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 조승희의 슈팅게임 진짜 표적은?

나는 혼자 있기를 즐긴다. 가끔 혼자 여행도 가고, 홀로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탄다. 마흔이 넘었음에도 홍대 앞 클럽을 순례하기도 한다. 영화관·찜질방에 혼자 갈 때가 있고, 홀로 게임을 하기도 한다. 술을 혼자 못 마시는 것만 빼면 혼자일 때 나는 진짜 행복하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내가 딱 조승희 같은 외톨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행·등산·라이딩·음주·클럽 잠행에 친구랑 동행할 때가 훨씬 많다. 떼거리로 술집을 전전하다가 조간 신문이 배달(외박의 기준)되고 난 후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타박받은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가 유행이란다. 병적 외톨이로 선·후배 및 동기와 단절돼 홀로 인터넷 등에 빠져 지내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로 마니아와 오타쿠가 있다.
 
일본의 노무라 경제연구소는 1772만 명의 오타쿠가 일본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마니아가 열정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부류라면, 오타쿠는 그것을 넘어 변형과 적응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설명이 너무 어려우니 그냥 마니아는 나 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오타쿠는 광적으로 나 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일본서 공부하고 돌아온 친구는 오타쿠엔 부정적 뉘앙스가 배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 오타쿠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안여돼'족이 득세한단다. '안경 끼고, 여드름 덕지덕지하고, 돼지처럼 뚱뚱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이들은 아싸족이나 오타쿠보다 더 철저히 혼자다. 남과 어울릴 줄도 모르고 소통도 거부한다.
 
겉으로 보기에 아싸족이든 마니아든 오타쿠든 안여돼든 그들은 남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들이 화(火·스트레스)를 스스로 걸러 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 놓고만 있을 때다.
 
조승희는 왜 갑자기 총을 난사했을까. 그에겐 이쪽도 저쪽도 아닌, '물에 뜬 기름'처럼 미국에 적응 못하는 1.5세대의 비극이 분명히 있다.
 
만약 그에게 술이라도 권하고, 노래방이라도 같이 가자고 권할 친구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니 무슨 말이든 마음 편하게 들어 줄 그 누구라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화는 체온과 입김과 스킨십으로 풀어야 한다. 그가 총을 난사한 진짜 이유는 어쩌면 처절한 외로움, 감당 못한 화의 폭발이었을지도 모른다.
 
자물통처럼 굳게 닫힌 마음, 늪처럼 헤어날 길 없는 외로움 속엔 영혼을 안내하는 내비게이터가 없다. 외로움뿐인 그곳에는 도저히 회복 불가능한 상처의 악취만 진동한다. 어쩌면 조승희가 쏜 것은 자기 자신의 극에 달한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일간스포츠 2007년 5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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