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기자의 e스팟] 게임은 포르노그래피다

“게임에서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이자 FPS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라 불리는 존 카맥의 말이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게임학회의 명예의 전당에 네번째로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포르노는 스토리가 있든지 없든지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오로지 성적 흥분을 일으키고 욕구 충족을 해 주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게임도 고작 그 정도일까?

카맥의 지휘 아래 개발됐던 모든 FPS 게임들은 완성도와 기술력 면에서는 하나같이 최고였다. 하지만 스토리는 단 두 줄로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빈약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타 게임에 비해 부실했다. 카맥에게 있어서 스토리는 그저 게임의 설정을 위한 구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카맥의 동업자였던 존 로메로는 생각이 달랐다. <퀘이크2>의 개발이 끝난 직후 둘은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로메로는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를 차린다. 로메로는 게임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게임 디자인과 스토리에 힘을 기울여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뼛속까지 기술자였던 카맥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극명하게 갈렸다. 카맥은 <퀘이크3>로 승승장구했지만. 로메로의 야심작 <다이카타나>(大刀)는 희대의 괴작이라는 혹평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갔다. 로메로는 페라리를 경매에 내놓아야 했지만. 카맥은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쥐게 된다. 게임에서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던 카맥이 완벽하게 승리한 것이다.

과거에 기술력은 게임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이미 시대는 변했다. 상향 평준화한 기술은 발전 가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3D가 대세인 지금 상황에서 기술력의 차이는 이제 옛날만큼 큰 장점이 아니다. 카맥은 여전히 게임에서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실력자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갔던 그의 말도 이제는 점점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대표적 예가 MMORPG의 틀을 바꾼 블리자드의 대작 <와우>다. <와우>는 뛰어난 스토리를 통해 전세계 게이머들을 사로잡으며 3년 만에 1조 가까운 매출을 일궈냈다.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이름을 올린.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게임의 재미를 향상시켜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새 게임에서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카맥의 경멸과는 달리 결코 포르노가 아닌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 2007년 3월 8일자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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