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시절 1년 내내 '푹', 삼국지2와 다른 전투맵 환호 '성보다 길목'

‘삼국지2’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에 뜬금없이 유럽을 배경으로 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하나 나왔다. L'EMPEREUR(랑펠로)라 불린 게임이다. 기존의 코에이(KOEI)는 주로 중국이나 자국(일본)의 역사를 다룬 게임을 많이 만들던 회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유럽 얘기를(그러고 보니 ‘대항해시대’도 유럽쪽 얘기구나)...

실제 이 게임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삼국지2’에 빠져있던 친구들에게는 동양의 얘기보다는 다소 버터 바른 빵 냄새 나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는지 주변에 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본 필자에게 역사를 다룬(고증 문제를 떠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꼽으라면 역시 ‘랑펠로’를 주저없이 꼽는다. 일단 얼마나 이 게임에 빠져 살았는지 필자는 중학교 시절 처음 이 게임을 접하고 거의 1년을 '랑펠로'만 하면서 살았다. 다행히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얘기는 온통 ‘랑펠로’ 얘기였다.

랑펠로 흉내내다 하키부에 도발했다 ‘죽사발’

우리 둘이 얼마나 ‘랑펠로’에 빠졌는지 세상 모든 일이 다 ‘랑펠로’에 빗대어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뛰는 하키부 녀석들에게(당시 우리 중학교에는 필드 하키부가 있었다) ‘네 놈들은 훈련이 모자라구나!’하면서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다.

정말 좁쌀보다 조금 큰 돌멩이었을 뿐인데, 우리에게 날아든 하키 공(퍽 이라 부르는 아이스 하키와는 모양이 다르다)이 얼마나 인체에 큰 손상을 주며 위험한 물건인지 깨닫게 되었다 (따로 체육실에 불려가서 하키부 선배들한테 온몸 터치를 당한 일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이 놈의 ‘랑펠로’ 게임만 생각하면 아직도 그 때 맞은 자리가 쑤시는 듯하다.

랑펠로 초기화면
‘랑펠로’는 익히 아시다시피 나폴레옹을 주인공으로 한 유럽 재패의 꿈을 담고 있는 사나이의 로망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처음 시작하게 되면 4개의 시나리오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시나리오라고 한다면 등급이 제일 낮은 일반 사령관 시절의 나폴레옹 이야기다(쉽게 얘기해서 쫄 사령관이다).

처음부터 황제로 시작하면 재미가 없지. 하급 사령관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전체 46개의 유럽 도시 중에 프랑스는 5개만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현재의 유럽 지도와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각 국가의 위치는 이 게임을 하면서 달달 외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후에 고등학교 진학시 세계사 시간에 큰 도움이 된다).

랑펠로-국가 조약 상태
“국가들간의 조약이 기존 전략시뮬레이션과 차별점”
‘랑펠로’는 기존의 전략 시뮬레이션과는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저 국가들간의 조약 상태다.

기존의 게임들이 단지 적대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었다면 이 게임에서는 한 가지 중간적인 입장의 모드가 추가되어 ‘우호 상태’의 계약이 가능했다.

우호 상태는 '현재 너랑은 굳이 싸울 이유가 없어서 그냥 웬만하면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데 기분 나쁘게 하면 확 쳐들어 갈 수도 있다' 는 의미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실제로도 우호 조약 맺어놓고 다음 달 쳐들어오는 인간성 없는 AI를 경험 할 수 있다). 물론, 하급 사령관에게 저런 국가 명령을 내릴 권리는 없고 나중에 진급하고 높이 올라 제1집정관 또는 황제가 되면 내릴 수 있다.

이 게임의 또 다른 특징은 사령관, 상급(최고) 사령관, 제1집정관, 황제의 4단계로 신분이 상승하면서 내릴 수 있는 명령도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사령관 시절에는 군인(병력)이나 대포(무기) 또는 식량(물자) 등을 중앙 정부에 구걸하다시피 매달 메뉴를 실행해도 실제 도착하는 건 얼마 되지 않거나 묵살되기 일쑤다. 그에 대한 앙갚음은 나중에 본인이 제1집정관 이상 되면 다른 도시들의 요청에 국고가 비든 말든 막 퍼주면 된다.

