며 버섯돌이들을 상대하곤 했는데, 어느 정도 중급 코스 이상 진입하기 전까지는 상당히 많은 양의 동전이 필요하게 되었다.

TV나 신문에 가끔 등장하는 유흥비마련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얘기가 필자의 얘기가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만, 급기야 필자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유년시절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법한 가정 내 절도 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다.

당시 필자의 집에는 조그만 금고(저금통)가 있었고, 그 금고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하루에 100원씩만 꺼내서 쓰라고 지령을 내려 주신 상태였다. 처음 한 동안은 착실하게 하루에 100원씩 꺼내서 깐돌이(50원)도 사 먹고 상어바 아이스크림(그 때는 50원)도 사 먹곤 했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필자의 굳건한 믿음으로 이루어진 용돈 지급 수단이었던 ‘상호신용금고’의 신의는 이놈의 원더보이 때문에 깨지게 되었다.

자꾸만 필요해진 동전의 수만큼 100원만 꺼내가는 척 하며 200원을 꺼내가게 되었고, 어느새 그 동전은 한 움큼을 쥘 만큼으로 불어나 있었다. 얼마 안 있어 그 절도 사건은 발각되게 되었다. 이상하게 금고에 동전이 급격한 실종을 보이자 의문을 품은 어머니께서 필자가 동전을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지켜보고 계시다가 “자 이제 네 손에 있는 동전을 보여봐“하셨던 것이다.

그 때의 세상이 무너지고 정신이 막 육체에서 분리되려는 것을 간신히 안간힘을 써서 붙잡고 있던 자아 붕괴의 직전의 심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곧 다가올 강스파이크 등짝 후리기 신공과 함께 빗자루 아이템을 장착하고 몹 때려잡듯이 빗자루를 휘두르는 어머니를 예상했던 필자의 두려움과 달리 어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며, 필자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셨다.

‘아.. 내가 맞을 곳은 집이 아닌가 보다.’

필자의 예상과 달리 어머니와 함께 도착한 곳은 동네에 있는 교회였다. 어머니는 조용히 목사님에게 이놈이 이런 저런 일을 해서 교회에 데려 왔습니다. 라고 하셨고, 그 뒤로 나는 교회에 나갈 때마다 가정 내 절도 사건의 전과범으로 모두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가며 한 동안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원더보이를 원 코인으로 클리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필자는 회개를 마치고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다.

원더보이 – 시작화면
“띵기로디로딩”(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표현했다고 자부한다) 하는 저 동전 먹는 소리가 어찌나 경쾌한지 50원짜리 동전이 빨려들어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사운드 작업한 개발자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당신 때문에 내가 교회에..).

게임을 처음 시작하게 되면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하는 ‘타타타’ 노래처럼 진짜 알몸으로 팬티 한 장 걸치고 시작하게 된다(그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대발이 기억하시는지?).

게임 진행은 기본적으로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것으로 ‘횡 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본 게임은 단순히 액션만 있는 것이 아니라 RPG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필자가 이 게임을 즐기던 국민학생 당시에는 RPG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알 수 없던 때이기도 했지만, 무언가 기존의 쏘고 부수기만 하는 게임과는 다르다는 느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액션 게임이지만 RPG적인 요소가 녹아있는 ‘천지를 먹다’ 게임이나 ‘던전앤드래곤’ 같은 게임을 즐겨 하곤 했다. 아마도 필자에게 액션RPG 게임들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시작이 바로 이 원더보이 게임이 아닐까 생각된다.

원더보이-미친듯이 흔들어!
이 게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스테이지 곳곳에 거액?의 돈 자루가 나오는 곳들이 숨겨져 있고 때로는 동전 하나가 돈 자루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는 곳도 있다. 물론 해당 위치에 가서 점프만 해도 돈을 받을 수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점프하면서 미친 듯이 레버를 좌우로 흔들곤 했다(그래야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인류 문명에 꽤나 세속적으로 적응을 한 탓인지 이 게임의 주인공은 돈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 푼 두 푼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장비를 꾸준히 업그레이드 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너무나 어려운 정도를 떠나서 클리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동하는 중간중간 혹시? 여기도? 하는 기대감에 점프하며 레버를 좌우로 흔들어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원더보이-미친듯이 흔들어!
특정 지역에서는 이렇게 돈 자루가 나오기도 한다. 돈 자루를 찾아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는데, 돈 자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저렇게 고액의 인센티브를 받게 되면 뛸 듯이 기쁜 마음이 들게 된다.

물론 게임의 기본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에 있다기보다는 한 칼 한 칼 장인의 정신으로 칼질을 해서 몬스터들을 무찌른 뒤에 획득하게 되는 동전들을 차곡차곡 모아야 하는 저축정신에 기반한다.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원더보이-신발의 소중함
그렇게 어렵게 얻어 낸 돈을 모아 이렇게 신발도 사고 방패나 갑옷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시켜줘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참고로 더 좋은 갑옷이나 방패를 사기 위해 돈 아낀다고 싸구려 신발을 신었다가는 용암지대에서 미끄러져 화상에 몸부림치다 하트(생명력)가 하나씩 떨어져 결국 천사고리를 머리에 달고 하늘나라로 가는 주인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더보이-방패 없으면 힘들어
반대로 무리하게 좋은 신발 산다고 방패도 못 사고 비싼 신발 신었다가는 폼 나는 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화살 쏘는 도깨비 때문에 화살을 몸으로 받아내던가 점프하면서 피해가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나마도 오래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적절한 자본 분배를 배우게 해 주는 투자 경제원리를 깨우칠 수 있다(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라).

