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교수, 미국을 플레이하다(5): 첫집 구하기 퀘스트

최적의 ‘게임월드’(미국 도시)’를 찾아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뉴욕, 피츠버그, 애틀랜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찍고, 로스앤젤레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션을 위해 “미국서 첫집 구하기” 퀘스트 착수!

“현재, 필자는 미국에 5년째 거주하면서, 특별히 크게 성공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40대의 가장입니다. 본 연재는 가급적 사실에 기반을 둔 자전적 에세이이며, 미국을 옹호하거나 동경을 주기 위해 쓰여진 글이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거명되는 미국의 유명도시들은 모두 아름답고 살고 좋은 곳임에도, 필자 개인과 가족들의 여건만을 고려하여 작성된 점을 양해바랍니다.”

미국 게임월드 공략,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온라인 롤플레잉게임(RPG)을 처음 시작할 때, 어떤 게임월드(어떤 게임서버 혹은 게임채널)에서 어떤 캐릭터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재미와 방향이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행을 결심하고 필자는 미국의 어느 지역에 어떤 플레이어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것도 없던 것 같지만, 당시에는 정말 오만 가지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되도록 미국 정착 성공률을 높이고 싶은 심리도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내가 정말 어떤 도시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까?’, ‘가족들에게 최대한 적응을 잘 할 수 있을 곳이 어떤 곳일까?’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이었다. 기왕이면 미국이라는 거대한 게임에서 어떻게든 생존을 해야만 제대로 플레이도 하고 레벨도 높이고 포인트도 쌓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최종 미션을 완수할 수 있으니, 최적의 ‘게임월드’(미국 도시)’를 찾아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주로 직관에만 의존하여 정착할 미국의 도시에 대해 고민하고 따졌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게임(게임화)의 핵심 4요소’ 기반의 분석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겠다. 즉, ‘판타지, 호기심, 도전, 컨트롤(Fantasy, Curiosity, Challenge, Control)이 바로 그 4요소이다(이 ‘게임의 핵심 4요소’는, 필자의 주요 연구 분야인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의 2012년 논문 ‘Dynamical Model for Gamification of Learning’의 주요 골격을 이루며, 1987년 Malone과 Lepper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음. 이 요소들에 대한 자세한 정의와 설명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며, 기초적인 개념만 차용함).

미국 동부 뉴욕에서 서부 실리콘밸리까지…

미국에서 과연 어느 지역에 터전을 마련할 것인가? 우선, 한 번쯤은 가봤던 곳들이었거나,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을 떠올렸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도시라는 뉴욕, 벤처기업의 산실 실리콘밸리가 인접한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할리우드와 천사 땅 LA, 그밖에 시애틀, 애틀랜타, 피츠버그 등을 후보로 삼았다. 당시엔 각각의 도시들에 대해 갖가지 변수들을 가지고 두서없이 분석하였지만, 이젠 게임의 핵심 4대 요소인 ‘판타지, 호기심, 도전, 컨트롤’을 반영해봤다. 혹시 미국 행을 고려 중인 독자들이라면, 본인에 최적인 플레이 장소를 택함에 있어, ‘판타지, 호기심, 도전, 컨트롤’ 요소들도 고려하여 유용한 잣대로 쓰이길 바란다.

1. 뉴요커가 되어 맨해튼을 누빈다?

먼저 뉴욕의 삶을 상상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뉴요커를 꿈꾼다(이제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뉴욕에서 10년 이상을 살아야 뉴요커라고 불린단다). 맨해튼을 누비는 성공한 기업가로 세계최고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간다! 멋지다. 판타지 요소는 분명 강했다. 그런데, 필자는 추위가 너무 싫다. 안타깝게도 겨울철에만 뉴욕에 가서인지는 몰라도, 뉴욕의 매서운 칼바람 추위와 최악의 주차 위반(하루에 3건의 주차위반 티켓을 받은 적이 있음)을 경험한 필자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서는 판타지와 호기심이 강한 반면, 컨트롤이 쉽지 않은 도시였다.

2. 피츠버그에서 앤디 워홀을 닮아볼까나

피츠버그도 사실은 땡기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상당기간 체류한 경험도 있어 필자에겐 컨트롤이 비교적 용이한 도시였다.