요청하는 입장과 관리하는 입장 두 입장의 사이에서 서운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국가 전체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 된다는 것에서 이 게임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1집정관 이상이 되면 전쟁(전투)도 물론 잘해야 하지만, 인접 국가와의 조약 상태나 동맹 관계 및 배후 관계 그리고 점령한 도시들의 처우개선(세금 혜택이나 물자 제공)에도 힘써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단지 피로 정복한 땅에 큰 의미를 찾기 힘들 것이다. ”

인접 국가(성)를 점령하면 크게 반감 없이 단일 세력이 될 수 있었던 기존의 삼국지 게임에 익숙했던 필자에게 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은 꽤나 신선한 주제였고 이 게임에 빠져들게 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랑펠로-전투 화면
“‘삼국지2’ 등 기타 전략 시뮬과 다른 전투맵”
또한 이 게임 차별점은 전투 맵에 있다. 동시대에 출시됐던 ‘삼국지2’나 기타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바로 저 전술적인 활용이 가능한 지형 요소가 ‘랑펠로’ 게임의 전투 맵의 특징이었다.

산(Mountain)도 1단계부터 5단계까지 보병이 넘을 수 있는 산, 보병이 넘을 수 있지만 이동이 오래 걸리는 산, 보병이 넘을 수 있지만, 기상이 악화되면 이동이 불가능한 산, 어떠한 경우에도 넘을 수 없는 산(그런데 나폴레옹은 알프스도 넘었다던데?)으로 나뉘며 평지 역시 일반적인 평지와 늪지대로 나뉘고 포병이 늪에 빠졌다가는 적의 기마대에 의해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바람이라는 요소가 등장한다.

‘삼국지’에서 바람의 영향이라고 하면 주로 화계(불)를 이용할 때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작용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병과 중에 ‘포병’이라는 병과가 있어서 바람의 영향에 따라 포탄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폭설이나 폭우가 내리는 날에는 사정거리가 제한되거나(사거리가 짧아짐) 아예 발포가 불가능할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기본 병과인 보병, 포병, 기마대를 얼마나 적절히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투의 승패가 결판나기 때문에 병과의 운용 및 지형과 자연의 이용을 하면서 전투를 벌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져들게 하였다.

특히 포병은 긴급할 경우 포를 버리고 보병으로 전과할 수 있다. 이 경우 훈련도가 떨어져 전투에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포병이 포를 버리는 경우는 최후의 선택인 것이다. 훈련도나 사기에 따라 적의 공격에 견디는 정도가 달랐다. 지속적인 공격을 당하며 사기가 떨어지면 유닛 위에 해골 마크가 뜨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하면 멘붕(멘탈붕괴) 상태가 된다. 이 멘붕 상태에 빠진 보병이나 포병은 기마대의 먹이가 된다. 기마대의 중앙돌파 육탄 돌격 앞에 쭉쭉 빠지는 병력 숫자를 바라보는 지휘관의 심정은 등골이 오싹할 만큼 진땀나는 순간이다.

또한 일부러 적은 병력으로 침입하여 적을 아군 가까이로 유인하되 지형에 강이 있고 다리가 건설 된 곳으로 집결한다. 그 다리 위에 적군이 올라서는 순간 일제 포격을 가하면 다리가 붕괴되며 적군은 그대로 수장되어 버린다. 물론 이 때에도 훈련 잘 하기로 유명한 프러시아 육군의 경우 상당수가 뭍으로 올라가 생존하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 겨울에는 강이 얼어 붙어 강 위로 이동할 수도 있다. 이 때에도 역시 위와 같이 적군을 유인해서 포격으로 얼음을 깨트리고 수장 시키는 전법을 사용할 수 있다. 국가 및 도시에 따라 전쟁을 해야 할 계절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진흙탕(늪)이 많은 곳에 여름철에 쳐들어갔다가는 움직이기도 전에 적의 포격을 맞고 역시 멘붕 상태에 빠져 피눈물 나는 후퇴를 하게 될 것이다.

랑펠로-장군의 능력치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실존인물 바탕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거의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다. 각 장교들의 능력치 또한 정해져 있다. 특히 지원사격이 가능한 포병 병과를 맡기기 위해서는 캐논(Cannons) 등급이 A 등급인 장교를 선임해야 하는데, Cannons 능력이 C등급 이하인 장교를 “믿음” 하나로 믿고 맡겼다가는 아군 머리 위에 떨어지는 포탄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자식아 그만 쏴!!’