참고로 필자가 국민학교 마지막 학년을 장식하고 중학교로 올라갈 때 정도에 우리나라에는 ‘드래곤볼’ 만화가 이미 한 번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고 그 자리를 ‘슬램덩크’가 차지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당연히 질풍노도(다른 말로 논리적 판단의 가치 기준 상실시대)의 우리들은 부모님에게 쌀 몇 가마니 살 정도로 고가품이었던 농구화를 사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실제로 한 반에 50~60명 정도였던 중학교 시절 농구화를 신지 않은 친구는 같은 반 아이들과 어울리기에 뭔가 자신감도 안 생기고 세상이 나를 버린 것만 같은 우울함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으로 치면 반 친구 모두 스마트 폰 들고 다니면서 SNS로 재잘재잘 잘도 노는데, 나만 휴대폰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도 몇 달을 조르고 졸라 결국 농구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그 뒤로 가정 경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훗날 알게 되어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이 게임을 지금도 가끔 꺼내보곤 하는데, 게임에서 신발을 살 때마다 필자의 농구화 사건이 오버랩 되어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참고 : 새로 산 농구화를 밟아주는 행위는 ‘슬램덩크’에 묘사되는데, 발목 부상 등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팀원을 위한 좋은 의도로 설명되긴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새로 산 농구화를 밟는 행위는 거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악행으로 인식되었다(우리는 농구선수가 아니니까).

원더보이-칼 업그레이드
원더보이 게임에서 특이한 점은 신발이나 방패나 갑옷, 투구 등은 돈을 주고 사야 되지만, 정작 게임 진행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아이템인 ‘칼’ 은 중간 보스들을 없애야 받을 수 있다. 물론 중간에 그냥 얻을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게임 전체에서 칼을 획득하기 위한 조건은 보통 보스를 무찔러야 획득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칼이 없다고 주먹으로 칠 수 있게 되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중간 보스들을 무찌르는데 왜 다음 보스를 무찌르기 위한 ‘칼’을 주는 것일까?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지난날의 악행을 회개하고 세상에 악을 무찌르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칼’을 내어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필자가 교회에서 회개했던 심정으로..).

원더보이-본격 예의범절
원더보이 게임을 하다 보면 비록 무찌를 대상이지만 문 앞에서 노크하는 예의를 잊지 않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노크하지 않으면 입장 할 수 없게 되어있다. 무찌를 대상에게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원더보이-특수무기
이 게임의 특징으로 볼 수 있었던 RPG적인 요소. 기본 무기 이외에 별도의 특수무기도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돈이 남아 도는 경우에 한해서지만.. 꼭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중간 중간 몬스터들을 무찌를 때 아이템을 선물로 주기도 하는 배려가 돋보인다. 특수무기를 레버를 아래로 당기면 발동하게 되어 있는데, 보스전을 위해 아껴두었던 특수무기가 가끔 레버조작의 섬세함을 잃고 발사되었을 때의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최종 보스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고 끝이 없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은 언젠가는 다 하게 되어 있는 법. 언젠가는 대망의 끝판왕 최종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가는 여정 내내 미로와 퍼즐 같은 요소들이 있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길을 잃고 헤매는 적도 많은데 이 게임은 모래시계라는 시간 제한 요소가 있어서 모래 시계 하나가 다 비워질 때쯤에 새로운 모래시계로 바뀌게 된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생명력(하트) 하나를 소멸하게 된다. 경치 좋다고 여기저기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는 생명력을 잃게 되는 불우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생명력은 스테이지 중간 중간 아이템 샵 에서 살 수 있다. 또는 병원에 가서 돈을 지불하면 꽉 채워주기도 하는데, 처음 이용했던 금액에서 계속해서 비싼 값을 내야 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는 한 병원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간혹 돈 자루와 같이 특정 지역에서 점프 하며 레버를 미친 듯이 흔들면 구할 수도 있는데, 이 때 하트를 먹는 사운드 또한 경쾌하다.

원더보이-끝판왕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마지막 스테이지에는 무시무시한? 끝판왕 드래곤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동안 고이고이 모아 둔 특수무기를 모두 쏟아 부을 때다. 어렵게 어렵게 드래곤을 물리쳤다는 기쁨도 잠시. 곧 드래곤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이 부분은 아직 이 게임을 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꼭 엔딩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겨두기로 하겠다.

원더보이-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사실 원더보이는 지구인이 아니었다는 설정 또한 신선하다. 그런데, 뭐하러 지구까지 와서 그 고생을 하다 갔는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지구를 구해냈다는 거룩한 사명감에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지만, 기쁜 마음으로 홀로 귀가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그런 것이 영웅의 숙명 아니겠는가?

필자의 잡소리
원더보이에 대한 유년시절 추억이 남다른 필자에게 언젠가는 다시 즐겨보고 싶은 마음으로 주문 했던, ‘원더보이’ 게임 팩.. 하지만, 도착한 것은 필자가 기대했던 원더보이 몬스터랜드 게임이 아니라 스케이드 보드 타는 원더보이. 지금은 창고 어딘가에 고이 잠들어 있다(물론 이 게임도 재미있다).

원더보이-또 다른 원더보이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큐씨보이는?
‘게임별곡’을 집필하는 한 큐씨보이는 5세에 게임에 입문한 게임 경력 30년째 개발자다. 스스로 ‘감히’ 최근 30년 안에 게임들은 웬만한 게임을 다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열혈 게임마니아다.

그는 직장인 개발자 생활 12년을 정리하고 현재 제주도에 은신 거주 중이다. 취미로 몰래 게임 개발을 한다.하루 중 반은 게임을 하며, 반은 콜라를 마시는데 할애하고 있다. 더불어 콜라 경력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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