필자가 연수를 받았던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분야의 연구를 더 하고 싶기도 했다. 게다가 그곳에 사는 유학생들과 현지 플레이어들에 의하면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크지 않은 도시지만, 그림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앤디 워홀 박물관도 있고, 자연사 박물관에 사이언스센터까지 있어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쪽 역시 너무 춥기도 하거니와 그 후로도 두어 번 더 출장으로 그곳을 찾았는데 초기 미국플레이어의 눈에는 도전 퀘스트가 꽤 많았다. 무엇보다도 변변한 한식당(당시에는 한국식당 1곳이 있었는데, 어림잡아 메뉴는 100여 가지이지만 맛은 똑같았다)이나 마트는 기대할 수도 없어, 한식 먹거리를 중요시하는 우리 가족들에겐 적응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처럼 한식 식탐(?)이 많은 초기 이민자에겐 추위와 식단에 대한 ‘챌린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3. 생활비 착한 애틀랜타도 끌리는데…

다음은 애틀랜타. 그나마 뉴욕, 피츠버그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 렌트비가 상당히 착한데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리가족과 잘 맞을 것 같기도 했다. 그곳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어서 몇 번 들렀기에 비교적 익숙하고, 한인마트와 한식당이 제법 많이 있어서 제일 끌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아이교육을 위해서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는 친구의 말에 마음을 접었다. 교육환경이 미국 내에서 거의 제일 바닥 수준이란다. 친구도 직장 관계로 그 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리 탐탁하진 않아했다. 컨트롤은 용이할 수 있겠지만,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4. 시애틀의 잠 못드는 밤은 어떠려나…

시애틀도 강력한 후보지였다. 특히 시애틀 예찬론자들에 의하면, 미국 어느 주를 돌아보다가도 시애틀에 들어서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자랑이 넘친다. 사실 필자도 그 말에 혹하긴 해서 여러 번 고민을 거듭했다. 밴쿠버에 살던 친 형님 가족에 의하면, 시애틀은 밴쿠버와 기후도 많이 비슷하여 기후가 좋은 편이지만, 우기 동안에는 거의 매일 흐리거나 비가 오기 때문에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그곳보다는 실리콘밸리에서 ‘미국에 제대로 도전하라’며 격려했다. 스타벅스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있어 약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서바이벌을 위한 일자리와 비즈니스를 컨트롤하기에는 쉽지 않은 곳 같았다. 실제로 지금도 이곳의 젊은이들은 캘리포니아나 뉴욕으로 일자리와 미래를 찾아 나서고 있다.

5. 실리콘밸리에서 대박 벤처의 꿈을…

친형의 말대로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이번엔 업무상의 ‘출장자’가 아닌 ‘예비 거주민’이자 ‘플레이어’로 실리콘밸리 일대를 돌아봤다. 렌트비며, 생활비와 아이학교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들을 하나씩 종합해갔다. 그곳의 현지 플레이어들에게 실리콘밸리의 면면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대여섯 번의 출장경험과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하나씩 분석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긍정적이지만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려졌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여파에 따른 미국 경기 악화가 최악으로 치닫을 때여서 그랬을 게다. 치솟는 물가와 렌트비, 부담스런 인건비 등으로 한국에서 탄탄한 자본이 받쳐주는 구조가 아니라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라고들 입을 모았다.

언론에 비친 실리콘밸리의 성공담 이면에는 수많은 현지의 대다수 플레이어들의 아픔과 통곡이 따르는 곳이라고도 했다. 성공에 대한 판타지와 호기심은 최대치일지는 모르겠지만, 생존을 위한 최고 난이도를 보이는 ‘도전’의 땅 실리콘밸리. 그럼에도 기왕에 시작하는 미국 생활일 바에야 좀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에서 뼈를 묻어볼까 하는 생각도 강했지만, 자녀 교육과 ‘게임비즈니스’를 위해서는 LA 쪽이 훨씬 확률이 좋을 것이라는 선배 플레이어들의 추천도 귀담아들었다(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다가 LA 부근으로 이전해오는 게임회사들이 꽤 여럿이다).

6. 가자 LA로!

LA로 마음을 정하고 난 뒤에, 속도를 냈다. 그간에 취합한 노하우와 발품으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LA 근교 캠퍼스로부터 I-20(입학허가서)를 받아 5년짜리 미국 학생비자(F1) 득템. 한국 생활도 하나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살던 집도 내놓고, ‘카더라’ 통신에 의존해서 ‘미국에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주섬주섬 사들이며 미국 행 준비를 해나갔다.

실전 ! 미국서 집 구하기..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삿짐을 부치면 대략 2~3주가 걸리기에 대략 1개월 전에 미국에서 거주할 집을 구해야 했다. 출장 때 자주 묵었던 호텔에 이번에는 ‘미국에서 처음 집구하기’ 퀘스트를 위해 투숙했다.

도착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다니게 될 대학교 캠퍼스 주변을 찾았다. 학교에 제출할 서류도 있고, 학교 주변에 집을 구할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소개 받은 대학교직원에게 서류를 건네고, 인근의 집들을 안내받았다. LA도심에서 멀기도 하거니와 가족들이 쉽게 적응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필자가 한국에도 몇 개월씩 나갈 경우에는 더욱 난감해서 몇 집을 돌아보다가 LA 숙소로 돌아왔다.