A급 장교는 확실히 A급의 역할을 한다. Cavalry 능력치는 기마대 장교로서의 능력치다. 특히 Build 능력치는 공병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다리는 건설하거나 부시는 역할도 수행하며 종종 긴요하게 쓰이는 기능이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바람을 등지고(포탄의 사거리 및 명중률에 영향) 비교적 좁은 길목의 지형으로 적군을 유인하여 원거리에서부터 포격을 하고 보병이 앞에서 포위하여 일제 공격을 시도 한 다음에 기마대로 마무리 소탕을 하는 작전이야 말로 이 게임에서 구사하는 전술의 핵심이며 묘미다.

랑펠로-전투 시작
이 게임에서 특이한 점 중에 또 하나가 있다면 바로 화면 분할이다. 전체 유럽지도를 한 눈에 보기 어렵기 때문에 (물론 국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제1집정관이 되면 전체 지도를 볼 수 있다.)이렇게 4분의 1씩 잘라서 보여준다. 동유럽, 서유럽, 북유럽, 등 달라지는 위치에 따라 배경음악도 달라지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지금 보이는 화면에는 터키가 보이는데, 왠지 터키에 가면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음악이 나온다.

랑펠로-패배
‘성’ 단위 삼국지과 다르게 ‘길목’이 중요

‘삼국지’와는 또 다른 점을 꼽자면 이 게임의 지형은 도시를 기반으로 한 가도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성(주) 단위의 ‘삼국지’와는 다르게 ‘길목’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전략적으로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계선을 아무렇게나 가져가서는 긴 보급선으로 인한 보급의 실패로 전체적인 국가의 존망까지 위협받게 된다.

 예를 들어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길목 중에 스페인과 프랑스의 유일한 지점인 29번 도시는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곳이다. 29번 도시를 침략당해서 빼앗길 경우 프랑스 전체의 도시가 위협받게 된다(이런 경우는 사실 거의 없었다).

반대로 45번 도시를 점령한 후에 무턱대고 44번이나 42번까지 싸움을 했다가는 배후의 46번 도시나 43번의 침략을 받아 패퇴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스페인의 점령 성공은 45번을 점령한 후에 46번을 점령하고 가능한 서부전선의 모든 병력을 45번 도시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41번, 44번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지킬 수 있다. 스페인의 경우는 게릴라 활동이 있어서 보급을 보내도 중간에 약탈되기도 한다. 물론 이 ‘약탈’이라는 단어조차 침략국임과 동시에 승리국의 입장에서 쓰인 단어일 뿐이지만.

이 게임은 도시로 이어지는 가도전의 요소와 각 국가 간의 동맹 관계 및 배후 세력을 신경써야 한다. 단지 육상 전투만이 아닌 해상을 통한 보급을 위해 재해권을 독점해야 한다(항구 도시 투자). 그리고 공장 투자를 통해 중요 전쟁 물자인 대포 생산을 하는 등의 전략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장교들의 능력에 맞춘 병과 운용 및 지형의 이용을 통해 전술적인 면을 구사해야 한다. 이런 게임 시스템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재미를 느끼기에 더 이상 부족하지 않는 매력적인 면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필자는 중학교 1년을 ‘랑펠로’를 위해 헌신했다.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필자의 잡소리
‘삼국지2’ 이후 3편이 나오고 4편이 나오면서 필자는 계속해서 ‘랑펠로’ 역시 2편, 3편으로 시리즈화되기를 고대했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징기스칸’ 시리즈나 ‘삼국지’ 시리즈, 일본 역사 시리즈는 계속해서 만들었으면서 정작 유럽 쪽에 대한 얘기는 ‘대항해시대’만 시리즈로 출시되었다.

전술적인 전투를 묘사하는 것에서는 ‘삼국지’ 시리즈에 비해 월등히 앞서있는 게임이다. 신분(등급)에 따라 고민해야 될 것도 해결해야 될 것도 달라지는 입장의 차이도 배울 수 있는 멋진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한경닷컴 게임톡 큐씨보이 기자 gamecus.ceo@gmail.com

큐씨보이는?
‘게임별곡’을 집필하는 한 큐씨보이는 5세에 게임에 입문한 게임 경력 30년째 개발자다. 스스로 ‘감히’ 최근 30년 안에 게임들은 웬만한 게임을 다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열혈 게임마니아다.

그는 직장인 개발자 생활 12년을 정리하고 현재 제주도에 은신 거주 중이다. 취미로 몰래 게임 개발을 한다.하루 중 반은 게임을 하며, 반은 콜라를 마시는데 할애하고 있다. 더불어 콜라 경력도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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