이튿날, 여기저기서 취합한 미국생활정보와 미국 현지에서 알게 된 플레이어들 조언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차근차근 ‘미국 첫 집 구하기’ 퀘스트에 돌입했다.

일간신문의 생활정보 섹션이 제일 믿을 만하다고들 했다. 신문과 LA지도를 펼쳐 들었다. 이전의 미국’출장자’나 ‘여행자’로서가 아닌 미국 '거주자'가 되려는 첫 관문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대체 어디서 집을 구할 것인가?

우선, K-Town 부근부터 물색 시작

K-Town에서 제일 학군이 좋다는 3가(3rd street) 근처 2층 집을 시작으로, 웨스트 LA(West LA)의 콘도와 미국 LA 올림픽 선수촌이었던 ‘팍 라브레아(Park La brea) 아파트’ 등을 구석구석 돌아보기 시작했다(미국의 집 구조와 종류들은 다음에 자세히 다루겠다).

이런저런 집도 둘러보고 K-Town에 사는 현지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K-Town은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에는 그다지 만족할 만한 환경은 아닌 것 같았다. LA 다운타운에 가까워서 일자리도 많고 편리하여 결혼 하지 않은 싱글족이나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제격이지만 우리 가족에는 최적의 장소는 아닌 듯싶었다.

다음날부터는 LA 북동쪽 근교로 차를 몰았다

다녀야 할 대학교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고려해, 패서디나, 라크라센터, 글렌데일 등을 돌아봤다. 달려간 각 도시도시마다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애썼다. 빈 집을 알리는 간판 ( Rent 혹은 Lease)를 보면, 용기를 내어 전화도 해보고, 직접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도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시도하기를 몇 번. 하지만, 맘에 꼭 드는 집과 주변환경 그리고 아이 학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우연히 교회에서 만나게 된 한 분으로부터, 수십 년간의 이민담을 듣고, 많은 상념에 울컥해지기까지 했다. 이제 처음 집을 구하러 나온 우리가 저 분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미국생활에 아주 유용한 이야기를 많이 건네주시고는, 끝으로 ‘아이가 아직 어리면, 오렌지카운티 쪽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봐요'라며 용기를 주었다.

미국까지 나가서 한국인들 많은 곳에서 굳이 살아야 하나?

한국에서 듣기로, 오렌지카운티에는 한국인들이 정말 많다고 들었던 지라 고려 대상에서 완전 제외되었던 지역이다. 그래도, 한 번 들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다음날 오렌지카운티로 향하기로 했다.

오렌지카운티로 눈을 돌렸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신흥주거지 각광받고 있다는 요바린다였는데, 너무 황량한 느낌인지라 금세 방향을 바꿨다. 치안상태가 좋고, 학군이 좋다는 곳 위주로 차를 몰았다. 용케도 그런 곳은 모두가 한국계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트나 식당, 교회나 성당을 제외하고는 한국 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걸어다닐 일이 극히 드문 미국 땅이라 더 그렇다.

오렌지카운티의 주요 도시들인 플러튼, 얼바인, 세리토스, 사이프레스 등등의 수도 없는 집을 둘러보았다. 결국, 우리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에 있는 35년이 넘었다는 집으로 결정했다.(이제는 40년이 다되어가지만, 외관도 그렇고 내부도 사는데 별 문제가 없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네를 매일 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꼭 들었다. 더욱 맘에 드는 것은 매일 아침 상쾌한 숲내음이 난다고 했다. 미국살이 첫 집구하기 퀘스트 완료.

어설픈 틈입자와 불청객 사이의 불균형의 아슬아슬함을 즐기면서 미국에서 살아나기 위한 이방인의 삶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쉐퍼드 대학 게임전공 교수 game3651@gmail.com

김정태 교수 프로필

1995~1999 삼성전자㈜ 게임 프로듀서 (게임/멀티미디어 타이틀 300여편 기획/개발/마케팅)
1999~2002 ㈜ 디지틀조선일보 비즈니스팀장/사업부장(게임조선 웹진 창간, 월간 게임조선 창간)
2002~2005 청강대, 한국산업기술대,상명대,서울디지털대 게임전공 겸임교수 역임
2005~2006 지스타 국제게임전시회 총괄부장 (문화부 장관상 수상)
2007~2008 하이원리조트 문화콘텐츠 TF팀장(Director)
2008~ 현재 미국 Game In USA, Inc 대표 (게임퍼블리싱/마케팅)
2012~ 현재 미국 쉐퍼드 대학교(Shepherd University) 게임전공교수( Game Art &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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